일본, 20년 만에 새 지폐…220만대 옛 자판기 어쩌나

홍석재 기자 2024. 6. 1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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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 모두 바꾸려면…“2년 걸릴 듯”
새 1만엔 지폐엔 시부사와 에이이치
일제 강점기 일본 은행 조선에 진출
일본 정부 누리집 갈무리

일본에서 다음달 3일 20년만에 새 지폐가 발행된다. 일본 각지에 설치된 200만대가 넘는 음료 자판기들이 새 지폐를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등 혼란도 우려되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11일 “20년 만의 새 지폐 발행까지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가운데 금융기관과 소매점에서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계산대 개보수를 서두르고 있다”며 “코로나19 사태로 현금 없는 결제가 확산된 데다 소규모 사업자에게는 부담도 커서 대응을 서두르지 않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새 지폐 발행과 관련해 현금자동입출기나, 자동판매기들의 인식 불능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대형 은행들이 관리하는 현금자동입출금기는 문제 가능성이 적은 편이다. 미쓰비시유에프제이(UFJ)은행,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미즈호은행 이른바 ‘빅3’ 은행들은 자사 전국 자동입출금기가 새 지폐를 인식하도록 준비를 마친 상황이다. 대규모 민간 철도 회사인 도큐전철과 세이부 철도 등도 5월 이전까지 매표기에서 새 지폐를 인식하도록 작업을 끝냈다.

그러나, 일반 음식점이나 상점 같은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새 지폐 인식 기능을 갖추는데 자판기 1대 당 수백만원을 넘는 돈이 들어가는 탓에, 기계를 정비하거나 교체하는 걸 꺼리는 일이 많다. 한 상인은 요미우리 신문에 “쌀, 기름값 등 물가가 오르고 있어 매표기 교체는 솔직히 부담스럽다”며 “어떻게든 버티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국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음료 자판기도 상황이 비슷하다. 일본에 음료 자판기는 전국에 220만 여대가 있다. 자판기 부품을 모두 교체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 음료 대기업 담당자는 이 신문에 “완전히 작업이 완료되려면 앞으로 2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금자동입출금기와 자판기 제조업체 등으로 구성된 일본자동판매시스템기계공업회는 새 지폐 발행일인 다음달 초에 부품 교체가 가능한 기기의 비율에 대해 현금자동입출금기 90% 이상, 소매점 계산대나 대중교통 매표기는 80~90% 정도로 보고 있다.

반면 일반 음식점 매표기와 주차장 정산기는 50%, 음료 자판기는 20~30%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은 현금 사용 비중이 높은 국가이지만 코로나19 대확산 시기를 거치면서 현금을 쓰지 않는 분위기가 이전보다 확대된 점도 이런 분위기에 한몫을 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지난해 현금을 쓰지 않는 결제 건수는 39%로 10년 전의 2.5배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는 “현금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늘면서, 모든 자판기 등이 새 지폐에 대응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며 “이전과 비교해 (새 지페에 맞는 기기 교체의) 경제적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로 발행되는 1만엔 지폐에는 사업가 출신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얼굴이 들어간다. 일본에서는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지만 일제 강점기 일본의 은행을 조선에 진출시켜 식민지 정책을 주도한 일원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시부사와는 제일은행이 발행한 조선 최초 지폐에 자신의 얼굴을 넣은 것으로도 유명다. 5천엔권에는 일본 여성 교육의 선구자인 쓰다 우메코, 1천엔권에는 일본 근대 의학의 발판을 놓은 기타사토 시바사부로의 얼굴이 들어간다. 보는 각도에 따라 문양이 변하는 3디(D) 홀로그램 등 첨단 위조 방지 기술과 액면 숫자 손으로 만져 식별할 수 있도록 한 ‘유니버설 디자인’ 등이 도입됐다.

새 지폐 발행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특별한 번호가 새겨진 희귀 지폐를 확보하려는 수집가들의 경쟁도 달아오르고 있다. 현재 발행될 에정인 지폐에는 A000001A으로 시작되는 일련번호가 새겨진다. 900만장이 발행되면 끝자리 알파벳이 ‘A’에서 ‘B’로 바뀌어 다시 900만장이 발행되는 식이다. 일련번호 A000001A는 일본은행 금융연구소 화폐박물관에 소장되고, 이후 몇장까지는 화폐 관련 단체나 지자체, 대학 등에 기증돼 일반 수집가들은 확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시중에 풀리는 A000020번대 이하 지폐들은 상당한 프리미엄이 붙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쇼토쿠 태자의 얼굴을 넣고 발행(1958∼1984년)된 1만엔 지폐의 일련번호 A000014A 화폐는 경매에서 330만엔(2890만원)에 낙찰됐던 적도 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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