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도 경전 35만자 10년간 옮겼다…오탈자 잡고 주석도 적어
국내 한문학계와 서예계에서 내공 뛰어난 고수로 손꼽히는 월천 권경상(70)씨가 생애 첫 개인전을 한다.
12~18일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사경(寫經)으로 본 유·불·선’이란 제목으로 열리는 전시회는 지난 10여년 동안 불교와 유교, 도교의 주요 경전 35종의 원전 문구 글자들을 먹과 금물을 묻힌 붓으로 일일이 옮겨 적은 사경 작업의 결과물을 대거 선보인다.
주로 해서와 예서로 썼고 전서도 간간이 들어간 이 사경 작업은 전체 글자수만 35만자에 이른다. 조선 초기 이래 금물로 정성껏 글자를 필사하는 금자 사경의 전통이 끊겼으나 한학과 글씨에 조예가 깊은 그의 작업을 통해 이런 전통을 온전히 되살렸다는 의미를 눈여겨볼 만하다고 미술관 쪽은 설명했다.
권 작가는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 상임연구원 과정을 졸업하고 국역위원과 강사를 지냈으며 대한민국서예대전초대작가로도 활동했지만, 자신이 수십년 갈고 닦아온 글씨를 한자리에 망라해 내보이는 것은 처음이라 서단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경작품중 가장 많은 것은 불교 경전 32종이다. 불교를 대표하는 경전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비롯해 7~8세기 중국 선불교 남종선의 비조인 육조 혜능(638~713)의 해석이 붙은 ‘금강경’(金剛經), ‘미륵육부경’(彌勒六部經). ‘반야심경’(般若心經)등이 망라됐다. 유학 경전으로는 ‘대학’과 ‘중용’, 도교 경전은 ‘노자’를 사경한 작품들이 나온다.
사경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시작돼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 널리 성행했던 한국 불교예술사의 주요 장르였다. 청남색의 감지에 금물로 주요 경전의 글씨를 옮겨 적는 수행의 기록으로 알려졌는데, 경전의 내용을 부처들의 도상으로 풀이한 변상도와 더불어 옛 불교미술의 진수로 꼽혀왔다. 현재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불교미술 명품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에 출품된 고려시대 감지금니묘법연화경과 리움미술관이 소장한 755년 통일신라의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같은 국보 보물급 명작들이 적지 않다. 사경의 전통은 조선 초기까지 꾸준히 이어졌으나 조선 중후기 조선성리학이 지배적인 사조가 되면서 이단시되어 글씨 대가들의 작업에서 자취가 사라졌다. 20세기 후반 들어 장인예술가들에 의해 사경 작업이 되살아나 현대 작가들의 솜씨로 고려, 조선시대 사경들이 간간이 복원되어 전시되는 중이다.
권 작가의 첫 개인전은 사경 전통을 되살리는 의미를 넘어선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통 한학자가 내용 하나하나를 치밀하게 독해하면서 오자와 탈자를 바로잡고 해설 부분의 주까지 글씨로 옮기는 연찬의 인문정신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불경 ‘반야심경’ 사경본 앞부분은 금물 묻힌 붓으로 경전 내용을 옮겨 쓴 것으로, 금자사경의 전통을 되살렸다. 정자인 해서체를 썼던 고려 조선시대 사경과 다르게 고풍스러운 전서체를 쓴 일부 작품도 눈길을 끈다. ‘대학’과 ‘중용’은 본문 해석이 어려운 부분에 대한 해설을 선현의 이론을 망라해 주문장 사이사이에 간주(間注)로 표기했다. 소주(小註:큰 주석 안에 작은 주석을 다는 것)까지 번역하고 각주(脚註)를 병기한 번역본까지 전시회에 맞춰 출판한 건 전례가 없다고 한다.
권 작가는 “간송미술관에서 봉직해온 가헌 최완수 선생의 권유로 틈틈이 사경을 하게됐다”면서 “2019년 시작된 ‘역병’(코로나19)이 전파되면서 모든 강의가 중단돼 수년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경에 매달린 끝에 전시를 열게 됐다”고 했다.
권씨는 한국 서예의 최고 대가로 한자 5체에 걸쳐 활달하면서도 옹근 필획을 구사했던 여초 김응현(1927~2007)의 동방연서회에서 배웠다. 그래서 이 전시는 정자체인 사경 작품의 해서, 예서 글씨 말고도 여초의 영향으로 활달하고 엄정한 기운이 뚜렷한 행서, 예서, 한글고체 등의 친필 글씨 등에도 눈힘을 주고 감상할 만하다.
일례로, 1998년 여름 강원도 문막에 있는 정산초당과 거돈사터를 방문하고 나서 창작한 자작시 ‘過鼎山草堂’(과정산초당:정산초당을 찾아서)의 행서 친필본은 필획이 유려하면서도 한학자다운 엄정하고 절제된 기품이 글씨 곳곳에서 엿보인다. 글씨 제자인 최학래 전 한겨레신문 사장은 “권 선생은 미닫이 창문조차 없는 두어평 서실에 스스로를 가둔 채 종일 온갖 경전을 사경하고 주를 다는 일을 수십년째 이어가신다”면서 “5000년 인류지혜의 보고에서 ‘오늘의 나’를 캐내려는 처연한 혈투가 엿보인다”고 축사를 적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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