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방북 전 한국에 잇단 ‘그린라이트’…“윤 정부, 그 의미 알아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당국자들이 이달 들어 한국을 향해 “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청신호’를 보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이달 말께 북한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러시아의 이례적인 외교 신호가 주목 받고 있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는 10일(현지시각) 러시아 언론 알티브이아이(RTVI)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한국은 미국의 신호에 면밀히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의 낙관론은 제한적”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한국은 더 큰 독립성을 보여주고, 러시아와의 생산적이고 상호 호혜적이었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방법을 모색하길 바란다”고 했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이어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한국이) 자제해야 할 사항”이라며 “만약 이 레드라인을 넘으면 양국 관계는 심각하고, 영구적으로 손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도 5일(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세계 주요 뉴스통신사 대표들과 만나 “우리는 한국 정부와 일을 할 때 어떠한 러시아혐오적(Russophobic) 태도도 보지 못한다”며 “분쟁 지역에 대해 한국이 어떠한 무기도 공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에 대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놓은 것은 처음이었다.
러시아 당국자들이 잇따라 한국을 향해 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것은, 이달 말로 예상되는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앞둔 러시아가 한국과의 관계도 동시에 관리하려는 신호로 해석된다. 10일(현지시각) 러시아 매체 베도모스티는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이르면 6월 중 푸틴 대통령이 북한과 베트남을 방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9월 러시아 극동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맞았던 푸틴 대통령이 이번에 북한을 답방하면 2000년 7월 이후 24년 만의 방북이다.
러시아 전문가인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은 “러시아는 한-러 관계가 어느 정도 관리가 되고 있다는 만족감을 표하면서, 동시에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면 안 된다는 두 가지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해석했다. 두 실장은 “푸틴이 이번달 말 6.25 무렵에 북한을 방문할 것 같다”면서, “지난해 9월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 당시에는 북-러 정상회담 합의 내용에 대해 한국과 전혀 소통을 하지 않았는데, 이번달 말 방북에 대한 내용은 러시아가 한국과 소통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로 예상했다.
푸틴 대통령이 이번에 방북하면, 양국 무역·경제 관계를 확대하고 러시아가 북한 노동자들을 더욱 많이 받아들이는 방안 등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북-러의 전방위 밀착 속에 군사기술 분야 협력이 얼마나 더 강화될지가 한국의 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두진호 실장은 “최근 북러 군사기술 협력은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면서, “러시아가 ‘우주공간의 평화적 이용’ 명분을 내세워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는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고, 북한 우주인을 태우고 우주로 가는 협력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러시아가 한국의 나로호 발사 지원, 2008년 한국 우주인 이소연씨를 국제우주정거장으로 데려갔던 것과 비슷한 협력을 북한과도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탄두 대기권 재진입을 비롯한 민감한 군사적 기술 제공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고려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러 밀착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예상보다도 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한국이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다. 두 실장은 “일단 러시아 내부적으로는 최소 2~3년은 전쟁을 더 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푸틴은 미국 대선 이후의 상황을 고려하겠지만, 그것이 결정적 변수도 아니다. 유럽에서 극우 정당들이 약진하고 있는 것도 러시아에게 유리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곧 끝나면 북-러 밀착도 흐지부지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한국이 상황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한국이 러시아발 신호를 제대로 포착해, 북-러 밀착을 조금이라도 제어할 수 있는 한-러 관계 관리가 더 중요해졌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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