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죽었다’, 마동석∙손석구∙강동원 사이에서 값진 100만 돌파
지난달 16일, 전날 개봉한 ‘그녀가 죽었다’의 개봉일 성적표를 받아든 이 영화의 홍보 책임자는 아찔했다. 한풀 꺾일 줄 알았던 ‘범죄도시4’의 흥행기세가 죽지 않은 데다 일본 애니메이션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에까지 예상 밖으로 밀려 박스오피스 3위로 스타트를 끊은 탓이다. 이처럼 ‘시작은 미미’했던 영화 ‘그녀가 죽었다’가 올해 개봉한 한국 극영화 가운데 5번째로 100만 관객을 달성하며 손익분기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100만 달성이 1000만 달성보다 더 힘들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로 중급 예산 영화들이 맥을 못추게 된 영화시장에서 30대 신인 감독(김세휘)과 젊은 배우들이 일궈낸 값진 결과다.
지난달 15일 ‘그녀가 죽었다’는 개봉일 좌석 수 39만여석, 좌석점유율 14%로 출발했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낳은 ‘범죄도시4’의 230만석은 물론이고 3월 개봉한 ‘댓글부대’ 69만석, 5월 말 개봉한 ‘설계자’ 90만석보다도 훨씬 적은 좌석 수를 배정받았다. 개봉 전 언론 시사회에서는 호평을 받았지만 극장들이 참석하는 배급 시사회의 평가가 박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중개업자라는 직업을 이용해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취미를 가진 남자(변요한)가 비밀이 많은 인플루언서 여자(신혜선)의 주검을 목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는 선과 악의 대결, 복수나 응징 같은 상업영화의 전통적인 흥행코드를 따라가지 않는다. 손석구(‘댓글부대’), 강동원(‘설계자’) 같은 대형 스타가 없다는 것도 극장들의 인색한 결정에 한몫했다. 영화를 투자 배급한 콘텐츠 지오가 이른바 빅4에 들어가지 못하는 중소규모 배급사라는 점 역시 상영관을 잡는 데 불리했다.
흥행에 가장 중요한 첫주 성적이 저조하자 ‘2, 3주 만에 극장에서 내려가는 거 아닌가’라는 주변의 우려가 쏟아졌다. 하지만 영화를 제작한 김성철 엔진필름 대표와 배급사의 생각은 좀 달랐다. 김 대표는 “중급 영화로는 최대치라고 할 60~70만 좌석을 받아도 좌석판매율이 낮으면 요즘은 극장에서 상영관을 곧바로 줄이기 때문에 좌석 수를 유지하면서 길게 끌고 가는 방향으로 전략을 짰다”고 말했다. 이런 전략이 가능했던 이유는 20~30대 초반 타깃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죽었다’는 개봉 이후 4주간 단 한 번도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지 못했다. ‘퓨리오사:매드맥스 사가’ ‘설계자’ 등 좌석 수를 많이 가져가는 큰 영화들이 개봉하는 날에는 4위까지도 내려갔다. 하지만 좌석판매율은 1, 2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흥한 영화든 망한 영화든 힘이 빠지는 개봉 4주차인 이달 9∙10일에도 상업영화 가운데 좌석판매율이 가장 높았다. 극장에서 배정한 좌석은 적어도 실제로 티켓을 사서 좌석을 채우는 관객들은 꾸준하게 많았다는 뜻이다. 영화를 본 관객의 입소문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코로나 이후 흥행 흐름에 맞아떨어진 결과다.
제작사와 배급사는 입소문이 만든 뒷심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한 홍보전략에 공을 들였다. 일반적으로 개봉 초 붐을 만들기 위한 무대인사와 관객과의 대화 등을 개봉 2, 3주에 배치한 것이다. 평론가 대신 최근 인기 많은 범죄 관련 토크 프로그램의 단골손님인 표창원 프로파일러를 관객과의 대화에 초대했다. 주연배우 신혜선, 변요한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무대인사도 화제가 됐다. 무대 앞에서 감사 인사를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두 배우가 관객석으로 들어가 관객들에게 굿즈를 선물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옆자리 친구처럼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이 밈처럼 관심을 끌며 젊은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상반기 주요 흥행작이 모두 공개된 이달까지 누적 관객수 100만명을 넘긴 영화는 ‘시민덕희’와 ‘파묘’, ‘범죄도시4’, ‘외계+인’ 2부, 그리고 ‘그녀가 죽었다’가 전부다. 이 가운데 ‘파묘’와 ‘범죄도시4’는 1100만명을 넘겼고, ‘시민덕희’는 170만명, ‘외계+인’ 2부 143만명, ‘그녀가 죽었다’는 10일까지 114만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을 넘기며 손익분기점인 125만명을 향해 가고 있다.
시장 양극화가 나날이 심해지는 가운데 ‘시민덕희’와 ‘그녀가 죽었다’의 선전은 스타 출연 등 낡은 흥행공식에만 의존하는 극장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유경 영화인 대표는 “좌석 수 확보가 여전히 중요하고 큰 영화들에 유리한 시장 상황이긴 하지만 코로나 이후 관객들의 입소문이 중급 영화들에 새로운 기회를 열고 있는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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