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만에서 드러난 신뢰의 위기[김지현의 정치언락]
대통령의 예고 없던 발표에 당황해하던 야권도 여론 눈치를 살피며 슬슬 움직이더군요.
개혁신당이 이날 오후 3시 39분 가장 먼저 논평을 냈습니다. 정국진 부대변인은 “성공률은 20% 정도라 장담할 수 없는 데다 설령 성공하더라도 2035년이 돼서야 생산이 가능하다 한다”며 “이제 갓 시추 계획을 승인했을 뿐인 일에 대통령이 직접 호들갑을 떨며 직접 브리핑을 할 일인가 싶다”고 했습니다.
이어 조국혁신당이 오후 4시 “바닥 수준인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호재로 보였냐”는 논평을 냈습니다.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약 50년 전 박정희 정부 당시 유사한 소동이 있었다”며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지시해 1976년 1월 15일 경향신문을 찾아오라 하라. 당시 관련 기사의 큰 제목은 ‘석유가 나왔다’이고, 작은 제목은 ‘박 대통령 연두회견이 던진 충격파’였다”고도 했습니다. 이날 하루 종일 ‘천공 짤’과 함께 온라인을 달군 기사였죠.
이틀 만에 ‘천공’의 이름도 본격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천공의 강의 내용이 유튜브에 떴는데 ‘석유가 있다’, ‘엄청난 매장량이 있다’ 이런 내용들이 나온다. 그러니 ‘천공과 연계된 것이 아니냐’, ‘대통령실과 뭔가 천공이 정보를 받았든가 아니면 천공의 이런 얘기를 믿고 했든가’, 이런 의혹을 당연히 국민들은 갖게 되는 것이죠”(5일 BBS 라디오)라고 했습니다. 같은 날 조국 대표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워낙 황당하게 국정을 운영하니 국민 신뢰가 바닥을 친다. (그러니) 대통령이 중요 발표를 할 때마다 네티즌들이 천공이란 해괴한 자가 비슷한 말을 했는지 찾아보는 것 아니냐”라고 목소리를 높였죠.
이 대표의 가세에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선 어느덧 “불기둥처럼 치솟아 오른 주가조작 (가능성)과 관련해서 과연 이 발표로 이득을 보는 자가 누구인지 추적할 것”이라며 주가 조작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입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내정된 민주당 의원들은 단체로 기자회견을 열어 “의혹 해소를 위한 상임위를 열어야 한다”고 했고요. 22대 국회가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 전부터 ‘영일만 의혹’이 쟁점으로 떠오른 겁니다.
하지만 여권도 야당을 비난하기에 앞서 이번 불신의 출발점이 야권이 아니었다는 점부터 잘 돌아봐야 할 겁니다. 세상에, 우리나라가 산유국이 될 수도 있다고 대통령이 직접 얘기하는데 국민들이 좋아하긴 커녕 “벌써 세금 아깝다” “또 무슨 헛소리냐”는 반응이 나오는 게 얼마나 ‘웃픈’ 현실입니까.
논어에서 공자는 정치의 본령을 묻는 제자 자공에게 ‘풍족한 식량’과 ‘충분한 군대’, ‘백성의 믿음’을 3가지 필수 요소로 꼽았습니다. 이 중 굳이 버려야 한다면 그 순서를 묻는 질문엔 첫째로 군대, 그 다음으로 식량을 버리라 했죠. 군과 음식 없이는 어떻게 버텨도, 백성의 신뢰 없이는 정치가 절대 불가능하며,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한국갤럽의 정기 여론조사 결과 5월 마지막주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21%(5월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물은 결과)로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번 영일만에서 드러난 신뢰의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윤 대통령의 지지율도 한 번 더 출렁일 듯 합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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