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공이면 매년 20승씩 했어"…리그가 인정한 구위, 8년 만에 구단 역사 쓴 MVP 됐다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최)원준이 형이 항상 말해요. 네 공이었으면 매년 20승씩 했다고."
두산 베어스 곽빈(25)은 현재 KBO리그에서 구위가 가장 좋은 투수로 평가를 받는다. 팔꿈치 수술을 받기 전까지 외국인 투수급 활약을 펼치던 안우진(25, 키움 히어로즈)보다도 구위 자체는 곽빈이 더 좋다는 말도 있었다. 감독, 코치진부터 선수들, 구단 전력분석원들까지 곽빈의 구위는 언제나 칭찬의 대상이다. 시속 153~154㎞까지 나오는 빠르고 묵직한 직구에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변화구 구사력도 빼어나다.
곽빈은 이런 평가와 관련해 "사람들이 '구위는 최고다'라고 하는데, 구위는 최고인데 머리가 안 좋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원준이 형도 항상 말한다. 네 공이었으면 매년 20승씩 했다고. 사람이 또 막상 그렇게 안 된다. 막상 내 공을 가지면 20승 절대 못 한다"고 답하며 웃었다.
이어 "구위에 자부심이 있다기보다는 이제는 엄청 컨트롤을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 끝에 넣어야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끝에 던지면 좋겠지만 요즘은 그렇게 섬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구위도 좋고 제구도 좋으면 좋겠지만, 그냥 비슷하게 던지자고만 생각한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18년 1차지명 출신인 곽빈은 두산 입단 6년차였던 지난해부터 리그 최고 구위라는 평가에 걸맞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 23경기에서 12승7패, 127⅓이닝, 106탈삼진, 평균자책점 2.90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차출과 부상 여파로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했으나 오히려 곽빈에게는 '풀타임'을 향한 열망이 더 강해진 계기가 됐다.
올해는 시작이 좋지 않았다. 리그 모든 선발투수들이 그랬듯 이른 개막으로 투구수를 충분히 끌어 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시즌을 맞이해 어려움을 겪었다. 투구 내용이 좋으면 타선과 엇박자가 나서 승리를 못 챙기는 등 운도 따르지 않았다. 4월까지 7경기에서 1승4패, 40이닝, 평균자책점 4.50에 그쳤던 이유다.
5월부터 곽빈은 다시 자기 모습을 되찾았다. 5경기에서 4승무패, 30⅓이닝, 평균자책점 1.48로 호투하면서 두산의 반등을 이끌었다. 5월 다승과 평균자책점 부문 1위에 오르면서 11일 KBO가 시상하는 월간 MVP로 선정됐다. 지난해 4월 후보로 선정됐을 때는 정규시즌 MVP 에릭 페디(당시 NC 다이노스)에게 밀렸지만, 이번에는 곽빈을 압도할 만한 경쟁자가 없었다.
곽빈은 5월 월간 MVP 기자단 투표 총 30표 중 24표(80%), 팬 투표 42만1536표 중 7만6,251표(18.1%)로 총점 49.04점을 기록해 1위에 올랐다. 두산 소속 선수로는 2021년 시즌 10월 아리엘 미란다 이후 첫 월간 MVP 수상이며, 두산 국내 투수 월간 MVP 수상은 지난 2016년 7월 유희관 이후로 약 8년 만이다.
5월 MVP로 선정된 곽빈에게는 상금 200만원과 함께 트로피가 주어지며, 신한은행의 후원으로 곽빈의 모교인 자양중학교에 선수 명의로 기부금 200만원이 전달될 예정이다.
곽빈은 5월 활약과 관련해 "4월에는 안 풀렸던 게 5월에는 조금 풀렸다고 생각한다. 4월에 못 던진 경기도 있는데, 괜찮게 던진 경기도 조금 운이 안 좋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 4월 말에 NC전(4월 24일, 6이닝 1실점)부터 자신감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이제 잘 되겠다 생각했다"고 밝혔다.
MVP 발표 직후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월간 MVP를 받게 돼 정말 기분 좋다. 나를 응원해 주는 팬들, 또 매일 현장에서 함께 고생하시는 기자분들이 뽑아주신 상이라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 혼자 잘해서 받은 상이 아니다. 5월 한 달 동안 정말 강했던 우리 두산을 대표해 받은 상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도 후보에 꾸준히 오르는 선수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곽빈은 두산 선발투수 가운데 유일하게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았다. 외국인 원투펀치 라울 알칸타라와 브랜든 와델이 각각 부상으로 이탈했을 때부터 곽빈은 사실상 팀의 1선발 임무를 맡았다. 알칸타라와 브랜든은 부상에서 돌아오긴 했으나 컨디션이 좋았을 때 구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지금도 곽빈이 사실상 두산 선발진을 이끄는 상황이다.
곽빈은 "늘 내가 아파서 로테이션에서 빠지는 선수였는데, 올해는 한번도 안 거르고 있다. 이렇게 던진 적은 처음이다. 지금 76⅓이닝을 던졌는데, 이때까지 한번도 안 거르고 던진 건 처음인 것 같다. 체력적으로 안 힘들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은 안 아프고 괜찮으니 던질 수 있을 때 최대한 던져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곽빈의 시즌 목표는 언제나 풀타임과 규정이닝 달성이었다. 2018년 데뷔 시즌을 보내다 팔꿈치 수술을 받고 3년 가까이 쉬면서 마운드를 향한 갈증이 커졌기 때문. 2019년과 2020년 시즌은 통째로 쉬어야 했다. 그러다 2021년 시즌 복귀해 2022년까지는 철저히 관리를 받으며 마운드에 올랐다. 그래서 부상 이탈 없이 건강하게 한 시즌을 보내는 게 곽빈의 목표가 됐다. 올해는 그 목표를 향해 순항하는 중이다.
곽빈은 "이제 전반기가 거의 끝나 가는데, 아직 반 이상 남긴 했으나 그래도 비시즌 때 몸을 조금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뿌듯해했다.
재활에만 전념했던 과거 3년이 지금은 큰 도움이 됐다고 믿는다. 곽빈은 "나는 그 시간을 엄청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 어떻게 보면 이제 잘됐다고 생각한다. 팔도 많이 쉴 수 있었고, 그때가 내게는 전환점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곽빈은 올해로 프로 7년차지만, 3년을 쉬었던 만큼 채워야 할 게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는 "신인 때 레벨이 1이었다면, 10이 최고라고 봤을 때 지금은 한 4정도까지 온 것 같다. 더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보다는 일단 사람이 됐다. 약간 철이 많이 들었고, 그리고 야구적으로 엄청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1차지명같이 던지지 못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근데 이제 지금 보니 과거를 돌이켜보니 조금씩 조금씩 올라온 것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본인의 속도를 유지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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