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대구서도 찾아와…6000원 이발소, 7080 어르신 '오픈런'[르포]

김지은 기자 2024. 6. 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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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가장 저렴한 식당으로 불리는 송해국밥.

'초고물가' 시대에 시민들은 이곳에서 허기 뿐 아니라 마음을 채운다고 했다.

서울 중랑구에서 1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이곳에 왔다는 박모씨(74)는 "최근 백내장 수술을 해서 염색을 못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구로구에서 이곳까지 왔다는 최모씨(76)는 요즘 들어 인생이 무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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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의 행복②]서울 종로구 '청춘이발관'… 커트·염색 각각 6000원
[편집자주] 서울에서 가장 저렴한 식당으로 불리는 송해국밥. '초고물가' 시대에 시민들은 이곳에서 허기 뿐 아니라 마음을 채운다고 했다. 고(故) 송해님 별세 2주기를 맞아 이처럼 부담없는 가격에 손님을 맞고 있는 명소들을 찾아간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청춘이발관. 미용사가 70대 손님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 /영상=김지은 기자

"아유, 시원하다. 시원해. "

지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청춘이발관. 커트를 마친 80대 김모씨가 거울 앞에 다가가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김씨의 집은 충남 태안. 그는 서울 상암동에 있는 아들 집에 놀러왔다가 머리를 깎기 위해 청춘이발관을 찾았다.

상암동에서 청춘이발관까지는 대중교통으로 약 40분. 김씨가 아픈 허리를 이끌고 지하철을 두 번 환승해 이곳을 찾은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이곳 커트 비용은 6000원, 일반 염색도 6000원. 요즘 남자 커트 비용이 1만2000원 정도 하는 것과 비교하면 반값이다.

김씨는 "가격도 가격인데 예전에 광화문 우체국에서 30년 넘게 근무를 했다"며 "추억이 있는 곳에 와서 머리도 깎고 영화도 보고 장기도 두면 일석사조"라고 말했다.

어르신들 '핫플레이스' 이발관… 전국 방방곳곳 모여든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위치한 청춘 이발관. 이발과 염색이 각각 6000원이다. /사진=김지은 기자

청춘이발관은 10년 넘게 이발소를 운영한 아버지를 뒤이어 딸이 운영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서 '지상낙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강남구를 거쳐 종로구에 터를 잡았다.

초창기만 해도 커트·염색이 각각 3500원이었다. 인건비가 오르면서 4000원, 5000원, 그리고 6000원으로 올랐다. 고물가 시대에도 꾸준히 낮은 가격을 책정한 이유는 주 고객이 어르신이기 때문이다. 청춘이발관은 종로구 일대에서도 저렴한 편에 속한다.

김 사장은 "고령화 시대에 실버를 대상으로 한 미용실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많은 분들이 찾아오게 해서 마진을 남기는 게 목표다. 직원들 월급에 임대료, 관리비까지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어떻게 보면 봉사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청춘이발관에는 하루 평균 50명 남짓 손님이 찾아온다. 주 고객은 60~80대 어르신들. 아침잠이 없거나 새벽일을 나가는 손님들은 오픈 시간 7시 전부터 미리 와서 기다리기도 한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전국 방방곳곳에서 찾아온다는 점이다. 천안, 예천, 대구, 태안, 포천 등 지역도 다양하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20~30대 청년층이 찾아올 때도 있다. 김 사장은 "남자들은 보통 2주에 한 번씩 머리를 자르는데 여기는 6000원 밖에 안하니까 부담 없이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어" 어르신들 고민 털어놓은 '이발소'

청춘이발관은 옛 방식 그대로 이발관을 운영하고 있다. 손님들이 세면대를 바라보고 고개를 숙이면 미용사가 옆에서 구석구석 머리를 감겨준다. 머리를 감고 나면 손님은 옆에 있던 세면대로 이동해 셀프 세수를 한다. /사진=김지은 기자

청춘이발관은 옛 방식 그대로 이발관을 운영하고 있다. 손님들이 세면대를 바라보고 고개를 숙이면 미용사가 옆에서 구석구석 머리를 감겨준다. 두피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를 때마다 어르신들은 "시원하다" "좋다" 등을 말했다.

머리를 감고 나면 손님은 옆에 있던 세면대로 이동해 셀프 세수를 한다. 비눗물을 헹구는 동안 미용실 안에는 신나는 트로트 노래가 흘러나왔다.

손님들은 머리를 자르는 동안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서울 중랑구에서 1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이곳에 왔다는 박모씨(74)는 "최근 백내장 수술을 해서 염색을 못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미용사가 "속상하겠다"고 말하자 "세월 앞에 장사 없어"라고 답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이곳까지 왔다는 최모씨(76)는 요즘 들어 인생이 무료하다고 말했다. 최씨는 "우리 동네는 나이 먹은 사람이 할 게 없다"며 "낙원동에 왔으니까 청춘극장 가서 영화도 한 편 보고 밥도 먹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청춘이발관은 이곳에 온 손님들이 청춘처럼 젊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며 "어르신들이 커트·염색을 하고 밝게 웃을 때, 10년은 젊어 보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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