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키스타디움 스토어에 걸린 파란색 '17번' 저지, 오타니는 '빅리거들의 빅리거'[스조산책 MLB]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신시내티 레즈 '괴물' 유격수 엘리 데라크루즈는 LA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하나 갖고 있다.
데라크루즈는 지난해 8월 24일(이하 한국시각)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LA 에인절스와의 더블헤더 2차전서 오타니가 5회말 2루타를 터뜨리고 2루에 안착하자, 벤치가 투수 교체를 하는 동안 그에게 다가와 왼팔을 손가락으로 몇 차례 찌르며 말을 걸었다. 오타니는 이를 웃으면서 받아줬는데, 데라크루즈의 행동은 순전히 호기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투타 겸업' 신화를 쓰고 있던 오타니를 가까이서 본 게 처음이라 진짜 사람인지 궁금했다고 한다. 당시 데라크루즈는 경기 후 "오타니한테 다가가기 전 (2루수)맷 맥레인한테 '그가 진짜 사람인지 만져볼 거야'라고 했다"고 밝혔다.
오타니는 '메이저리거들의 메이저리거'다. 타자로는 홈런 30~40개를 거뜬히 치고, 투수로는 100마일 직구를 마구 뿌리며 에이스로 군림하는 '만화' 속 주인공을 현실에서 본다는 건 그들에게도 영광이기 때문이다.
현지 스포츠매체 '디 애슬레틱'이 11일 오타니와 관련한 또 다른 재밌는 설문조사 결과를 게재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대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선수는 누구인가?(Who is the best player in baseball?)'라는 질문을 던진 결과 참가자 102명 가운데 46.1%인 47명이 오타니를 꼽았다.
매체는 이 조사를 지난 3월 스프링트레이닝 때부터 최근까지 2개월 반 동안 진행했고, 양 리그에 걸쳐 18개팀 선수들 참가해 익명으로 답했다고 한다. 선수들의 솔직한 대답을 집계한 결과 오타니가 절반에 가까운 메이저리거들의 지지를 받았으니, 데라크루즈와 같은 행동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타니를 최고의 선수로 꼽은 이유는 일관적이었다. 한 선수는 "멍청한 대답일 뿐이지만, 오타니가 그런 선수"라고 했고, 어떤 선수는 "비교 대상이 없다. 모든 선수는 자신과 비슷한 선수가 있게 마련인데, 오타니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선수는 "쇼헤이 루스 혹은 베이브 오타니, 의심의 여지는 없다"고 답했다. 즉 투타에 걸쳐 최고의 기량으로 겸업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타니는 LA 에인절스 시절인 2021년과 작년, 두 차례 AL MVP에 올랐다. 역사상 두 차례 MVP를 모두 만장일치로 차지한 것은 오타니가 처음이다.
'5월의 선수'로 뽑히는 등 시즌 초 부진에서 벗어나 AL MVP를 향해 질주 중인 뉴욕 양키스 애런 저지도 지난 10일 다저스에 역전승을 거둔 뒤 오타니를 '최고의 선수'로 치켜세웠다. 그는 "굉장한 선수다. 야구장 모든 방향으로 공을 날려버린다. 건강하면 피칭까지 한다. 그게 그의 일이다. 또 그는 짧은 플라이에도 3루에서 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야구장에서 최고의 선수"라고 밝혔다. 오타니의 공수주 능력을 모두 언급한 것이다.
디 애슬레틱은 '오타니라는 답은 피할 수 없다. 그를 가까이에서 꾸준히 보는 선수들조차 오타니의 광채는 여전히 닳지 않았다'며 '많은 선수들은 오타니가 진실로 최고의 선수라고 답하면서도 너무 뻔한 이유를 대는 게 두려워 좀 색다른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고 전했다.
오타니는 지난 겨울 FA 시장에서 동서부를 오가며 명문 구단들과 만나 협상할 때 상당히 짙은 연막 작전을 폈다. 다저스를 정해놓고 다른 구단들을 들러리로 세워놓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각 팀 선수들은 오타니와 동료가 되는 걸 상상하고, 그가 방문한 지역의 팬들은 '혹시나 우리 팀에?'라는 기대를 걸었을 지도 모른다.
다저스와 맺은 계약 규모가 10년 7억달러나 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실제 돈을 10년 뒤 받는다는 '지급유예'는 그 누구도 상상 못한 조항이다.
당시 디 애슬레틱은 'FA 오타니가 어느 팀으로 갈 것으로 예상하나'라는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약 60%의 선수들이 '다저스'라고 답했지만, 다른 선수의 계약에 민감한 선수들도 총액이 7억달러에 이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지난 8~10일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3연전 기간 동안 양키스 구단은 팀 스토어에 배번 17번이 적힌 오타니 저지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또 눈에 띄는 품목으로 저지와 오타니의 배번 '99'와 '17'이 나란히 적힌 모자가 진열대를 장식하고 있다고 한다. 자존심이라면 둘째 가라면 양키스 팬들에게도 오타니는 동경하는 슈퍼스타다.
오타니는 한 달 가까이 슬럼프를 겪고 있다. 지난달 17일 신시내티전에서 1회 볼넷으로 출루한 뒤 상대 투수 브렌트 수터의 견제구에 왼쪽 햄스트링을 맞고 컨디션이 뚝 떨어졌다. 이후 20경기에서 타율 0.205, 3홈런에 그쳤다. 홈런, OPS, 장타율, 루타 등 5~6개 부문 1위 자리를 모두 저지에 빼앗겼다.
투수로는 한 시즌을 쉬기 때문에 타격에만 집중할 수 있어 NL로 옮겨서도 MVP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그는 틈틈이 피칭 재활도 진행하고 있다.
올해 홈런왕이 아니라도, MVP가 아니라도 그가 피칭을 재개하면 '최고 선수'의 위치는 다시 확고해진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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