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기업 윈윈커녕 싸움날판… ‘이사 충실의무 확대’ 논란

신병남 기자 2024. 6. 1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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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법개정 움직임에 찬반 대립
‘주주 비례적 이익’항목 추가
“회사 지배주주 이익만 인정돼
소액주주 이익 보호 규범 필요”
“CEO 경영 자율성 위축시켜
결국 모든주주 이익 줄어들것”

기업 이사(경영진)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를 넘어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 움직임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법 개정을 통해 물적 분할 후 자회사 중복상장(쪼개기 상장)과 같은 주주가치 훼손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과 이럴 경우 자율적인 기업 의사결정이 막혀 기업가치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충실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소송이 늘어날 가능성도 커 기업 밸류업 지원 정책으로 투자자와 기업 모두 ‘윈윈(win-win)’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정부 의도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자본시장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는 오는 12일 금융감독원 후원으로 밸류업 정책의 하나로 추진되고 있는 상법 개정을 주제로 자본시장 선진화 관련 정책 세미나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는 소액주주 권한 강화를 위한 △이사 충실의무 확대 방안 △집중투표제 확대 방안 등이 발표될 예정이다. 정부는 세미나에서 나온 의견들을 취합해 하반기부터 관련 개정 작업을 본격화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이사 충실의무 확대 여부다. 상법 제382조의 3조항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하는 게 핵심으로, 이를 통해 기업이 일반주주의 지분 권리가 지배주주의 지분 권리보다 축소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교 교수는 “소액주주는 자회사에 대한 접근권과 관리권, 처분권을 지배주주에게 박탈당할 수 있어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호할 규범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현행 법체계에선 회사 지배주주의 이익만 인정되고 있고 이에 대한 견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추가로 상법 손해배상책임 추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모든 주주의 이익이 똑같이 보장되는 건 ‘이상론’적인 이야기라며 미국·영국·일본·독일 등 선진국 어디에서도 이런 규정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상법 개정 시 기업가 정신·경영 자율성이 위축돼 결국 모든 주주의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지난 1월 소액주주가 제기한 소송에 따라 약 558억 달러(약 74조5000억 원)의 테슬라 주식을 잃을 위기에 놓인 게 대표적 사례다. 테슬라 9주를 소유했던 한 주주는 머스크가 주주총회에서 약속받은 경영 보상안이 과하다며 제동을 걸었다. 재계에선 이 사례를 통해 “글로벌 기업 CEO도 개인에게 휘둘리고 이사회도 이를 견제를 못 하는 상황에서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강조되면 능동적인 경영 활동이 가능하겠냐”고 반문한다. 법무부도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법 개정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현재 법 개정 방향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경영 전 분야에 걸쳐 적용하게 되는 구조여서 부작용이 상당할 것”이라며 “주주와 회사를 따로 두는 분절을 만들어 싸움만 부추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LG엔솔로 불거진 ‘쪼개기 상장’… 금감원, 투자자보호 장치로 제동

상법개정 논란 주원인

상장사 분할 74%가 물적분할
“공시확대 통한 개선” 목소리도

상법 개정 논란이 이처럼 뜨거워진 것은 2020년 LG화학 물적 분할 사례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LG화학은 신설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의 분리상장을 결정했고 이후 주가가 하락하면서 기존 주주들의 불만을 샀다. 신규 사업이 분리되면서 기존 기업의 내재가치가 크게 훼손됐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0년까지 21년 동안 상장회사가 실시한 710건의 회사 분할 중에서 물적 분할이 526건(7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 분할 가운데 하나인 물적 분할은 기존 기업의 핵심 사업부를 신설 회사로 떼어내 100% 자회사 형식으로 독립시키는 분할 방식이다. 기업들은 자금 확보를 빌미로 분리 자회사를 상장시키는 경우도 빈번했다. 이 때문에 여당과 야당의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가 제도 개선을 위한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다만 최근 들어 금융감독원이 주주가치 보호 차원에서 무분별한 물적 분할 중복상장(쪼개기 상장)에 제동을 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16건까지 줄어들어 2022년(35건)보다 45.7% 감소했다. 금융 당국은 지난 2022년 ‘물적 분할 자회사 상장 관련 일반주주 권익 제고 방안’을 발표해 주식매수청구권·공시·상장심사 등 쪼개기 상장 관련 투자자 보호장치를 마련해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제도 개선으로 시장 변화가 나타나는 만큼 긴 호흡으로 정책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상법·형법 등에서 이사(경영진)가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 의무를 게을리하고 충실의무를 위반하는 경우에 대해 다양한 처벌 조항을 규정하고 있다. 지배주주 견제와 관련해서도 상법, 자본시장법에 이사의 지배권 남용에 대한 견제 방안이 담겨 있다. 이에 자본시장 내부에서도 공시 확대를 통한 변화가 기업들의 변화를 이끌기에는 더 효과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 관계자는 “주식회사 경영권은 ‘자본 다수결 원칙’에 따라 출자 비중이 높은 주주가 주로 갖는데 상법 개정안은 이런 주식회사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신병남 기자 fellsic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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