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발된 곳 정말 없어?" 택배 노동자 과로방지 대책 3년 후
택배업체 속도경쟁 속 과로사
엔데믹 국면에서 문제 불거져
택배 과로방지 대책 발표 3년 後
분류 인력 배치·주 60시간 근무
분류 비용 착복 대리점 적지 않아
사각지대서 성장한 쿠팡 문제
국토부 이행점검 결과 발표 단 한번
근본적 문제는 택배노동자 수수료
건당 600~700원, 오르지 않아
정부의 모른 척과 과로란 덫
한국은 택배 강국이다. 택배업체들이 속도경쟁을 벌인 결과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택배노동자가 과로사하는 사례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특히 팬데믹 국면이던 2020년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극심했다. 2021년 6월 국회와 택배업체, 택배노조, 택배대리점협회, 사회단체, 소비자단체 등이 참여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택배 과로방지 대책'을 마련한 이유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 택배노동자들의 현실은 달라졌을까.
21명.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택배 물량이 급증한 2020~2021년, 밀려든 택배를 배송하다가 사망한 택배노동자 수다. '목숨을 건 배송'이 지속하자 문제를 공론화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출범(2020년 7월)했다.
국회(더불어민주당)의 주도하에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이하 사회적 합의기구·2020년 12월 출범)'도 만들어졌다. 여기엔 CJ대한통운·롯데글로벌로지스·한진 등 택배사와 국토부·노동부·공정위 등 정부기관, 택배노조, 택배대리점협회, 소비자단체, 시민단체가 참여했다.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과로방지 대책(2차 합의문)'을 내놓은 지 꼬박 3년이 흘렀다. 당시 과로방지 대책엔 택배노동자 분류작업 제외, 택배노동자 작업시간 주 60시간으로 제한, 그에 따른 택배원가 상승요인 170원 택배요금에 반영, 관련 내용 표준계약서에 반영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렇다면 택배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달라졌을까. 일부 개선된 점이 있긴 하지만, 갈 길이 아직 멀다는 지적도 많다.
■ 쟁점➊ 분류작업 = 과로방지 대책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택배노동자를 분류작업에서 제외하는 거였다. 새벽부터 터미널에서 분류작업을 한 뒤 배송을 시작하다 보니 하루 15~16시간 노동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과로방지 대책을 통해 2021년 12월 31일까지 분류작업 인력 배치를 완료하고, 여건상 분류작업 인력을 배치하지 못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비용(분류작업비)를 택배노동자에게 지급하도록 했다.
문제는 분류작업 인력을 충분히 배치하지 않아 택배노동자가 업무를 떠안거나 대리점이 분류작업비를 착복着服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대책을 위해 택배요금을 인상했다. 분류작업 인력 배치 등에 드는 비용을 170원으로 산정한 택배업체들이 이를 요금에 반영해 가격을 끌어올렸던 거다.[※참고: 분류작업비는 택배 본사가 대리점을 통해 택배노동자에게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김광석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렇게 지적했다. "분류작업비를 착복하는 대리점이 숱한 데다, 원청(택배 본사)이 대리점에 지급하는 분류작업비를 삭감하면서 택배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금액이 줄고 있다. 원청은 대리점의 착복 문제를 방관하고, 국토부는 (사회적 합의의) 이행 여부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기 때문이다."
■쟁점➋ 택배 수수료 = 지난 3년간 풀지 못한 숙제는 또 있다. 택배노동자들의 낮은 수수료다. 택배노동자들은 택배 한 건당 600~700원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 택배사들이 '단가 경쟁'을 벌이는 탓에 택배 단가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데다 택배 가격이 오르더라도 택배노동자들의 수수료엔 제대로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택배단가는 2012년 2506원에서 2021년 2366원으로 되레 하락했다.
그럼에도 택배업체들은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업계 1위 CJ대한통운의 올해 1분기 매출액(9370억원)은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 직구 플랫폼 물량이 증가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2.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8.5%(493억원→535억원) 늘었다.
문제는 택배노동자들의 수수료는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택배노동자 A씨는 "유류비·보험료·수리비·차량비 등은 나날이 오르는데 택배 수수료는 십수년째 600원대에 머물면서 먹고살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 쟁점➌ 사각지대 = 사회적 합의의 사각지대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대표적인 게 쿠팡의 물류 자회사 '쿠팡CLS(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다. 2021년 당시 쿠팡은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여하지 않았다. 다른 택배사들과 달리 택배노동자를 직접 고용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후 쿠팡은 물류 자회사 쿠팡CLS를 설립하고 지난해부터 위탁방식의 택배사업을 시작했다. 운영방식 면에서 일반 택배사와 다를 바 없지만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련 내용을 지키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석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대표는 "쿠팡CLS는 사회적 합의 내용뿐만 아니라 택배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2021년 시행)의 적용도 받지 않고 있다"면서 "사회적 합의의 효과를 퇴색시킬 뿐만 아니라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문제가 반복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 쟁점➍ 국토부의 불구경 = 이 때문에 국토부가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토부가 나서서 사회적 합의 이행 여부를 관리감독하고,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국토부는 2022년 1월 이후 단 한차례도 이행점검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국토부 측은 "매달 2차례에 걸쳐 불시 현장 점검을 나가고 있다"고 밝혔지만 실효성엔 의문 부호가 찍힌다. 국토부의 현장 점검은 매달 2곳, 연간 24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국 택배 터미널 수가 400개를 훌쩍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적은 수다.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아 적발된 곳은 없다"는 국토부의 설명과 택배노동자의 목소리가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광석 위원장은 "사회적 합의는 말 그대로 강제사항이 아닌 합의사항에 불과해 정부의 관리감독이 중요하다"면서 "하지만 정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 기조만을 앞세우고 있어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막을 사회적 합의마저 '바람 앞의 등불' 신세로 전락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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