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스메타나·카프카...‘프라하의 낭만’ 어디까지 아니?

2024. 6. 1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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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카를교에 감춰진 ‘숫자의 비밀’
스메타나 탄생 200년·카프카 작고 100년
음악·문학적 감성 ‘흠뻑’...또 다른 매력
올해는 ‘체코 음악의 해’이자, 체코 출신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탄생 200년이 되는 해다. 프라하는 스메타나가 청 년애국단원 때 지켜내려고 했 던 화약탑, 시민회관 등 ‘음악 여행 동선’을 새로 만들었다.

정시가 되자 프라하 구 시가지 천문시계탑에서 종이 울린다.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 마리오네트가 줄을 당겨 종을 치고 거울을 든 허영, 돈주머니를 쥔 탐욕, 달콤한 선율로 이성을 유혹하는 정욕의 인형들은 죽음으로 가는 시간이 아쉬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창이 열리고 구원의 12사도가 인사를 건네면 천문시계탑 꼭대기에 있던 황금 닭이 운다. 어차피 죽음을 향해 가는 시간을 이겨낼 수 없으니 욕심을 버리고, 황금 닭의 희망을 향해 나아가자는 다짐을, 체코는 어쩌면 한 시간에 한 번씩 하는 지도 모른다.

카를교 아래 유람선

카를교의 비밀은 ‘그 숫자’에 있다

블타바강 위, 동쪽 구 시가지와 서쪽 프라하성 사이, 두 고딕 양식의 탑을 연결한 카를교에 서면 비로소 ‘프라하에 왔구나’라며 실감이 난다.

카를교는 신성로마제국 군사들이 황제 카를 4세의 지휘 하에 원정을 마치고, 유럽의 정중앙에 자리잡은 제국의 수도, 프라하성으로 개선하며 마지막으로 건너던 다리다.

다리는 황제의 지휘 아래 1357년 9월 7일 오전 5시31분 첫 삽을 떴다. 예술·사냥·온천·음악을 좋아했던 낭만주의자였던 카를 4세는 착공 시점을 1-3-5-7-9-7-5-3-1의 숫자를 조합해 정했다. 이 숫자들은 태양계, 우주, 윤회 철학을 상징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거리의 악사와 초상화가들 사이로 30개의 조각상이 다리 위에 서 있고, 1개는 다리 아래에 있다. 각각의 조각상은 책 한 권으로는 부족할 사연들을 가진 인물들이다.

한국인으로부터 ‘별이 다섯 개’라는 별명을 얻은,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동상은 카를교 위 최고 인기 스팟이 됐다. 황제의 협박에도 황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지켜준 성자이다. 그는 황제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산 채로 블타바강에 던져져 익사하고 만다.

그가 죽자 강물위로 다섯 개의 별 같은 광채가 떠올랐다고 한다. 이후 그는 목숨을 지켜주는 수호성인이 되었다. 그의 동상은 ‘만지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문이 돌며 수많은 여행객들이 그의 발 밑에 있는 믿음과 의리의 부조를 쓰다듬게 되었고, 그 부조는 세월을 잊은 채 반질반질 빛이 난다.

홉의 품질이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체코의 맥주 스파

코젤·필스너 우르켈 높이 들고 “나즈드라비”

체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맥주다. 맥주를 즐기고 맥주 스파에서 목욕도 하는 프라하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블타바강 유람선에서 맥주를 즐기는 젊은이들은 코젤 혹은 필스너 우르켈의 잔을 높이 든 채 “나즈드라비(건배)”를 외치거나 노래 소리로 요란하다. 주변에 카누형 보트에 탄 연인들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내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프라하성 내 성비투스 성당에 들어서면 성인들의 족적 외에, 체코의 대표 미술가이자 아르누보의 창시자인 알폰스 무하의 그림을 커다란 스테인드 글라스로 만든 점이 눈에 띈다. 성소에 성물 아닌 예술가의 작품이 있다는 점이 이례적이다. 유럽 여타 성당과는 다르게 체코 성직자는 포용력이 크다는 방증이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다가와 반가움을 표현하는 블타바강의 백조, 구 시가지 건물 옥상에 매달려 여행자를 놀래키는 ‘행잉 프로이트(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춤추는 발레리노 조각상 앞에서 키스를 나누는 강변의 연인들의 모습은 변함없이 프라하다웠다.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은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동상

올해 프라하의 특별한 선물 ‘음악’

프라하는 올해 또 다른 선물을 준비했다. 체코는 올해를 ‘체코 음악의 해’로 정하고, 음악 인문학과 공연을 즐기는 음악 여행 동선을 새로 만들었다.

여기에는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은 ‘국민음악파의 거장’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박물관 ▷스메타나가 청년애국단원 때 지켜내려고 했던 화약탑과 시민회관 ▷최근 끝난 ‘프라하의 봄’ 음악축제(총감독 파벨 트로얀·대표 지휘자 야쿠프 흐루샤) 개최지이자 유럽 클래식 음악의 핫 플레이스 ‘루돌피눔’ ▷병마와 싸우던 말년의 볼프강 모차르트에게 희망을 안긴 에스테이트 극장 ▷안토닌 드보르자크가 사랑한 카를로비 바리 ▷레오시 야나체크의 음악 혼이 새겨진 체코 제2 도시 브르노 등이 포함돼 있다.

또 ▷표트르 차이콥스키가 사랑한 체코 국립극장 ▷음악 유산 전시관을 갖춘 유네스코 유산 민간 고택 로브코비츠성 ▷음악가들의 무덤이 모여있고, 리부셰 공주-프르셰미슬 농부 부부가 프라하 건설을 추진했던 비셰흐라드 마을 ▷자코모 카사노바가 묵어 더 유명해진 모차르트 호텔 등을 돌아보고, ▷스메타나가 청력을 잃은 후 독립 의지, 국가 번영 염원을 담아 작곡한 ‘나의 조국’ 연주 ▷체코판 인어공주 이야기인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 관련 인문학 등을 즐길 수 있다.

최근 성료한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에서는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는 한국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가 회자됐다. 실제로 그는 연주가 끝난 이후에도 객석에서 박수가 계속되자 대기실에 들어갔다 다시 무대로 나오는 커튼콜만 10회(전반 연주 4회, 후반 연주 4회, 앵콜곡 2회)를 했고, 앵콜곡 연주 이후엔 기립 박수 세례를 받았다.

작곡가 볼프강 모차르트에게 용기를 불어넣은 에스테이트 극장

모차르트 호텔에서 ‘음악적 영감’을...

이번 축제 때 세계 처음 공개된, 자연 음향 같은 느낌의 오케스트라 실험곡 ‘생추어리-동굴벽화’에는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이 악장(콘서트 마스터)으로 활약했다. 홍영기 주체코대사는 “K-클래식이 꽃피었다”는 말로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체코인의 음악사랑은 유럽 최고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모차르트, 베트벤, 차이콥스키, 리하트르 바그너, 자코모 푸치니, 프레데리크 쇼팽 등 유명 작곡가들은 체코인들의 열광에 큰 용기를 얻고 한 단계 도약했다. 체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프라하로 인해 웃었고, 우리는 그들을 알아봐 줬다.”

프라하 구 시가지 인근 에스테이트 극장은 병마에 시달리던 모차르트에게 희망을 안겼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대흥행, 오페라 ‘돈 조반니’의 초연 대성공으로 힘을 얻은 모차르트는 죽기 전 4년 간 오페라 ‘마술피리’ 등 수많은 명작을 남겼고, ‘레퀴엠’을 만들던 중 숨진다.

극장 앞 ‘양심의 망토’ 조각상은 비열한 귀족 돈 조반니를 지옥으로 보내는 권선징악의 상징이다. 모차르트는 귀족 비판적인 작품으로 미움을 샀던 비엔나보다 프라하를 더 사랑해 모차르트 호텔에서 오래 머물며 새 작품의 영감을 쌓아나갔다. 블타바강변의 이 호텔에는 희대의 난봉꾼 카사노바가 묵어 더욱 유명세를 탔다.

“우리 저곳에 프라하를 지어요.”비셰흐라드에 있는 리부셰 공주 부부의 동상

스메타나·카프카...프라하서 즐기는 예술적 낭만

오늘날의 프라하는 남동부의 마을 비셰흐라드에서 리부셰 공주 부부에 의해 설계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은 또 하나의 프라하 뷰 맛집이다. 이 마을로 들어서면 과거 궁과 요새가 있던 곳 답게 고색창연한 건물이 많지만, 주민들은 하이킹, 반려동물 운동, 유모차 산책, 조깅 등 평범하고 건강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음악인들의 묘소가 있는 성 베드로와 바울 대성당 앞 잔디밭에는 리부셰와 그의 남편 프르셰미슬의 동상이 서 있다. 둘은 평강공주와 온달장군 같은 사이다. 재산과 권력을 탐한 오빠는 여동생 리부셰의 힘을 빼기 위해 비셰흐라드 농부 프르셰미슬과 결혼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리부셰의 국가 건설 청사진에 탄복한 프르셰미슬은 프라하에 새 도시를 건설, 번영의 기틀을 닦아 오히려 아내를 도왔다. 이 이야기는 스메타나의 오페라 ‘리부셰’로 만들어져 후세에도 알려졌다. 리부셰를 포함한 스메타나 명작 음악축제는 7월 7일까지 그의 고향인 리토미슐에서 진행된다.

프라하는 또, ‘변신’, ‘성’, ‘소송’등으로 유명한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작고 100주년을 맞아 9월 22일까지 ‘카프카 식대로(KAFKAesque)’라는 특별전을 연다. 체코는 밀란 쿤데라 등 많은 문학가를 배출해 문학 여행지로도 유명하다. 마리오네트 인형극, ‘아르누보’전시 등 체코가 원조인 예술장르 역시 활짝 피어있다. 올해 프라하는 여행자에게 유럽 최고의 품격과 일석삼조의 풍요로운 콘텐츠를 선물한다.

프라하(체코)=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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