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맨체스터도 美 제트블루도…전 세계 7000개 기업이 ‘좀비’

AP통신의 자체 분석 결과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기업의 차입 비용이 10년 이래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전 세계 상장 기업 중 약 7000개가 좀비 상태다. 좀비 기업은 미국에만 2000개가 있다. 대부분의 중소 좀비 기업은 폐업을 할 처지로, 이들 기업은 갚을 수 없는 수천억 달러의 대출금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4월 파산을 신청한 미국 생활용품 회사 베드 배스 앤 비욘드(Bed Bath & Beyond). / AP 연합뉴스

AP통신에 따르면 올해 여름부터 9월까지 좀비 기업은 1조1000억 달러(약 1514조7000억 원)의 대출금을 상환해야 한다. 올해 연말까지 갚아야 할 대출금 총액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좀비 기업은 일반적으로 지난 3년 동안 대출금에 대한 이자를 지불할 만큼의 충분한 영업이익을 내지 못한 회사를 일컫는다. 크루즈 선사인 카니발 크루즈 라인, 제트블루 항공, 미국 가구업체 웨이페어는 물론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탈리아 텔레콤 이탈리아도 좀비 기업인 상태다. 좀비 기업은 10년 전에 존재했던 기업에 한정해 분석해도 30% 정도 늘어난 상태라고 AP통신은 전했다.

좀비 기업 수가 늘어나면서 이들 기업이 파산을 신청하거나 폐업할 경우 잠재적 피해가 커질 수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12개 국가에서 최소 1억3000만 명을 고용 중이다. 이미 미국에서 파산한 기업 수는 14년 만에 최고치인 상황이고 캐나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에서도 최근 기업 파산이 거의 10년 만에 최대에 달했다.

신용 평가 기관과 경제학자들은 과거 기준 금리가 지나치게 낮을 경우, 기업의 부채가 쌓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전 세계 중앙 은행은 2009년 금융 위기 때부터 기준 금리를 거의 0에 가깝게 인하했고, 2020~2021년에 다시 금리를 인하에 돌입했다. 금리 인하는 대출을 일으켜 세계적인 불황을 막는 데는 일조했으나, 낮은 이자는 정부는 물론 소비자와 기업이 과도한 대출을 하도록 유도했다. AP통신은 “각국 중앙은행은 수년 간 낮은 금리로 좀비 기업이 생명을 유지하도록 도왔다”며 “그 결과 너무 많은 좀비 기업이 동시에 붕괴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AP통신은 좀비 기업의 가장 큰 문제로 과도한 자사주 매입을 꼽았다. AP는 “가장 위험한 점은 좀비 기업의 부채는 기술 확장, 고용, 투자에 사용되지 않고 자사주 매입하는데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라고 했다. 자사주 매입이 너무 많이 이뤄지면 기업의 현금은 고갈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생활용품 회사 베드 배스 앤 비욘드(Bed Bath & Beyond)는 지난 10년 동안 자사주 매입에 70억 달러(약 9조6390억 원)를 지출하기로 한 것이 결정타가 돼 파산했다. 이 회사는 한때 1500개의 매장을 운영하던 대형 소매 업체다. 하지만 베드 배스 앤 비욘드가 파산하면서 미국 50개 주에서 수만 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한편, AP통신은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한국, 미국, 중국, 일본, 인도, 독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스페인, 이탈리아, 호주 기업을 조사했다. 물론 조사 대상 국가의 상장 기업 대부분(전체 3만4000개 중 80%)은 좀비 기업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