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시’ 이민기, ‘강기둥 공동 피해자’ 하성광·김대호 막아설까?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화가 나서 미치겠어요. 명색이 내가 경찰인데 내 가족을 다치게 한 범인을 눈 앞에 두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화가 나요.”
10일 방송된 ENA 월화드라마 '크래시' 9회에서 민소희(곽선영 분)는 울분을 터뜨렸다. 아버지 민용건(유승목 분)을 중환자실로 보낸 범인은 표정욱(강기둥 분)이 확실한데 잡아 넣기는 커녕 ‘부고 띄우면 부조는 넉넉히 하겠다’는 조롱만 받았다. 그 말을 전하는 표정욱의 얼굴엔 빙글빙글 조소가 어려 있었다.
하지만 이날 민소희가 느꼈던 울분은 10년 전 이정섭(하성광 분)이 느꼈던 울분에 비하면 약과다. 아비가 명색이 경찰인데 억울하게 죽은 딸의 범인을 눈 앞에 두고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처지란 것은 얼마나 절망적인가.
또 인생의 10년을 죄책감에 망가진 채 살아야 했던 차연호(이민기 분)의 억울함에 비해서도 약과다. 자신의 과실로 피해자 이현수와 뱃속의 아기까지 두 생명을 지웠다는 살인의 기억 탓에 그는 얼굴에서 표정을 지워야 했다. 숨 쉬는 것 조차 죄스러운 판에 무슨 자격이 있어 울고 웃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또 한 사람. 이현수의 유골함에 “현수야, 너 덕분에 내 인생은 따뜻했는데, 그래도 그 따스함 잊지 않고 살께! 사랑해!”란 석별의 정을 남긴, 아마도 故 이현수의 남편이 10년을 쌓아올린 울화에 비해서도 약과다.
그리고 9회에선 마침내 드라마가 공 들여 숨겨온 이현수 남편의 정체가 드러났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김현민(김대호 분) 분석관.
정채만(허성태 분)으로부터 양재영 살인범이 다리가 불편한 인물이란 말을 들은 차연호는 느닷없이 김현민을 찾아간다. 그리고 정채만이 이정섭에게 “사위분 어디 있습니까? 김민성씨!” 묻는 동안 “김민성 씨, 아니 이제 김현민 씨라고 불러야 하나요?”라 묻는다.
그 문제의 국과수 분석관 김현민은 4화 주취자 역과 사건 때 처음 모습을 보였다. 당시 역과 차량이 두 대임을 알려주며 애교 부리는 어현경(문희 분)에게 급호감을 보이는 예의 ‘공대남식 푼수’를 연기했었다.
두 번째 등장한 것은 7회 카 캐리어 사건 때로 피해자 몸을 파고 든 라쳇버클이 누군가에 의해 절단 된 것임을 밝혀냈었다. 그리고 이때 차연호에게 자기 신상의 일단을 드러냈다. “카이스트 출신이라 들었는데 저도 거기 나왔습니다.”
2014년의 김현민과 이현수는 소중한 2세의 출산을 기다리는 신혼이었다. 밤 마실 길에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했고 표정욱이 운전대를 잡은 표명학의 차가 자행한 역과로 아내 이현수는 사망하고 자신은 다리를 절단하는 사고를 당했다.
수술받고 깨어났을 때 사고는 일사천리로 매듭지어졌을 것이다. 당시 은성경찰서장이던 표명학으로선 자신의 아들이 운전한 자신의 차가 사망사고에 연루된 사실을 덮는데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마침 만만한 피의자 차연호도 확보한 상태다. 순식간에 가해자인 표정욱, 양재영(허지원 분), 한경수(한상조 분)는 목격자로 둔갑해 차연호의 과실치사를 증언했다.
그 조작을 미심쩍어하던 정채만은 불법수사를 이유로 전근 보냈고 마침 정채만의 아내마저 교통사고로 사망함에 따라 정채만은 개인적으로라도 수사를 이어갈 여건이 되지 못했다.
이 모든 사실을 이정섭은 지켜봤다. 딸의 사건인만큼 정채만과도 함께 퍼즐을 맞췄을 테다. 정채만 아내의 사고마저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표명학·양석찬(이유준 분) 등의 음모로 의심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사위마저 위험하다. 뒤늦게 진실을 밝히려는 김현민을 말리고, 미국 보내고, 거짓 부고를 종용한 것도 이정섭일 수 있다. 그렇게 모두에게서 그 날의 사건이 잊혀졌을 때 김민성이란 이름 대신 김현민의 신분으로 국과수 분석관에 복귀했을 것이다.
당시 사건의 명확한 진상 파악을 위해 적절한 시간이 필요했을 테고 어현경과 친밀하게 지낼만큼은 국과수 생활에도 충실했을 것이다.
그리고 확신이 들었을 때 이정섭과 소통했을 법하다. 이정섭으로서도 암 말기의 아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마당에 해묵은 원한은 풀고 싶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장래가 창창한 사위 대신 자신이 벌어질 사건들의 혐의를 받는 것이 합당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멀쩡한 다리를 두고 스틱을 짚으며 의족의 사위 걸음걸이를 흉내냈을 것이다. 그러는 편이 경찰의 권력자 표명학의 시선을 돌려 사위의 운신에 보탬이 될 것이란 계산도 했을 법하다.
사위의 편지를 품고 차연호를 만나러 오면서부터 이정섭은 스틱을 짚고 다리를 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그 누군가도 이 사고를 잊지 않고 있었나 보지. 집사람처럼.”
이미 김현민은 한경수를 납치, 고문을 통해 증언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표정욱과 표명학에 대한 응징이 남았는데 차연호에게 정체를 들키고 말았다. 정채만 역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정섭을 압박해 온다.
따지고보면 이들 모두는 표명학·표정욱 부자의 피해자다. 정채만 아내의 공교로운 교통사고조차 이들의 수작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입장은 다르다. 현직 경찰 신분의 차연호와 정채만은 과연 이정섭·김현민 장서의 복수를 막아설 것인가? 여기에 새롭게 피해자로 등재된 민소희는 어떤 스탠스를 견지할 것인가? 드라마 ‘크래시’의 긴장도는 좀체로 풀릴 생각을 않는다.
한 가지. 차연호는 어떻게 양재영 살인범이 다리가 불편하단 말만 듣고 김현민을 특정했을까? 드라마가 순서 바꿔 풀이를 보여주는 것이 다반사니 당장 10회에서 해결하고 넘어가긴 하겠지만 그 추리과정이 여전히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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