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국 최고 바텐더는 누구?’... 디아지오 ‘월드클래스 코리아 2024′ 파이널 가보니
오는 9월 세계 대회 출전
오늘 제가 사용할 베이스는
돈 훌리오 블랑코입니다.
순수한 아가베 풍미를 간직한 데킬라에
차갑게 우린 재스민차를 섞고
튜베로즈 꽃 오일을 증류해서
소량 넣어주겠습니다.
김하림 앨리스 청담 바텐더
지난 5일 오후 7시 월드클래스 코리아 2024 결선이 열린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
결선 참가자 10명 가운데 아홉 번째 시험을 치르는 김하림 앨리스 청담 바텐더가 능숙한 솜씨로 알록달록한 하이볼 글라스에 분홍빛 액체를 따르기 시작했다. 튜베로즈 꽃 오일을 증류해 만든 농축액이었다.
튜베로즈는 월하향(月下香)이라는 꽃이다. 이름과 달리 장미와 아무 관련이 없다. 달콤하면서도 진득한 향이 나 주로 고급 향수 원료로 쓰인다. 김 바텐더는 이 분홍빛 튜베로즈 꽃 오일에 껍질째 젖산 발효한 참외를 더해 창작 칵테일을 마무리했다.
그는 “튜베로즈는 밤이 오면 향이 강해지는 꽃이다. 소풍 가기 전날,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을 튜베로즈로 표현했다”라며 “여기에 여름 햇볕을 뚫고 자란 참외를 더해 생명력을 표현했다”라고 했다.
이는 결선 두 가지 과제 가운데 첫 번째 과제를 위한 칵테일이었다. 100명이 넘는 관객들은 숨을 죽인 채 조용히 김하림의 손끝과 입을 주시했다. 이 과제는 멕시코 프리미엄 데킬라 돈 훌리오를 얼마나 독창적인 칵테일로 재현하는지를 평가했다.
그는 이어 칵테일에 조심스럽게 직접 만든 홈메이드 소다를 더했다. 김 바텐더는 “딜과 카다멈(생강과 향신료)이 만나 이끼 낀 숲길을 걷는 기분을 들게 하는 소다”라며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질소를 사용해 재료를 우렸다”고 설명을 곁들이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는 이 칵테일에 돈 블루밍(Don Bloomin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 바텐더는 결선 두 번째 과제였던 스피드 챌린지에서도 다른 진출자들을 앞섰다. 스피드 챌린지는 코스모폴리탄과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마이타이, 스카치 사워, 맨해튼, 김렛 등 7가지 칵테일을 6분 안에 만들어 내는 과제다.
조리법이 엄격하게 정해진 서로 다른 칵테일을 짧은 시간에 맞춰 만들기란 쉽지 않다. 다른 결선 도전자 상당수가 시간에 쫓겨 일부 재료를 빼먹었다. 6분을 넘긴 도전자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김 바텐더는 4분 30초 안에 7가지 칵테일을 정확하게 만들어 나눠줬다. 촉박한 시간 속에서도 빈 잔 없이 칵테일을 모두 채웠다. 그는 돈 훌리오 리추얼과 스피드 챌린지 두 과제에서 합산 점수 1등을 기록했다. 그 결과 다른 결선 도전자 아홉 명을 제치고 올해 대한민국 최고 바텐더 자리에 우뚝 섰다.
심사위원진은 “김하림 바텐더가 선보인 돈 블루밍 칵테일은 돈 훌리오 데킬라를 처음 만들었던 돈 훌리오가 가졌던 사랑하는 마음을 설레는 소풍이라는 주제로 잘 표현했다”며 “스피드 챌린지에서도 김 바텐더는 주어진 시간 안에 정확하고 결점 없이 맛과 향이 완벽한 칵테일을 제조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열린 월드클래스 코리아 2024는 글로벌 주류기업 디아지오가 주최했다. 디아지오는 차세대 바텐더를 발굴하기 위해 당시 바 문화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처음 경연대회를 시작했다. 국제 규모 바텐더 대회 가운데 가장 유서가 깊다.
우리나라 주류 시장이 커지면서 국내에도 바텐더들이 실력을 겨룰 대회가 늘어났다. 하지만 역사로 보나 명성으로 보나 바텐더 사이에서는 여전히 이 대회를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꼽는다. 특히 올해 대회는 이전 월드클래스 글로벌 준우승자 엄도환 르챔버 오너 바텐더가 심사위원으로 참가해 공신력을 더했다.
이날 월드클래스 코리아 파이널에서 우승한 김하림 바텐더는 전 세계 60여 개국 출신 최고 바텐더들이 모이는 월드클래스 글로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다. 월드클래스 글로벌 대회는 오는 9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다.
김 바텐더는 한국 최고 바텐더라는 영예와 함께 부상으로 프랑스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가 제공하는 잔 세트를 받았다.
그는 “우승자로 선정돼 매우 영광”이라며 “9월 세계 대회에서도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준비하고 한국만의 바텐딩을 세계 무대에 알리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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