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5년간 3400회 ‘합의 위반’ 도발… 한미훈련 멈추며 ‘안보공백’ 까지[10문10답]
2018년 판문점 선언이행 위해
육·해·공 적대 행위 중단 합의
北 ‘하노이 노딜’로 태도 급변
해안포 사격·무인기 침투 단행
신형 ICBM·잠수함 개발 과시
작년 합의파기 선언후 GP 복원
韓, 전방 감시·정찰영역 줄어
결국 6년만에 합의 효력 정지
오물풍선 맞서 대북방송 재개
전임 문재인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거쳐 외교·안보 정책의 최대 성과로 내놓았던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이 6년 만에 전면 정지됐다. 북한이 올해 들어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이어 5월 말부터 지난 9일까지 4차례에 걸쳐 ‘오물 풍선’을 남측에 살포하면서 남북 합의가 사실상 무효화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 역시 도발에 대한 대응에 나설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9·19 군사합의는 2018년 9월 평양에서 진행된 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제3차 남북정상회담 평양공동선언 부속합의서다. 남북 국방부 장관이 체결한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는 우발적 무력 충돌이 전면전으로 번지지 않도록 남북 접경지역 땅·바다·하늘에 완충구역을 설정하고 적대 행위를 중단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군사합의가 군사 충돌 전면전을 막을 유일한 안전핀이라는 평가와 더불어 정전협정 체제에서 한·미 연합훈련 및 실기동훈련(FTX)이 3년여간 중단되면서 대한민국에 초유의 안보 공백기를 가져왔다는 상반된 평가가 나왔다. 이후 북한은 한국이 군사합의를 준수하는 데도 체결 1년 만인 2019년 11월 23일 창린도 일대 해상 완충구역 내 해안포 사격을 시작으로 중부전선 최전방 감시초소(GP) 총격 도발, 북방한계선(NLL) 이남 미사일 발사, 수도권 지역 소형 무인기 침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이용한 군사정찰위성 발사 등 지금까지 무려 3400여 회나 군사합의를 위반했다. 북한의 ‘평화 파괴 능력’만 강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9·19 군사합의 체결 배경과 이후 남북관계를 간략히 10문 10답으로 정리했다.
1. 9·19 군사합의 체결 배경과 내용
남북 정상이 2018년 4월 27일 ‘한반도 평화의 봄’을 선언한 것을 계기로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2018년 9월 평양에서 ‘4·27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9·19 군사 분야 합의서’를 체결했다. 지상·해상·공중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적대 행위 전면 중지 등 남북 간 적대 행위 금지 내용이 담겼다. 지상에서는 군사분계선(MDL)에서 5㎞ 안 포병 사격 훈련 및 연대급 이상 야외 기동훈련 전면 중지, 해상에서는 서해 남측 덕적도 이북에서 북측 초도 이남까지 수역, 동해 남측 속초 이북으로부터 북측 통천 이남까지 수역의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을 중지시키는 내용이었다. 공중에서는 MDL 동서부 지역 상공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 내 고정익항공기의 공대지유도무기 사격 등 실탄사격 동반 전술훈련을 금지하고 MDL에서 10∼40㎞ 구간 고정익항공기, 무인기, 기구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다. 비무장지대(DMZ) 내 상호 1㎞ 이내 근접 남북 GP 각 11개 시범 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이 2018년 11월 1일부터 시행됐다.
2. 당시부터 제기된 군사합의에 대한 상반된 평가
문 정부는 북한의 판문점 선언 및 9·19 남북군사합의 준수로 한반도가 더 안전해졌으며 군사합의서가 무력 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종전 선언에 가까운 획기적 신뢰 구축 방안임을 내세웠다. 비행금지구역을 MDL 기준 10∼40㎞로 설정해도 금강 정찰기 등 일부 전력을 제외하고 정찰 활동이나 전력 운용에 별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육군 전방 사단·군단의 무인기들은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상대적으로 후방에서 작전을 하다 보니 장사정포 등 북한군 움직임에 대한 감시·정찰 영역이 줄어들었다. 해상 완충구역 포사격 훈련 금지로 백령도·연평도 배치 해병대의 서북도서 대비태세에도 공백이 생겼다. 해병대는 도서 지역 밖인 경북 포항·울진, 경기 파주·안흥 등지로 포를 끌고 가 사격 훈련을 해야 했다. 이 때문에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인사청문회 답변 자료에서 “9·19 남북군사합의 사항 중 휴전선 일대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가장 큰 문제로, 내용과 구조 면에서 한국군을 무장해제시키는 것과 같다”며 “특히 북한에 비해 수도권 2600만 명의 생명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잘못된 합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3. 9·19 군사합의 이후 한·미 군사훈련 폐지 등 훈련도 축소
9·19 군사합의 이후 남측의 군사훈련도 크게 줄었다. 문 정부는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합훈련의 핵심인 야외 FTX를, 군사합의 체결 후 3년간 하지 않았다. 한·미 연합작전 태세 유지를 위한 기본 프레임인 작전계획 5015 시스템이 붕괴될 처지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김 위원장이 2018년 6월 제1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요청한 키리졸브 연습, 독수리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맥스선더 등의 폐지·축소가 관철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역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언급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쓸모없어진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등 ‘가짜 평화 쇼’로 한·미 동맹, 한·미·일 삼각동맹 균열이란 이득을 챙겼다는 비판이 나왔다.
4. 북한,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표변
하지만 9·19 군사합의로 이뤄질 것 같았던 한반도의 평화는 오지 않았다. 일련의 남북정상회담과 제1차 미·북 정상회담 기간에 대남 평화 공세를 펼치던 북한의 태도가 돌변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자 다시 대남 공세에 나섰다. 북한의 대북 제재 완화 요구가 수용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군사합의 위반도 본격화했다.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20년 회고록에서 “트럼프는 자신이 대북 제재를 해제할 경우 사람들이 자신을 바보라고 놀릴 것이기에 북한의 비핵화가 없는 제재 해제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하노이 회담 당시 ‘영변 핵 폐기와 개성공단 재개’ 맞교환에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합의할 것이란 한국 측 중재안을 철석같이 믿고 기차 안에서 서울에 3번씩이나 확인 전화를 했다가 실제 회담에서 성과를 얻지 못한 김 위원장은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문 전 대통령을 겨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하지 말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5. 2019년 이후 9·19 군사합의 3400여 회 위반한 북한
‘2022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군사합의 이후 약 1년 만인 2019년 11월 23일 창린도 일대에서 해상 완충구역 내 해안포 사격을 시작으로 2022년 말까지 17회나 위반했다. 이 중에는 우리 GP에 총격(2020년 5월 3일)을 가하거나, 동해 NLL 이남 해상 완충구역 내 미사일 낙탄(2022년 11월 2일), 무인기 침투(2022년 12월 26일) 등 잘 알려진 사건들도 포함돼 있다. 북한은 2022년 10월 동·서해상 NLL 북쪽 해상 완충구역 안으로 포병사격을 한 데 이어 11월 2일 분단 이후 처음으로 동해상 NLL 이남 우리 영해 근처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우리 군이 동해 NLL 이북 공해상에 공대지미사일 3발을 발사하기도 했다. 신 장관은 2023년 10월 27일 국회 국방위 국감에서 “북한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9·19 군사합의를 위반했다”면서 “(군사합의에 포함된) 완충구역 내 북한의 포사격 위반은 110여 회, 포신 덮개 설치 및 포문 폐쇄 조치 위반이 3400여 회, 문수로 따지면 6900문 정도”라고 했다. 북한이 9·19 군사합의 위반을 해도 제약이나 처벌을 하는 ‘스냅백(Snap back)’ 조항이 없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해 무용론이 제기됐다.
6. 합의 위반 넘어 도발 수위 끌어올린 북한
북한의 군사합의 위반은 이후 갈수록 도가 높아졌다. 2019년 11월 서해 NLL 인근 창린도 방어부대 방문 중 포사격 지시가 신호탄이었다. 이후 2020년 5월 GP 총격사건→6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9월 실종 해양수산부 공무원 화형→2021년 1월 한국을 겨냥한 전술핵 개발 발표를 했다. 4·27 판문점 선언과 9·19 남북군사합의를 사실상 종잇조각으로 만들었다. 특히 2020년 새해 벽두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보고서는 지난 2년간 김 위원장이 세계를 상대로 벌인 비핵화 평화 쇼가 치밀히 계획된 사기극이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21년 1월 8차 당 대회에서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전략핵뿐 아니라 전술핵 능력을 획기적으로 확장해 핵 무력 건설을 최종 상태로 완성하겠다고 공표했다.
7. 윤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된 북한의 도발, 군사합의 파기도 선언
북한은 지난해 다탄두 장착이 가능한 화성-17형 발사에 성공했고, ICBM용 고체 연료 엔진도 개발했다. 2022년 12월 26일에는 소형 무인기 5대를 MDL 이남으로 침투시켜 서울 상공까지 휘젓고 다니는 등 군사합의를 대놓고 무시했다. 북극성-3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 3000t급 신형 잠수함 등 전략무기 개발을 계속해 온 데다, 윤 정부 집권 2년째인 지난해에는 3차례나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했다. 북한은 지난해 5·8월 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발사했다가 실패했지만, 기술적 보완을 거쳐 같은 해 11월 만리경 1호를 고도 500㎞에 안착시켰다. 특히 북한은 윤 정부가 ‘만리경 1호’ 발사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9·19 군사합의 중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관련된 1조 3항 ‘MDL 상공에서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효력을 정지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하면서 그 책임을 남측에 돌렸다. 이후 북한은 DMZ 내 GP를 복원하고 JSA 경비 병력을 재무장시켰다.
8. 북한, 5월 말부터 ‘오물 풍선’ 살포
북한은 5월 27일 공중 폭발한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고, 다음 날인 28일부터는 ‘회색 지대’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남측으로 퇴비와 담배꽁초 등 쓰레기가 가득 담긴 자루를 매단 풍선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한 것. 이른바 ‘오물 풍선’이다. 동시에 서북도서 일대에서 GPS 교란 공격도 5일째 이어갔다. 이후 지난 9일까지 북한이 4차례에 걸쳐 남쪽에 보낸 오물 풍선은 총 1600여 개에 달한다. 차량 파손 등 민간 피해도 잇따랐다. 풍선을 타격하기 어렵다는 점을 활용한 도발이었다. 도발 기간인 지난달 30일에는 초대형 방사포도 10여 발 발사하면서 이른바 ‘복합 도발’도 이어갔다.
9. 정부, 군사합의 효력 전면 중지 결정
윤 정부는 북한의 이 같은 도발에 5월 31일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았다. 지난 2일에도 정부는 “북한의 어떠한 추가 도발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고, 4일 국무회의에서 9·19 군사합의 전면 효력 정지를 의결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효력 정지로 그동안 9·19 군사합의에 의해 제약받아 온 MDL 일대의 군사훈련이 가능해지고, 북한의 도발에 대한 보다 충분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북한도 오물 풍선 살포 잠정 중단을 발표했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 중단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북 민간단체들이 6·7일 이틀 연속 대북 전단을 공중·해상을 통해 북에 보내자 대북 전단을 보내면 ‘100배 규모의 오물 풍선 앙갚음’을 예고했던 북한이 8일 밤 3차 대남 오물 풍선을 살포했다. 8일과 9일 두 차례 630여 개 포함, 모두 4차례 1600여 개 오물 풍선을 남으로 날려 보냈다.
10.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이후 남북관계는 어디로?
군은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강력한 대북 심리전 수단인 전방부대 대북 확성기 방송을 9일 전방부대 일반전초(GOP) 다섯 군데에서 6년 만에 재개하면서 남북 간 심리전도 가열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날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 후 “우리가 취하는 조치들이 북한 정권에는 감내하기 힘들지라도, 북한의 군과 주민들에게는 빛과 희망의 소식을 전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 4월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 따라 철거된 대북 확성기는 고정식 24대, 이동식 16대로, 현재 언제든 가동이 가능한 상태다. 정부는 북한 반응에 따라 향후 재개 및 확대 여부를 판단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9일 밤 “새로운 대응”을 하겠다고 밝힌 만큼 북한의 추가 도발이 예상된다. 남북관계 역시 당분간 경색과 대치 국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충신 선임기자, 권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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