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모습으로 살아도 괜찮아”… 꿈을 꿈으로 남긴 청년에 건넨 위로
사장이 준 로또에 당첨된 직원
자전거로 쫓는 로드무비식 소설
“국토종주 완주해 부산에 도착
작은성취 뒤의 삶 달라지더라”
조예은‘입속 지느러미’
음악 꿈 접고 방황하는 공시생
혀 잘린 인어와 만나는 판타지
“무서운 현실 잠시 잊게 만들면
작가로서 가장 뿌듯한 일 일듯”
꿈을 이룬 사람이 몇이나 될까? 떠지지 않는 눈, 간신히 일으킨 몸으로 고통스레 출근하는 삶. 전공과목과는 상관없이 집-학원을 쳇바퀴 도는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의 고단함. 이런 모습의 어른을 꿈꿔본 적이 없건만, 어느새 ‘그저 그런 성인’이 돼버리는 게 오늘날 청년의 자화상이다.
‘금수저’와 ‘사자 직업’을 가지지 못한 평범한 어른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때론 판타지로 담아낸 두 권의 소설이 있다. 정진영 작가의 ‘왓 어 원더풀 월드’(북레시피)와 조예은 작가의 ‘입속 지느러미’(한겨레출판).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노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월급과 지루한 일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이루지 못한 지난날의 꿈을 자꾸만 돌이켜본다. 정 작가의 소설은 현실보다 현실 같은 사회파 리얼리즘이고 조 작가의 소설은 ‘인어’가 등장하는 과학소설(SF) 장르지만 두 소설 모두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청년들에게 ‘계속 살아가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는 점에서 닮았다. 두 작가를 최근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고민해봐도 지금보다 괜찮은 인생을 살 만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왓 어 원더풀 월드’ 중에서)
“달리지 않은 국내의 자전거 도로가 없다”는 정 작가의 신간은 ‘자전거 로드 무비’를 자처한다. 작가는 고용노동부와 중소기업청을 출입했던 기자 경험을 바탕으로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볼 듯한 회사를 그려냈고 소설은 직원들을 주인공 삼아 흘러간다. 사장이 로또를 나눠준 회식 다음 날 한 직원은 사표를 날린 후 자전거 국토종주를 떠나버린다. 자신이 준 로또가 1등에 당첨된 것을 알게 된 악덕 사장은 직원들에게 연봉 인상을 포상으로 내걸며 ‘추노’를 명한다. 정 작가는 “사표를 던지고 뜬금없이 자전거 여행을 떠나본 후 자전거에 푹 빠지게 됐다”며 소름 돋게 구체적인 소설의 설정에 대해 설명했다.
돈이라는 현실적 이유로 오른 추노길이지만 직원들은 이내 쳇바퀴 일상을 탈출해 누린 적 없던 자유를 만끽한다. 그리고 잊고 있던 지난날의 꿈을 마주한다. 길이 갈라질 때마다 이루지 못한 ‘가수’의 꿈과 그리운 부모님의 산소를 향해 여정에서 탈선한다. 일행이 모두 떠나 혼자 남겨진 주인공에게 어느새 도망친 사람을 찾는 일은 중요치 않다. 이어진 길을 따라 묵묵히 페달을 밟으며 스스로에게 ‘진정 최선을 다해본 적이 있는지, 오로지 내 의지만으로 헤쳐나가 이룬 것이 있는지’ 묻고 또 묻는다. 결국 여정에 함께했던 다른 직원이 모두 회사를 떠나거나 적어도 부서를 이동하지만 주인공은 같은 직장, 같은 부서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자기 일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주도권을 잡아 나간다. 정 작가는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낸 내가 만신창이의 몸으로 국토종주를 완주해 부산에 닿았을 때 ‘아직 무엇도 끝나지 않았구나’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작은 성취 후의 삶은 분명히 달랐다”고 덧붙였다.
“필요한 돈을 벌려고 일은 하고 있지만 이루지 못했던 꿈이 아직 한쪽 발목을 잡고 있다면 다른 누가 대신 대답해 줄 수 없어요. 진정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봐야 해요. 제가 쓴 소설을 읽는 동안 다시 한번 자신에게 물어보며 조금은 더 능동적으로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네요.” 정 작가는 지난 2020년 신문사를 퇴사해 전업 작가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계속 꿈이나 좇을 처지가 아니란 거, 나도 알고 있었거든.’(‘입속 지느러미’ 중에서)
대학 시절 내내 작곡에 매진했던 주인공 ‘선형’은 함께 꿈을 이루자 약속했던 친구 ‘경주’가 떠나버린 뒤 긴 방황 끝에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 여전히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한 미련과 음악을 그만두고 더 잘살 수 있는 ‘금수저’ 집안 친구에 대한 미움에 휩싸여 지내던 주인공은 의문사한 삼촌이 남긴 건물 지하에서 혀가 잘린 인어를 만나 신비로운 외모와 목소리에 홀리듯 빠져든다. 주인공은 다친 인어의 몸이 회복되려면 ‘식인’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인어가 온전한 목소리로 부르는 자신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생각에 계속 다가간다. ‘없는 게 없는 남대문 시장에는 인어도 팔았다’는 소문을 수집한 조 작가는 “수족관에서도 본 적 없는, 너무 아름다워서 두렵기까지 한 물고기들이 모여 있는 남대문 열대어 거리의 모습을 봤을 때부터 이 작품을 쓰고 싶었다”며 소설의 소재에 대해 설명했다.
작가를 준비하는 동안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가 없었다는 조 작가는 “그때부터 작품에는 언제나 신비로운 괴물들을 등장시켰다”며 “인간의 문제를 초월해버리는 괴물을 통해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꿈을 이룰 수 없는 현실 속 청년들의 고뇌를 직접 겪고 글로 풀어낸 셈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인어와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만든 노래를 들려준다. 직접 들을 수 없어도 어디선가 자신의 노래가 불릴 것이라 생각하며 돌아온 그는 마침내 시험에 합격해 공무원의 일상을 살아간다. 조 작가는 “꿈을 이룬 채 완전히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내가 사랑했던 시간을 기억해준다면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그러나 현실에는 도피한 인어가 없기에 내 소설이 잠시라도 복잡하고 무서운 현실을 잊게 만들 수 있다면 작가로서는 가장 뿌듯한 일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두 소설은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유로 과거를 모두 잊고 부정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독자들이 꿈을 위해 애쓴 시간은 지금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이기 때문이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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