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김승연 꿈 ‘한국형 록히드마틴’ 마지막 발걸음 뗐다
● 글로벌 방산기업 포석, 삼성테크윈 8400억 원 인수 ‘빅딜’
● 방산 특화 인적분할로 방산기업 정체성 강화
● 1년 반 동안 방산 통합 추진, 한화오션 인수 ‘화룡점정’
● 김동관 끌고, 김승연 밀고… ‘글로벌 챔피언’ 향한 父子 합심
2014년 11월 27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주요 계열사 사장들을 모아놓고 목소리를 높였다. 생략된 목적어는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다. 김 회장은 전날 인수를 결정한 이 회사를 제대로 키워보겠다는 욕심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록히드마틴은 육해공을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춘 글로벌 1위 종합 방산기업이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사장들은 "김 회장의 의지가 확고해 놀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분(32.4%) 인수 금액만 8400억 원에 달했다. 한화가 삼성테크윈 최대주주에 오르면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 공동경영권도 따라오는 구조였다. 삼성테크윈이 삼성탈레스 지분 50%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화학사인 삼성종합화학(현 한화임팩트)과 삼성토탈(현 한화토탈에너지스)까지 더해 총 4개사, 모두 2조 원 규모 인수합병(M&A)이 추진됐다. 이른바 '한화-삼성 빅딜'이다.
그로부터 10년 뒤 한화그룹은 김 회장의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한 마지막 발걸음을 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중심으로 방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사업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육상부터 해상, 우주에 이르기까지 방산 전 분야를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게 목표다. 현재 한화 방산 사업은 김 회장의 장남이자 그룹 후계자인 김동관 부회장이 이끌고 있다. 대를 이어 '한국형 록히드마틴'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인적분할로 탄생시킨 '순수 방산기업'
4월 5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사회를 개최하고 인적분할을 결의했다. 분할안은 출석 이사 전원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날 이사회에는 특수관계인으로서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김동관 부회장만 불참했다. 그는 현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전략부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회사 측은 이사회에 앞서 사외이사 전원이 참석한 설명회를 열고 의안의 배경과 주요 조건 등에 대해 설명했다. 이번 분할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이례적 조치다. 회사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인 만큼 충분한 설명을 제공해 합리적 판단을 끌어내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사회 직후 콘퍼런스콜을 통해 시장과 소통했고 별도의 설명 자료도 만들어 배포했다.
분할 목적은 단순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산하 사업을 '방산'과 '나머지'로 분리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기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화시스템(방산전자·위성)과 한화오션(해양방산) 외에 한화비전과 한화정밀기계를 100% 자회사로 뒀다. 한화비전은 인공지능(AI) 솔루션, 한화정밀기계는 차세대 반도체 장비 사업을 담당하는 곳으로 방산과는 접점이 사실상 없다.
분할 방식으론 인적분할을 택했다. 지주사 성격 신설 법인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가칭)를 세우고 그 밑에 한화비전과 한화정밀기계를 두는 형태다. 이후 조속한 시일 내에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와 한화비전을 합병하기로 했다. 즉 최종적으론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가 사업 지주사가 되고 그 아래 100% 자회사로 한화정밀기계가 놓인다.
분할 후 존속법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산하엔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만 남게 된다. 회사 측은 '순수 방산기업(Pure Defense Player)'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들이 삼각 편대를 이뤄 지상(한화에어로스페이스)과 해양(한화오션), 그리고 항공·우주(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까지 전 영역을 아우르는 종합 방산 솔루션(Total Defense Solution)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사업이 혼재돼 발생하던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고 기업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상윤 IR담당 전무는 콘퍼런스콜에서 "방산은 업종 특성상 경영적 판단을 내리거나 자본 배분을 할 때 고려하는 점이 다른 산업들과 다르다"며 "앞으로는 방산에 집중해 의사결정을 하고 자원을 투입하는 구조로 가겠다"고 말했다.
계획대로 재편이 완료되면 한화그룹 지주사 격인 ㈜한화 밑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가 나란히 놓이게 된다. 한화그룹은 "한화비전과 한화정밀기계 역시 독자 경영을 통해 신속하고 전문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 경영 효율성과 기업가치 극대화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방산 통합' 구심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2022년 7월에도 또 한 번 대규모 사업 구조 개편을 실시했다. 주 타깃은 ㈜한화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임팩트 3개 사다. 이때 그룹 내 흩어져 있던 방산사업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통합하기 시작했다. 규모의 성장과 제품 다양화를 통해 2030년 '글로벌 방산 톱10'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도 내걸었다. 분산돼 있던 사업 역량을 한데 모으면 수출 경쟁력이 강화될 거란 기대가 높았다.
계획대로 차근차근 절차를 밟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2년 11월 한화디펜스를 흡수합병했고, 지난해 4월엔 ㈜한화에서 물적분할된 방산부문을 품었다. 지상과 항공·우주를 책임지는 방산기업으로 거듭났다. 지난해 5월엔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한화오션을 품는다는 건 이전 사업 재편과는 격이 달랐다. 방산 포트폴리오 영역을 해양으로 확장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비로소 육해공 삼박자를 갖춰 '한국형 록히드마틴'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당시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이 실시한 2조 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49.3%를 확보했다. 이 가운데 1조 원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머니에서 나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화오션의 지분 23.14%를 쥐고 있는 최대주주다.
이렇듯 지난 1년 반 동안 순차적으로 진행해 온 방산 사업 구조 재편이 이번 인적분할로 마침표를 찍었다. 언제나 목표는 방산기업으로서 정체성 강화였다. 물론 한화오션이 호주 방산기업 오스탈 인수를 추진하는 등 향후 M&A로 덩치를 키울 가능성은 있지만 이 역시 방산 분야다.
"이제부터 진정한 시작, 글로벌 챔피언 되자"
상법상 분할안은 주총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총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특별결의사항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최대주주는 ㈜한화 및 특수관계인으로 지난해 말 기준 지분율이 33.98%다. 2대 주주는 9.06%를 보유한 국민연금이고, 소액주주가 발행주식총수의 54.33%를 보유하고 있다.
주총 출석률에 따라 가결 기준이 달라지지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경우 최대주주 지분율이 특별결의 요건을 손쉽게 충족할 만큼 높은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반 주주들의 지지를 받아 무리 없이 처리될 전망이다. 인적분할의 경우 물적분할과 달리 시장에서 환영받는 이벤트다. 존속법인과 신설법인의 주주가 동일해 주주 가치 희석 논란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주가에 호재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3월 29일 김승연 회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 연구개발(R&D) 캠퍼스를 깜짝 방문해 여전한 애정을 보여줬다. 5년 3개월이란 긴 공백을 끝내고 재개한 첫 현장 경영지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선택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김 회장이 대외 행보를 자제하기 직전인 2018년 말 마지막으로 찾은 곳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베트남 공장이었다.
이날 김승연 회장은 누리호 고도화 및 차세대 발사체 사업 단독협상자 선정을 축하하고 연구원들을 격려했다. 이 자리에는 김동관 부회장도 함께했다. 두 사람이 방문한 대전 R&D 캠퍼스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발사체 전 분야 개발 수행이 가능한 곳이다.
이 방문을 두고 재계에선 김 회장이 항공·우주 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단 의지를 드러낸 동시에 큰아들에게 힘을 실어줬다는 해석이 나왔다. 김 부회장이 현재 한화의 방산 사업 전반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
"한화의 우주를 향한 도전,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입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스스로 혁신해 글로벌 챔피언이 됩시다."
유수진 연합인포맥스 기자 sj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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