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밴드·농장체험 ‘맞춤형 늘봄’… 폐교 위기 시골학교의 부활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육·돌봄’
피아노·바이올린·뉴스포츠 등
28개 프로그램 입소문 나면서
입학생 작년 1명 → 올해 32명
전학 늘어 전교생 28명 → 53명
마을공동체 동참, 저녁식사 지원
늘봄, 전체 초교 46%가 참여중
2학기 6175개 학교 모두 시행
논산=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초등학생에게 정규 수업 외에도 맞춤형 교육과 돌봄을 제공하는 ‘늘봄학교’ 정책이 지난 3월 4일부터 학교 현장에서 본격 시행된 후 오는 12일 운영 100일을 앞두고 있다. 늘봄학교 참여 학교가 그간 현재 전체 초교의 46%에 달하는 2838곳으로 늘어난 가운데, 각 지역과 학교마다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며 다양한 성과를 남기고 있다. 농촌 소규모 초등학교에 늘봄학교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지역 소멸 극복에 기여한 사례도 나왔다. 늘봄학교가 2학기 전국 6175개 모든 초등학교에서 시행을 앞두고 있어, 우수 사례를 확산하고 남은 과제들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북적이는 등굣길…폐교 위기까지 갔던 학교 풍경이 달라졌다 = 충남 논산시 광석면에 위치한 광석초의 등굣길 풍경은 1년 전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다. 지난해 광석초의 1학년 신입생은 단 한 명,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해야 할 학교는 아침 등교 시간에도 조용하기만 했다. 개교한 지 95년, 한때 학급당 학생이 수십 명에 이르렀던 광석초는 폐교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논산 시내에서 통학하는 수십 명의 아이들을 광석초까지 셔틀버스로 태워오는 상황이 됐다. 셔틀버스가 15분 거리의 시내 아파트 단지를 돌고 오면 8시에 20명, 8시 25분에 25명 안팎의 학생들이 차례로 학교에 내린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아침 늘봄학교가 진행되는 교실로 들어가 독서토론이나 놀이체육 등의 활동을 시작한다. 대부분 1학년 학생들로, 광석초에 올해 입학한 학생은 32명에 이른다.
시내에 거주하는 아이들이 광석초로 오는 가장 큰 이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촘촘하게 이어지는 늘봄학교다. 광석초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저녁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확충하면서 주변에 입소문이 났고, 그 결과 입학생이 크게 늘어났다. 고학년 중에는 전학을 오는 경우도 생겨 광석초는 전교생이 28명에서 53명까지 늘었다. 올해 늘봄학교가 본격 시행되면서 내년 입학 의사를 밝힌 예비 초등생 부모나, 올해 중 전학을 고민하는 학부모들의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오후 4시까지, 다채로운 오후 늘봄…전교생 53명에게 일주일간 프로그램만 28개 = 지난해 하반기부터 늘봄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늘려 온 광석초는 지난 3월 4일 입학식과 함께 이를 체계화된 형태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지난 3일 찾은 광석초에서는 올해 도입된 초1 맞춤형 프로그램이 한창이었다. 다른 학년에 비해 하교 시간이 일러 돌봄 공백이 발생했던 초1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일 2시간씩 무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날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점심을 먹은 후 1시부터 차례로 피아노, 바이올린, 농장체험 수업 등이 이뤄지는 교실을 찾아갔다. 과학특별실에서 진행된 농장체험에는 농장에서 수확한 작물을 넣어 ‘또띠아 쌈’을 만드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인근 농장에서 온 강사의 지도 아래 초록 앞치마를 입은 1학년 학생 16명이 고사리손으로 당근, 오이, 파프리카 등을 ‘또띠아’에 싸 동그랗게 마는 연습을 했다.
광석초에서는 전교생이 모두 오후 늘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데 일주일간 진행되는 프로그램만 28개에 달한다. ‘개개인에 맞춘 늘봄학교’를 표방하는 만큼 도교육청과 지역교육지원청의 지원을 받아 ‘락밴드, 디지털드로잉, 뉴스포츠’ 등의 프로그램을 신설했고 원어민 강사의 영어 수업도 포함했다. 이날 만난 1학년 이산(8) 군은 요일별로 다른 프로그램을 줄줄 읊으면서 “바이올린 수업은 학교에 입학해 처음 접했는데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저녁 늘봄의 어려움, 마을공동체와 손잡고 해결…마을 유입 인구도 늘리며 선순환 = 광석초에서 운영 중인 늘봄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마을 공동체와 함께하는 저녁 ‘마을학교’를 통해 아이들을 돌본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오후 늘봄 프로그램이 끝나면 학교에서 도보 5분 거리의 광석면 주민자치센터로 이동하는데, 전교생 중 36명이 참여한다. 광석마을 주민자치회가 함께하는 늘봄학교에는 지역 내 다른 기관 아이들도 참여할 수 있어 인근 왕전초와 원봉초, 유치원 아이들도 오후 4시면 마을학교로 온다. 이들에 대해서도 광석초가 저녁 식사와 하교 차량을 지원해,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부모님이 일을 마칠 때까지 아이들이 안심하고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김주현 광석초 교장은 “지역아동센터도, 마땅히 보낼 학원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을 위해 찾은 해답은 마을참여형 늘봄학교”라며 “늘봄학교 소문을 듣고 학기 중에 아이와 함께 이사를 오는 가족도 있었다”고 말했다. 늘봄학교의 성공으로 면에 4000명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에 가족 단위까지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5학년 때 광석초로 전학 온 김가현(11) 양은 “집 근처 초등학교를 다닐 땐 2시 반이면 수업이 끝나 피아노와 영어학원을 다녔는데, 광석초에 오고 나서 다 끊었다”며 “학교 안에서 친한 친구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 즐겁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광석초를 졸업한 후 인근 광석중으로 진학하는 비율도 과거 20∼30%에 불과하던 것이 올해 93%(14명 졸업생 중 13명)로 늘었다고 한다. 지역 내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아이들이 성장해 지역 내 정착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 것이다.
◇소규모학교·과밀학교, 비슷하지만 다른 고민…교육부, 늘봄 전국 시행 앞두고 과제 해소 노력 = 김 교장은 현재 2838개교에서 시행 중인 늘봄학교에 대해 “학교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고민은 비슷할 것”이라며 크게 세 가지 과제를 꼽았다. △양질의 강사와 프로그램 확보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공간 확보 △교사의 업무부담 경감이다. 2학기 늘봄학교 전체 초교 확대에 앞서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도 꼽힌다.
광석초의 경우 학생 수가 줄어든 상태여서 공간 문제가 없었고, 지난해 9월 교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직접 시내를 찾아가 늘봄학교 설명회를 열고 프로그램 설계에도 나서는 등 교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시골 초교에 오지 않으려는 늘봄 강사들을 섭외해 다채롭고 질 높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다. 광석초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인근 대학을 통해 위탁 고용했던 늘봄학교 강사들을 학교 직고용으로 바꿔 질 관리를 강화하고, 도교육청 및 교육지원청에 순회교사를 추가 요청해 파견 인원을 늘렸다.
과밀학교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교육부는 2학기 전면 시행에 앞서 시도교육청의 컨설팅을 통한 학교 공간 효율화, 늘봄학교 전담조직인 늘봄지원실 구축 지원 등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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