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니시우스 인종차별 발렌시아팬 철퇴 '징역 8개월+축구장 출입금지', 비니시우스 "모든 흑인들을 위한 판결"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스페인에 만연하던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철퇴가 내려졌다.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에게 인종차별 행위를 한 발렌시아 팬 3명이 징역 8개월에 2년간 축구장 출입 금지 처분을 당했다. 10일(한국시각) 복수의 외신들은 '발렌시아 축구팬 3명이 비니시우스에 대한 증오 범죄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며 '스페인에서 '축구장 내 인종차별 행위'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스페인 법원은 "3명의 피고인이 피부색을 언급하는 구호와 몸동작, 노래 등으로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를 모욕한 게 입증됐다"며 "원숭이의 울음소리와 행동을 반복해서 따라 하는 행위는 선수에게 좌절감과 수치심, 굴욕감을 야기했고, 결과적으로 인간의 본질적인 존엄성까지 파괴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스페인에서는 비폭력 범죄로 2년 미만의 징역형을 받은 피고인은 전과가 없으면 추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한 집행이 유예된다. 이들 3명에게는 앞으로 2년 동안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경기와 스페인축구협회 주관 경기가 열리는 축구장 출입도 금지됐다.
사건은 지난해 5월21일 발렌시아 메스테야 스타디움에서 열린 발렌시아-레알 마드리드의 경기에서 발생했다. 레알 마드리드가 0-1로 끌려가던 후반 23분 비니시우스가 페널티지역 왼쪽으로 파고드는 순간 파울을 얻어냈다. 비니시우스가 돌파해 들어가던 중 발렌시아 페널티지역으로 다른 공 하나가 들어왔고, 수비수가 차 낸다는 게 공교롭게도 비니시우스가 드리블하던 공을 정확히 맞히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주심이 볼을 차낸 발렌시아 수비수에게 옐로카드를 주고 상황을 수습하는 사이 비니시우스가 골대 뒤편 관중과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비니시우스는 주심을 향해 특정 관중을 가르치며 인종차별 행위를 당했다고 호소했고, 레알 마드리드 동료까지 가세하며 경기는 한동안 중단됐다. 10여분 가까이 멈췄던 경기는 재개됐지만 이번에는 후반 추가시간 막판 양 팀 선수들이 감정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비니시우스가 상대 선수를 가격한 게 비디오판독(VAR)으로 발견돼 레드카드를 받았다. 발렌시아 팬들의 야유 속에 그라운드를 벗어나던 비니시우스는 손가락 두 개로 '2'를 만든 뒤 땅으로 추락하는 시늉을 하며 '2부로 떨어져라'는 몸짓을 했고, 이에 격분한 발렌시아 선수들과 또다시 몸싸움을 벌였다.
추가시간이 17분이나 주어진 뒤 결국 발렌시아가 1대0으로 승리하며 치열했던 경기가 마무리됐다.
경기 후 이 사태는 더욱 불이 붙었다. 비니시우스는 경기가 끝난 뒤 자신의 SNS에 '이번이 처음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아니다. 라리가에서는 인종 차별이 일상화됐다'고 격분했다. 이어 '한때 호나우지뉴, 호나우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가 뛰던 이 리그는 이제 인종차별자들의 것일 뿐'이라며 '라리가 사무국의 대처를 보면 인종차별을 장려하는 것 같다. 오늘날 브라질에서 스페인은 인종 차별국가로 인식된다"라며 "나를 지킬 방법이 없지만 나는 강하고 인종차별에 대항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안첼로티 감독은 "비니시우스는 피해자다. 인종차별이 만연한 환경에서도 뛰려고 했는데 모욕이 계속됐고 정말 심했다. 매우 슬픈 일이다. 지금은 2023년"이라며 "이건 미친 일이다. 축구와 사회에서 인종차별 같은 어떤 형태의 차별도 나설 자리가 없다는 걸 분명히 하고 싶다.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인종차별 피해자들과 함께 한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어떤 형태의 차별도 금지한다"며 분노했다.
하지만 하비에르 테바스 라리가 회장의 입장문이 사태의 불을 더욱 지폈다. 테파스 회장은 사과는 커녕 오히려 비니시우스를 비판했다. 그는 비니시우스의 글을 공유하며 '우리는 당신에게 인종차별이 어떤 것이고 라리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당신은 스스로 요청한 두 번의 날짜에 참석하지 않았다. 라리가를 비판하고 모욕하기 전에 당신 스스로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자신을 조종하지 말고 각자의 능력과 우리가 함께 해온 일들을 완전히 이해해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비니시우스가 초강경 대응에 나섰다. 비니시우스는 자신의 SNS를 통해 팬들이 자신을 향해 하는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행동들이 기록된 영상들을 공개했다. 비니시우스는 '매 라운드 원정경기는 불쾌한 놀라움의 연속이다. 올 시즌 유독 많았다'며 '내가 죽기를 바라고, 교수형에 처해진 인형, 수많은 범죄자들의 외침.. 모두 기록돼 있다'는 캡션과 함께 영상을 올렸다.
끔찍한 수준이었다. 비니시우스를 향해 상대 팬들이 외치는 목소리는 충격적이었다. 지난해 9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들은 '비니시우스는 원숭이'라고 소리쳤고, 3개월 뒤 바야돌리드 팬들은 '멍청한 깜둥이'라고 외쳤다. 올 2월 마요르카 팬들은 '바나나나 먹으러 가라'고 했고, 3월 바르셀로나 팬들은 '비니시우스 죽어'라고 했다. 상대 에이스인 비니시우스를 향한 상대 팬들의 안티 콜은 당연한 표현이지만, 이는 정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심각했다.
비니시우스는 '이것은 축구가 아니다. 비인간적'이라며 '인종차별이라는 증거는 영상 속에 있다. 이들이 범죄자라고 설명하는데 무엇이 부족한가. 스폰서들은 왜 라리가에 비용을 청구하지 않나. 텔레비전은 주말마다 이 야만적인 모습이 방송되는 것이 방해되지 않나'라고 울분을 토해냈다. 이어 '이 인종차별주의자들 중 이름과 사진이 노출된 사람은 한명도 없다. 누구도 슬픈 이야기를 하거나 대중에게 사과하는 사람도 없다'고 강도높에 비판했다.
결국 각계에서 이번 사태에 목소리를 높였다. 지안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비니시우스에게 전적인 연대와 지지를 표한다. 축구나 사회에서 인종차별이 설 자리는 없다. 우리는 이처럼 인종차별을 겪은 모든 선수를 지지하고 돕겠다"고 밝혔다. 브라질 내에서는 분노가 커지는 모습이다. 룰라 대통령은 "비니시우스가 그가 가는 경기장마다 모욕을 당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파시즘과 인종차별이 전 세계의 축구 경기장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요구했다. 플라비우 법무부 장관은 스페인 당국이 해당 사건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을 경우 "치외법권"을 이용해 용의자들에 대해 브라질 형법 조항을 적용하는 것까지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브라질에서는 지난 22일 오후 6시부터 7시까지 리우데자네이루에 위치한 브라질의 대표 상징물, 두 팔 벌린 예수상의 조명을 꺼 '검고 당당한 예수'를 상징하며 비니시우스와의 연대를 드러냈다.
레알 마드리드는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에게 벌어진 사건을 강하게 규탄한다. 이런 인종차별적 공격 역시 증오 범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사실을 조사하고 책임을 명확하게 할 수 있도록 법무 장관실과 검찰청에 해당 사건을 제기했다"라고 발표했다. 당초 안첼로티 감독의 발언이 잘못됐다며 오히려 화를 내던 발렌시아도 사태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자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인종차별은 발렌시아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과 폭력에 반대한다. 비니시우스에게 인종차별을 한 팬을 확인했다. 가장 빠르고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스페인왕립축구연맹(RFEF)도 당시 심판들에 대한 징계를 내리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스페인 마르카는 'RFEF의 큰 결정에 따라 나초 이글레시아스 비야누에바는 즉시 비디오 판독(VAR) 심판직을 내려놓는다. 그와 더불어, 5명의 다른 VAR 심판도 다음 시즌 심판직을 맡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비니시우스의 퇴장 조치 역시 취소됐다. 스페인 심판기술위원회는 '비니시우스가 발렌시아 선수의 난폭한 행위를 벗어나려는 의도에서 한 행위다. 퇴장은 부당한 결정이므로, 징계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법적인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CNN은 '스페인 경찰이 비니시우스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혐의로 관중 3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스페인 경찰은 이들과 별도로 올해 1월 비니시우스의 이름이 적힌 셔츠를 인형에 입혀 다리에 매달아 놓은 혐의로 4명을 추가로 체포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다. 비니시우스는 라리가, 레알 마드리드, RFEF와 함께 소송을 제기했고, 피고들은 재판 중 사과 편지를 통해 깊은 반성의 뜻을 전했다. 선고 직후 비니시우스는 자신의 SNS를 통해 다시 한번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다. "많은 이들이 내게 무시하라고 했고, 다른 이들은 내 싸움이 헛된 것이라며 '그냥 축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항상 말했듯이 나는 인종차별의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사형집행인이다. 스페인 역사상 최초의 인종차별에 대한 유죄 판결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흑인을 위한 것이다"라고 썼다. "다른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며 그림자 속에 숨어버리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들을 수거하러 올 것이다"라면서 "이 역사적인 비판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을 준 라리가와 레알마드리드에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 많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리가 하비에르 테바스 회장도 선고 직후 "이번 판결은 비니시우스 주니어가 겪어야 했던 수치스러운 사건의 잘못을 바로잡고 축구장에서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로 스페인의 인종차별과의 전쟁에 있어 매우 좋은 소식"이라고 코멘트 했다. "라리가는 이들의 신분을 끝까지 색출해 알리고 형사처벌을 내리도록 조치할 것"이라며 강경 대응의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했다. "이러한 처벌이 선고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 또한 스페인이 사법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국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라리가는 법정의 속도를 존중할 수밖에 없지만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는 속도를 높일 수 있도록 라리가에 제재 권한을 부여하는 스페인 법의 발전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비니시우스의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구단 역시 "우리 클럽의 가치를 보호하고 축구와 스포츠계에서 인종차별적 행위를 뿌리뽑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안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도 이번 판결을 "긍정적인 조치"라고 환영하면서 "확고한 실행"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축구를 대할 때 여전히 인종차별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전세계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당신은 원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 커뮤니티의 일부도 아니고 축구의 일부도 아니며 반드시 배제돼야 한다"고 썼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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