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5주년] "나 때는 말이야" 그 시절 설악산 코스, 장비, 산행기
"나 땐 그 추운 설악에서 텐트 치고 버너로 눈을 녹여서…"
월간山 창간 초기 멤버인 박영래 기자의 술자리 이야기는 늘 흥미진진하다. 월간山에서 50여 년의 세월을 보냈기에 그의 산행은 최신의 것과 최구(?)의 것이 교차한다. 그래서 아무래도 현실감이 떨어졌다. 지금은 반나절이면 가는 공룡능선 길을 4박5일에 걸쳐서 걸었다든가 하면 당시 등산이 어땠을지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그렇게 구전된 이야기를 이번에 글과 사진으로 확인해 봤다. 월간山 1984년 12월호에 실린 겨울산행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룬 특집이다. 해당 특집은 설악산 겨울코스 추천, 장비화보, 장비 운용법, 겨울산행 1년생 산행기 기고 등으로 이뤄졌다.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 그런데 40년이 지났다. 그때 설악산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리고 그 설악을 오르는 이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1 겨울산행코스 천불동~대청, 마등령~오세암 추천
'겨울 설악을 보았는가. 움푹 들어간 저항령의 눈쌓인 설사면, 눈모자를 쓰고 버틴 천화대의 검은 암봉들, 설악골을 막고 솟은 1275벽의 설편!'
겨울 설악 특집은 이렇게 글만으로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초보자를 위한 코스 가이드로 꾸며졌는데 하나는 천불동 코스, 다른 하나는 마등령 코스다. 김승진 기자는 '천불동 코스는 그 계곡의 깊이 때문에 엄숙할 정도로 적막하면서도 가끔 등산객을 만날 수 있어 긴장된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고, 마등령 코스는 장쾌한 설릉과 연이은 검은 침봉들이 연출하는 시시각각의 변화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20년 넘게 백두산을 집요하게 찍은 것으로 유명한 산악사진가 안승일씨의 작품이다.
세부 코스나 소요시간이 현재와 사뭇 다른 점이 눈길을 끈다. 가령 비선대에서 양폭까지 3시간, 소청에서 대청봉까지 1시간 걸린다고 돼 있는데 현재는 각각 1시간 50분, 40분 정도 걸리는 길이다. 당시 등산로 상태를 능히 짐작케 한다. 또한 겨울 산행이자 초보자 기준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넉넉하게 안배한 것으로도 보인다.
지금은 가지 못하는 길로 안내하기도 한다. 희운각대피소에서 대청봉으로 바로 치고 오르는 코스를 추천했다. 기사에선 '고도를 빨리 높이므로 천불동 안에서 보지 못했던 설악산의 파노라마와 지나온 천불동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등령 코스는 소공원 시작을 추천했다. 반대쪽 백담에서 오르는 것도 좋지만, 소공원에서부터 오르면 '외설악의 날카로운 침봉과 공룡능선, 그리고 대청과 중청이 이루는 유연한 능선의 대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재 마등령삼거리라고 부르는 지점을 마등령 '캠프사이트'라고 부르는 점도 재밌다. 또한 오세암에 들르면 '망경대'를 꼭 올라서 내설악의 비경을 만끽할 것을 권한다. 이곳은 현재 '만경대'라 불리며 비법정탐방로다. 또 오세암에서 용대리까지 5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지금은 백담사까지 버스가 운행해 소요시간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2 추억의 장비 한가득인 장비 화보
겨울 산 장비 화보는 주마링을 하고 있는 모델 서경씨의 강렬한 사진으로 출발한다. 하이킹, 종주등반, 빙벽등반으로 각각 나눠 필요한 장비들을 모아 보여 준다.
먼저 하이킹의 경우 큰 틀에서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등산스틱 대신 워킹용 피켈을 가볍고 견고한 것으로 선택하라고 권하는 점이 특이하다. 왜 하이킹인데 굳이 피켈을 권한 걸까?
답은 간단하다. 1984년에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등산스틱이 없었다. 등산스틱은 1988년에 들어서야 미국의 엑서스트라이더Exerstrider라는 회사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키어들의 스키폴을 등산용 스틱으로 개조해 첫 선을 보였다. 장갑도 울장갑을 추천하면서 젖으면 여벌의 울장갑으로 갈아 끼라고 권하고 있다. 1980년도에야 고어텍스 스키용 장갑이 개발됐던 것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빙벽등반과 종주등반에서는 추억의 장비들이 많이 등장한다. 액체 연료용 겨울철 버너, 즉 석유스토브는 이제 백패킹에선 무게와 관리의 문제 때문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전체가 한 몸으로 되어 있는 리지드형 크램폰도 마찬가지다. 당시에는 가운데 접합부가 움직이도록 돼있는 힌지드 크램폰에 비해 튼튼하고 안정적이란 장점이 있었으나 지금은 무겁고 사이즈 조절이 힘들어 거의 생산되고 있지 않다.
캠프슈즈(텐트 내에서 신는 양말)를 겨울 야영 필수품으로 소개한 것도 앙증맞다.
#3 따뜻한 잔소리처럼 적힌 꿀팁
앞서 겨울 산행에 필요한 장비를 화보로 보여 줬다면, 이번에는 어떤 게 필요하고, 어떤 걸 골라야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마운틴 빌라 회원 이성환씨가 하이킹, 종주등반, 빙벽등반까지 3가지 유형에 따라 글로 정리했는데 그 스타일이 퍽 정겹다.
'대관령에 첫 얼음이 얼었다느니'로 시작해 '폭설의 산을 종주하려는 산악부원들은 경비 염출을 위해 계를 하자니 선배들을 찾아다니자니 하고 있고 토왕폭 완등을 노리는 이들은 광 깊숙이 넣어두었던 아이젠과 아이스해머를 꺼내 기름걸레로 정성스럽게 닦고', '지난겨울 스패츠인지 게이터인지가 없어 발이 꽁꽁 얼어 고생을 한 적이 있는 직장동료 아가씨들은 이번 겨울에는 그것을 꼭 장만해 유쾌하게 능선을 걸어 보는 상상을 한다' 등 만담에 가까운 이야기가 한 단락에 걸쳐 시작된다. 마치 산악회의 정 많은 잔소리 아저씨가 말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본론으로 들어가면 핵심을 정확하게 짚으면서 실전 팁이 잔뜩 제시된다. 가령 당시 말썽을 자주 일으키던 아이젠 끈의 경우 '청계천에서 공업용 벨트를 3m 정도 구입한 뒤 구두수선하는 곳에 가지고 가서 가공을 부탁하면 3,000원이면 해결된다'는 식이다. 도봉산 망월사에서 취사하려는 여학생 세 명이 바람을 잘 막지 못하고, 예열도 제대로 하지 못해 불완전 연소로 그을음이 발생하고 있는 모습을 예시로 올바른 겨울 석유버너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종주등반은 하이킹의 연장선에서 설명했다. 야영장비와 큰 배낭, 여벌의 옷 정도만 더하면 된다고 간략히 설명했다.
여기선 한계령에서 귀때기청을 오르던 날의 따뜻한 에피소드가 눈에 띈다. 필자는 '국민학생과 아버지가 손잡고 가는데 두 사람 다 장갑이 없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며 '배낭에서 여벌의 양말을 꺼내 이들에게 훌륭한 장갑 대용으로 빌려주고, 아이의 운동화 위에는 여벌의 양말을 덧신게 해서 보온력을 높이고 스패츠를 대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내의를 자주 갈아입으면 훨씬 쾌적하다는 조언은 지금도 유의미하다.
빙폭등반은 지금은 사라진 브랜드들이 다수 언급돼 있다. 기사 옆에 광고지면이 재밌다. 피켈 및 아이젠 가격이 4만~5만 원대다. 1985년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 500~600원 선이었으니 엄청난 가격이다. 당시 빙벽등반은 거의 귀족스포츠와 다름없었을 것 같다.
#4 '하얀 세계에서는 순수하지 못한 세계를 생각할 수 없다'
이어지는 3편의 초보 산꾼들의 겨울 산행기는 참 풋풋하다. 겨울산행의 어려움과 고단함, 그리고 이를 잘 극복하지 못했을 땐 솔직하게 드러내는 아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이를 '겨울산행 1년생'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재치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 당시 고려대 산악회원 철학과 2학년이었던 송재규씨의 글이 비범하다. 그는 어린 시절 '비에 젖은 대지가 그날따라 거뭇해 보였는데 오직 그 산봉우리만이 티끌 하나 없이 하얀 눈으로 덮여 있어 거기서 범할 수 없는 고고함과 순수를 느꼈다'고 했다.
그 '하얀 산'에 대한 인상과 동경을 갖고 설악을 오르게 됐는데 그는 내설악의 검은 암봉군을 보며 뜬금없이 '온통 하얗기만 할 것 같던 설악에서 검은 바위들을 보고 불쾌함과 무례함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다시 이를 곰곰이 생각한 끝에 '검은 대지 위에 대비된 하얀 봉우리에서 느낀 고고함을 절대적 가치인 양 규정한 것은 성급한 생각'이었다고 바로고치며 '겨울 설악의 그 하얀 세계에서 순수한 세계를 느꼈다기보다는, 그런 하얀 세계에서는 순수하지 못한 세계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정리했다.
이러한 글을 남긴 그가 궁금해 잠깐 기록을 추적해 봤다. 송재규씨의 이름은 1990년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 남벽 한국 초등 원정, 1995년 고려대학교 개교 90주년 기념 초모랑마(에베레스트) 원정대, 2008년 고려대산악회 창립 70주년 공로패 명단 등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고려대산악회에서 2010년대 중반까지는 꾸준히 국내외 등반 활동을 이어간 것으로 확인된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아직도 하얀 세계에서는 순수하지 못한 세계를 생각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을까?
*송재규씨의 근황을 알고 계신 분은 월간山 메일(san@chosun.com)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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