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침체인데”…15만평 옛 미군기지에 2.6조원 개발 추진

박수혁 기자 2024. 6. 1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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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춘천 캠프페이지…19년째 빈터로 방치
공원→도시재생→산업·주거단지로 계획 변동
“분양·임대 원활치 않으면 부담은 시민에게”
“시민에게 혜택 없어 도심 쇠퇴 불 보듯 뻔해”
시장이 바뀔 때마다 매번 청사진도 바뀌면서 19년째 빈터로 방치되고 있는 캠프페이지 터 전경. 춘천시 제공

“미군 기지였던 캠프페이지의 도시재생 혁신지구 추진은 지난 20년 동안 지켜온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무시한 것이며, 절차적 정당성 또한 상실했습니다.”

오동철 춘천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1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오 위원장은 “2000년대 초 캠프페이지 반환 운동을 시작으로 지난 20여년 동안 지역 시민사회는 춘천시와 함께 캠프페이지 개발을 논의해왔고, 결국 부지 전체를 ‘시민공원’으로 만들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지만 육동한 시장 취임 이후 춘천시는 기존 계획을 폐기하고 사실상 ‘부동산 개발 사업’인 국토교통부 공모 절차에 참여했다. 춘천시 주장처럼 혁신지구 사업이 꼭 필요했다면 충분한 논의를 거쳤어야 함에도 ‘도둑 신청’이라는 촌극을 벌였다”고 비판했다.

춘천시가 추진 중인 도시재생 혁신지구 구상안. 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기존 공원으로 예정됐던 부지의 50% 정도가 상업·숙박 등을 위한 복합용지와 주거용지로 바뀐다. 춘천시 제공

시장 바뀔 때마다 변경…19년째 빈터

강원 춘천시 도심 한복판에 있는 옛 미군 기지인 캠프페이지 개발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놓고 ‘산업·상업·주거 복합공간’과 ‘시민공원’ 계획이 충돌하는 모양새다.

캠프페이지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현재 위치인 춘천 근화동에 건설됐으며, 춘천시는 2005년 3월 미군이 철수하면서 폐쇄된 이후 기지 터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문제는 시장이 바뀔 때마다 청사진도 바뀌면서 19년째 빈터로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대 중반 민선 6기 때는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본뜬 시민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2020년대 접어들 무렵인 민선 7기 들어 강원도청사를 캠프페이지로 옮겨 새로 짓고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겠다고 계획을 수정했다. 하지만 이번 민선 8기 출범 이후 춘천시는 기존 계획을 다시 뒤집고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혁신지구 국가시범지구 사업과 연계한 캠프페이지 개발 계획을 세웠다. 서울 여의도공원(22만9539㎡)의 2배가 넘는 캠프페이지 터 51만5천㎡에 케이(K)콘텐츠 등 각종 첨단산업을 유치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뼈대다. 이를 위해 기존 공원 부지의 50% 정도를 상업·숙박 등을 위한 복합용지와 2200가구 규모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바꿨으며, 필요한 사업비는 2조7천억원에 이른다. 춘천시는 지난 7일 신청서를 제출했으며, 오는 8월께 최종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춘천시의원들이 지난 4일 춘천시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혁신지구에 문제를 제기하는 모습. 연합뉴스

2조7천억원 투입…제2의 알펜시아 우려도

춘천시가 또다시 캠프페이지 개발 계획을 수정하자 시민사회단체 등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제대로 된 시민 의견 수렴 절차가 미흡했다는 것이다. 이경순 춘천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춘천시는 공모 마감일을 앞둔 지난달 29일에야 관련 공청회를 열었고, 공청회도 토론자뿐 아니라 좌장까지 찬성 입장 일색으로 채워져 충분한 논의가 전혀 이뤄질 수 없었다”고 날을 세웠다.

캠프페이지 혁신지구 사업이 ‘제2의 알펜시아’가 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권용범 춘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혁신지구 사업은 2조7천억원을 투자하고 회수해야 하는 사실상 부동산 개발 사업이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상업시설 관련 투자가 지연되거나 분양·임대가 원활하지 않으면 막대한 부지 조성 비용과 이로 인한 이자 비용 등이 그대로 춘천시와 시민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알펜시아 등 공공이 추진한 대규모 개발 사업으로 인한 혈세 낭비 사례를 고려해 이제라도 제대로 된 검증과 논의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춘천시 이통장연합회가 지난 5일 캠프페이지 개발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절차 무시” 대 “강원도청과 협의”

캠프페이지 터 활용 문제는 시민사회뿐 아니라 지역 정치권에서도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국민의힘 강원도당은 논평을 내어 “혁신지구 아파트 및 상권 계획은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공원과 연계한 관광산업 발전 잠재력을 송두리째 없앤 조처”라며 “주변 도심 쇠퇴가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강원도당은 “혁신지구 지정은 (국민의힘 소속 김진태 강원지사가 있는) 강원도청과 논의해 공모를 신청했다. 또 지난 총선 당시 노용호·김혜란 국민의힘 후보도 약속했던 내용인데 이제 와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방어에 나섰다.

사업과 관련해 춘천시 쪽은 “주거용지 도입은 도시재생 혁신지구에 있어 필수요소”라며 “대규모 자본 투입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공모 과정에서 국토부 등으로부터 철저한 검증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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