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천안의 '세 나비'

윤평호 기자 2024. 6. 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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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물과 공기의 경계에서 나비가 난다"고 썼다(유병록, 나비). 지난달 작고한 시인 신경림은 나비가 되어서 지척인 고향마을까지 철조망 넘어 가고 싶은 실향민 심정을 '나비의 꿈'으로 묘사했다.

재앙화되는 지구 기후 악화로 꿀벌은 물론 나비 개체 수도 줄고 있지만 하늘 아래 평안한 땅, 천안에는 역사의 상혼을 간직한 '세 나비'가 있다.

세 번째 나비의 고향은 천안시 원성동 충남학생교육문화원 한편에 건립한 '충남 4·19 혁명 기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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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부장

시인은 "물과 공기의 경계에서 나비가 난다"고 썼다(유병록, 나비). 지난달 작고한 시인 신경림은 나비가 되어서 지척인 고향마을까지 철조망 넘어 가고 싶은 실향민 심정을 '나비의 꿈'으로 묘사했다. 동서양 문화에서 나비는 이승과 저승의 매개체로 여겨진다. 동양에서 흰 나비는 죽어서 떠나간 사람의 영혼을 은유한다. 그리스신화 속 프쉬케는 고대 그리스어로 나비와 함께 마음과 영혼, 숨을 뜻한다.

재앙화되는 지구 기후 악화로 꿀벌은 물론 나비 개체 수도 줄고 있지만 하늘 아래 평안한 땅, 천안에는 역사의 상혼을 간직한 '세 나비'가 있다.

첫 번째 나비의 안식처는 신부동 천안평화공원. 이곳은 천안 평화의 소녀상, 일생을 반민족친일행위 연구에 전념한 임종국 선생의 조형물, 그리고 6월 민주항쟁 30년 충남 기념 표석을 품고 있다. 그 가운데 평화의 소녀상에 여러 마리 '나비'가 새겨졌다.

두 번째 나비는 천안시 목천면 독립기념관 들머리에 있다. 독립기념관 주차장 인근 보은의 공원에는 지난해 3월 '충남지역 강제동원 노동자상'이 세워졌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한 체격의 노동자상은 한 손에 곡괭이 하나를 움켜쥐고 있다. 곡괭이 한쪽 끝에는 강제노동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 내겠다는 굳은 의지의 소산으로 '나비'가 자리했다. 세 번째 나비의 고향은 천안시 원성동 충남학생교육문화원 한편에 건립한 '충남 4·19 혁명 기념비'다. 2023년 4월 개막식을 가진 기념비의 전면부에 '나비'가 형상화됐다.

세 나비가 등장하는 조형물은 모두 시민들의 주도와 기부로 탄생했다. 세 나비는 우리 역사의 진전을 웅변하는 증거들이자 자기라는 협소한 틀을 벗어나(나非) 다른 이들과 기꺼이 연대하는 시민성의 상징으로도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천안의 정체성이 주어진 소극적 평안이 아닌, 만들어가는 적극적 평안에 있음을 확고히 보여준다.

그리고 2024년. 누대에 걸쳐 피·땀·눈물로 이룬 우리 사회 평화와 정의가 곳곳에서 금 가며 무너지고 있다. "나비 한 마리 기어이/ 온 우주를" 날 듯(권지숙, 나비, 날아가고) 작은 몸짓일지언정 더 많은 나비의 파동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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