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단단익선(短短益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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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시절 유학생들의 소소한 즐거움은 타향에서 한국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었다.
온라인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VHS 비디오테이프로 담긴 한국 프로그램을 유학생과 동포끼리 돌려보곤 했었는데 그중 베스트는 명의 허준의 일생을 담았던 64부작 드라마가 담겼던 32개 비디오테이프 컬렉션이었다.
자연스레 실내 거주 시간이 야외 생활보다 압도적으로 길어지니 그런 시간을 즐길 콘텐츠들도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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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시절 유학생들의 소소한 즐거움은 타향에서 한국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었다. 온라인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VHS 비디오테이프로 담긴 한국 프로그램을 유학생과 동포끼리 돌려보곤 했었는데 그중 베스트는 명의 허준의 일생을 담았던 64부작 드라마가 담겼던 32개 비디오테이프 컬렉션이었다. 방학 기간 이 컬렉션 하나면 향수병을 달랠 수 있을 정도였다.
요즘은 그런 장편 드라마가 드물다. 대부분의 콘텐츠와 매체가 점점 짧아진다. 보통 추운 나라일수록 콘텐츠의 길이가 길다. 위도가 높은 북유럽이나 러시아는 겨울이 길고 일조량도 짧다. 자연스레 실내 거주 시간이 야외 생활보다 압도적으로 길어지니 그런 시간을 즐길 콘텐츠들도 길어졌다. 이를테면 도스토옙스키의 유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경우 한국어판본은 1500페이지가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일일 드라마를 시청할 TV가 없던 시절, 잠들기 전까지 벽난로 앞에 앉아 매일 조금씩 읽어가기에 장편 대하소설은 최적의 콘텐츠였다.
음악 또한 낭만주의 시대 유럽 가정에선 가족이 각각 하나씩의 악기를 배워서 저녁 식사 후 간단한 피아노 3중주나 음악에 맞춰 시 낭송회를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사람들은 몰두할 콘텐츠가 필요했고, 각각의 장르 콘텐츠들은 거기에 걸맞은 시간으로 쓰였다. 그러던 20세기 초, 축음기의 발명은 모든 음악의 규격을 4분 30초로 제한하는 현상을 가져온다. 레코드 한 면에 4분 30초만 수록할 수 있었던, 무려 71년 동안, 음악 시장에서 상업적 성공은 4분 30초에 달려있었다. 여기저기 가위질하고도 시간이 넘치면, 나누거나 아예 속도를 빠르게 해서 수록했다. 점점 음악은 빨라지고, 긴 음악들은 잘려 나갔다.
영화도 3시간 언저리의 상영시간이 대세였지만, 상영관 상영 횟수를 증가시키고 매체에 수록하기 위해 잘라내다 보니 2시간이 넘어가는 영화가 길다는 인식이 생길 정도로 짧아졌다. 모든 것이 짧아지던 추세에 기름을 부은 것이 스마트폰의 출현이다. 모든 콘텐츠를 손바닥 안으로 불러온 스마트폰 덕분에 콘텐츠 감상에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없어졌다. 가짓수에 제한이 없어진 콘텐츠들끼리 경쟁을 하게 되고, 이제 사람들은 콘텐츠 선택에 장애를 느낄 정도로 많은 콘텐츠를 다루고 있다. 오죽하면 OTT 서비스로 영화를 시청하는 시간보다 메뉴화면에서 영화를 고르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하겠는가.
그래서 콘텐츠의 첫인상을 보여주는 섬네일(엄지손톱만 한 작은 화면)과 강렬한 예고편이 흥행을 좌우하게 됐다. 짧은 시간 여러 앵글과 컷, 텍스트를 박진감 있게 담아내려니 점점 짧아진다. 짧은 시간 동안 간편하게 즐기는 콘텐츠의 필요성도 두드러졌다. 요즘은 광고의 목적으로 드라마의 한 장면을 쇼츠나 릴스로 토막 내서 뿌려댄다. 그리고 효과는 확실하다. 그래서인지 어떤 건 보지도 않았지만,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다 아는 드라마도 생겼다.
음악도, 영화도, 책도, 모든 것이 짧아진다. 그래야 팔리고.
단단익선(短短益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서필 목원대 성악·뮤지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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