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푸대접 싫다, 해외 대우 더 좋아”…의사들 ‘엑시트’에 환자들은 어쩌나

심희진 기자(edge@mk.co.kr), 강민호 기자(minhokang@mk.co.kr) 2024. 6. 11.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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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눈 돌리는 의사들
의대생·전공의·전문의들
美 의사자격 시험 ‘열공’
우수의료진은 러브콜 받기도
“언어장벽에 경쟁도 치열
해외정착 어렵다” 의견도
의정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지난 4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해외에서 의사 생활을 한다는 건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죠. 하지만 의정갈등이 장기화되고 플랜B가 절실해지면서 외국 병원에서 일하는 데 관심이 생겼고 지금은 영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서울 소재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3년간 근무했던 사직 전공의 C씨는 현재 해외 의사 자격시험을 알아보고 있다. C씨는 “요즘 동료들과 만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화 주제가 외국 면허시험 준비”라며 “지금 사태에선 우리나라에서 의사하기 힘들 것이란 데 모두가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대 본과 4학년 학생들 중에서도 졸업 후 곧장 해외로 나갈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의료대란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전공의, 전문의, 의대생들 사이에선 해외 면허시험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강대강으로 치닫는 의정갈등으로 인해 국내 의료체계 정상화를 기대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베트남, 중동국가 등이 해외 의대 졸업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점도 이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미국 테네시주 정부는 오는 7월 1일부터 외국 의대 졸업생이 이 주의 병원에서 2년 근무하면 의사 면허증을 발급해준다. USMLE(미국 의사 면허시험)를 보지 않아도 의사 자격을 가질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다만 미국 ECFMG(외국 의대 졸업생 교육위원회)의 인증을 받은 의대를 졸업하고 3년 이상의 전공의 수련을 마쳤다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테네시주 외에도 일리노이주와 플로리다주, 버지니아주 등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법을 제정했고 조만간 시행할 예정이다. 현재 외국 의대 졸업생을 대상으로 면허 발급 문턱을 낮추기 위한 법안을 준비 중인 곳은 10여개 주에 달한다.

미국뿐 아니라 일본, 베트남, 아랍에미리트 등도 의료인력 유치에 열을 올리면서 해외로 눈을 돌리는 국내 의사들이 늘고 있다. 전문의 D씨는 “최근 하노이의 한 병원에서 3년차 이상의 경력을 가진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의사를 모집한다고 해 관심갖고 알아보는 중”이라며 “최대 3000만원의 월 수입은 물론 숙소와 항공권, 자녀 학비까지 보장해주겠다는 공고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와 의대 교수 단체가 오는 18일 집단휴진을 선언한 가운데 10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 보호자들이 지나가는 의료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의대증원 문제를 둘러싼 의료대란이 장기화하자 이 틈을 파고들어 국내 의사들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해외 병원들도 많아졌다. 실제 빅5 병원의 한 안과 교수는 최근 미국 병원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고 조만간 옮기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급종합병원의 E 교수는 “의료 민영화가 안된 한국에서는 의사들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다는 걸 외국 병원 관계자들 역시 잘 알고 있다”며 “실제 중동 지역 병원들의 경우 현재 연봉의 2배를 주고 통역사와 거주지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많이 해온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 그중에서도 교수는 의료계 내에서도 전문성이 강한 집단이다 보니 좋은 조건의 이직 제안을 꽤 받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한의사협회의 총파업 결의에 해외시장으로의 인력 유출 가능성이 더해지면서 의료공백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의 한 교수는 “외국 면허시험 준비가 실제 얼마나 실행에 옮겨질지는 잘 모르겠으나 젊은 의사들이 해외에서 답을 찾아보려고 애쓴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나라 의료에 비극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실제 국내 의사들이 해외 병원에 정착하기란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없는 사람이 현지에서 의료행위를 하려면 J-1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정부로부터 해외 수련 추천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관련 지침에 따르면 신청일 기준 1년내 경고, 면허정지, 면허취소 등의 행정처분을 받은 의료인은 추천서 발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집단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경력이 있는 의사들에게는 추천서를 써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다른 난관으로는 병원 채용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거론된다. J-1 비자와 의사 면허증을 모두 갖췄다 해도 세계 각국에서 몰려오는 지원자들과 경쟁을 통해 일자리를 따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서 활동 중인 의사 가운데 해외 의대 출신은 인도와 필리핀 졸업생이 각각 20%, 8%로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영어권 국가에 속해있어 면접 등에서 국내 지원자보다 유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 현지 의료계에 강력한 네트워크를 이미 구축한 상태라 다른 국적 지원자보다 손쉽게 자리잡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생활 자체의 어려움도 존재한다. 서울 시내 대학병원 한 전공의는 “지인 중에 미국에서 전공의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사람을 봤다”며 “다양한 환자를 만나며 영어로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고 해외 생활이 처음이라 향수병도 심하게 느꼈다고 한다”고 말했다. 병역 문제도 해외 진출에 앞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현재 많은 전공의들은 수련 과정을 마친 후 군의관으로 입대하는 것을 조건으로 병역을 미루고 있다. 이 때문에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전공의들은 병원을 사직할 경우 빠른 기간 내 입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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