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의 연금개혁 승부수가 드러낸 것
연금개혁은 흔히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 비유된다. 한국 사회는 2007년 이후 17년 동안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했다. 그런데 제21대 국회 막바지에 보기 드문 ‘연금 정치’가 펼쳐졌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국면을 주도했다. 연금개혁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였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5월7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여야 합의가 불발될 때만 해도 연금개혁은 물 건너가는 듯했다. 월 소득에서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는 데는 사실상 여야 간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소득대체율이다. 은퇴 뒤 받는 연금액이 젊을 때 벌던 생애 평균소득의 몇 퍼센트를 대체하는지 뜻하는 개념인 ‘소득대체율’을 기존 40%에서 43%로 올리느냐(국민의힘 안), 45%로 올리느냐(더불어민주당 안)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5월10일 유경준 연금특위 여당 간사가 “야당은 소득대체율 44% 수정 제안에 책임 있는 답변을 하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지만, 이후에도 뚜렷한 진전은 없었다.
5월23일 이재명 대표가 제21대 국회 임기 안에 연금개혁을 처리하자며 “영수회담을 개최할 용의가 있다”라고 말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대통령실은 “국회에서 여야가 밀도 있게 대화해서 합의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사실상 거부했다. 이튿날인 5월24일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은 (소득대체율) 44%와 45% 사이에서 타협할 의사가 명확하게 있다”라며,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나는 3자 회담이라도 하자고 재차 정부여당을 압박했다. 그러나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국회에서 (연금개혁 논의가) 마무리되기 전에 대통령이 여야와 섞여서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다.
토요일인 5월25일 이재명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이 제시한 소득대체율 44%를 전적으로 수용하겠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국민의힘은 “소득대체율 44%는 구조개혁이나 다른 부대조건들이 합의되었을 때의 조건부 안(유경준 간사)"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이튿날인 5월26일 일요일 오전 11시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만이라도 제21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하자고 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2시30분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졸속으로 처리하기엔 너무나 중요한 국정과제다. 여야정 협의체와 연금개혁 특위를 구성해 22대 첫 정기국회(9월1일부터 100일) 내에서 처리하자”라고 민주당에 제안했다. 결국 제21대 국회 마지막날인 5월29일까지 여야는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소득대체율 43%와 45%를 둘러싸고 대립하다가 44%로 의견이 모일 뻔했는데, 정부·여당이 작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민주당의 전향적 결단을 걷어찬 것인가? 언론의 대체적 평가는 그러한 듯하다. 제22대 국회가 시작되면 연금특위를 새로 구성해야 한다. 2026년은 지방선거, 2027년은 대선이다. 한국 사회는 1998년 이래 26년간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조금도 올리지 못했다. 여당 내에서 윤희숙 전 의원이 5월24일 처음으로 “지금은 보험료를 13%로 올리는 데 여야가 합의를 이뤘다는 것이 중요한 진전이다”라며 이재명 대표 제안을 즉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22대 국회가 시작됐을 때 연금개혁 이슈가 지금과 같은 주의를 끌 수 있을지 너무나 불확실하다”라는 게 그 이유였다. 나경원·윤상현 의원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이대로라면 1990년생이 65세가 되는 2055년에 국민연금은 고갈된다. 기금이 소진된 뒤 보험료로만 연금을 줘야 할 경우, 해당 시점의 일하는 세대가 지금 수준의 연금을 받으려면 월 소득의 최대 35%(2078년)까지 보험료로 납부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소득대체율(40%)의 연금을 받기 위해 이전 세대는 9%만 내던 보험료를 갑자기 4배 가까이 내라고 한다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미래세대는 없을 것이다. 기금 고갈을 최대한 뒤로 미뤄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이재명 대표가 마지막에 제안한 대로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4%포인트 올리고 소득대체율도 40%에서 44%로 올리면 기금 고갈은 2055년에서 2064년으로 9년 늦춰진다.
한정된 재원을 누구에게 쓸 것인가
그러나 연금개혁의 목표는 기금 고갈을 미루는 것만이 아니다.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 안은 보험료율을 올리긴 하지만 소득대체율도 올리기 때문에, 기금 고갈 뒤 미래세대가 내야 할 최대 보험료율이 기존 35%에서 38.3%로 뛴다. 물론 미래세대 최대 보험료율 자체는 소득대체율 43%인 경우(국민의힘 안, 37.5%)나 45%인 경우(민주당 안, 39.1%)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소득대체율이 40%와 45%인 경우의 GDP 대비 국민연금 총지출액 비중은 대략 1%포인트 차이가 난다. 결코 작은 돈이라고 하기 어렵다(〈그림〉 참조).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이대로라면 기금 고갈 뒤 미래세대가 내야 할 보험료율이 35%까지 오른다고 해서 연금개혁을 추진하는 것인데, 어째서 미래세대의 보험료율을 오히려 더 높이는 소득대체율 인상을 여야 모두 제시했을까?
소득대체율 인상을 정당화하는 논리 중 하나가 국고 투입이다. 기금 소진 뒤 월 소득의 38.3%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추정은 어디까지나 보험료로만 연금을 지급할 때의 얘기다(현실적으로 이 정도 보험료율을 부과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대해 ‘보험료로만 연금액을 충당할 게 아니라 국가 재정을 투입해 부족분을 메우면 된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이 경우 GDP 대비 국민연금 총지출액은 최대 10% 안팎이 된다. 현행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는 경우의 GDP 대비 국민연금 총지출액 비중(9.5%, 2082년)보다는 늘어나지만 이 정도 부담은 한국의 경제 규모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25년 국민연금 총지출액이 GDP 대비 2.1%임을 고려하면, 2080년대의 10% 안팎이라는 수치는 지금보다 크게 늘어나는 거라고 봐야 한다. 가뜩이나 증세가 쉽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이 정도 재정을 누가 얼마만큼 부담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세금 역시 미래세대의 부담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향후에는 고령화로 의료비 지출이 커질 예정이다. 한국의 보험료율(9%)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8.2%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 지금 수준의 소득대체율만 유지하려 해도 당장 보험료율을 두 배 올려야 재정 균형이 맞는다.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는 한 연금개혁이 아닌 ‘개악’이라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필요한 것은 오직 보험료율 인상뿐이라는 반박이다.
이런 비판에 대해 이재명 대표는 소득대체율 인상이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받기 위해 불가피하다”라고 말한다. 보험료를 더 내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연금을 더 받는다는 반대급부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취지다. 최근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가 진행한 공론조사(학습과 토론 등 숙의를 거쳐 의견을 묻는 조사) 결과, 끝까지 참여한 시민대표단 492명 중에서 ‘더 내고 더 받기(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 1안)’를 선택한 시민이 56.0%로, ‘더 내고 그대로 받기(보험료율 12%-소득대체율 40%, 2안)’를 선택한 이들(42.6%)보다 13.4%포인트 더 많았다(〈시사IN〉 제868호, ‘17년 멈춘 연금개혁 한 걸음 나아가려면’ 기사 참조).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는 공론화위원회 다수안인 1안과 보험료율은 같은데 소득대체율이 6%포인트 낮다. 이재명 대표는 5월25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시민사회 내에선 민주당이 왜 44%까지 낮춰 합의하느냐는 반론이 분명 있다. 저도 전화 꽤 많이 받고 있다. 그런데 한술 밥에 배부를 수가 없다. 두 걸음 못 가면 한 걸음, 한 걸음 못 가면 반걸음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13%-44%’가 ‘반걸음 가는 안’인지 모호하다는 점이다. 연금 재정을 안정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은 앞에서 짚었다. OECD 1위인 노인빈곤율을 낮추는 데는 효과적인가? 사실, 소득대체율 40%는 40년 동안 보험료를 꼬박꼬박 부은 사람에게나 해당하는 ‘명목’ 수치일 뿐이다. 현재 국민연금 평균 가입 기간은 20년 정도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은 최소 10년은 가입해야 받을 수 있고, 일부 재분배 기능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소득이 높고 오래 가입할수록 받는 연금액도 많다. 이런 상태에서 명목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고소득층일수록 추가로 받는 연금액이 증가한다.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릴 경우 국민연금에 40년 가입한 저소득자(월 150만원)의 월 연금은 23만원, 평균 소득자(월 300만원)는 30만원, 고소득자(월 590만원)는 45만원 오른다. 고소득층일수록 가입 기간이 긴 점을 감안하면, 연금액 증가 격차는 더 커진다.
유럽 국가들의 국민연금 평균 가입 기간은 약 35년에 이른다. 한국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이 월 62만원(2023년 기준)에 불과한 건 평균 가입 기간이 20년도 채 안 될 만큼 짧은 탓이 크다. “동일한 국고를 연금 급여액을 높이는 데 사용한다면, 가입 기간 연장에 사용하는 편이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데 사용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며 형평성도 높다.” 공론조사에서 소수안인 소득대체율 유지를 주장했던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의 말이다. 당장의 보험료가 부담스러워 내지 못하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나 프리랜서 등 저소득 지역가입자들에게 보험료를 지원하거나, 군복무·출산·실업 기간을 국민연금 가입 기간으로 인정해주는 크레딧 제도를 통해 가입 기간을 늘려 ‘실질 소득대체율’을 높이자는 제안이다. 장기적으로는 현재 만 59세까지인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보험료를 부을 수 있는 최대 나이)도 64세로 늘리면 역시 가입 기간 확대에 도움이 된다. “명목 소득대체율도 올리고 가입 기간 연장도 지원하자고 할 수 있다. 물론 둘 다 하면 좋겠지만, 재원은 한정되어 있다(김태일 교수)."
재정 투입을 무제한으로 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면, 누구에게 우선 쓸 것인가? 연금개혁은 이를 결정하는 문제다. 그래서 고전적인 정치 의제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얼마로 할지 정하는 ‘모수개혁’을 넘어서, 연금제도의 틀을 아예 뜯어고칠 수도 있다(이를 ‘구조개혁’이라 한다). 예컨대 국민연금 최소 가입 기간 10년을 채우지 못했거나 채웠더라도 연금액이 낮은 노인들을 위해, 보험료를 붓지 않았어도 세금으로 지원하는 ‘기초연금’이라는 제도가 있다. 현재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월 33만원을 지급하는데, 앞으로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재정 부담이 계속 불어날 전망이다. 액수가 낮아 빈곤 개선 효과도 적다. 기초연금 지급 대상을 좁혀서 가난한 노인에게 더 많은 연금액을 주라는 OECD 권고를 검토할 만하다.
기초연금의 빈곤 예방 효과가 커지면, 노인 빈곤 개선을 위해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애초에 소득대체율을 올려도, 그 혜택은 높은 노인빈곤율을 이루는 현재의 노인이 아닌 미래 은퇴자들에게 돌아간다. 이미 은퇴한 노인들은 연금액이 확정되어 있거나 아예 국민연금에 포괄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먼저 하면 기초연금 재편 동력이 약해질지도 모른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이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같이 해야 한다고 강조한 데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어느 쪽이 여당인지 혼란스럽다”
다만 이런 비판이 공허하게 들리는 건, 윤석열 정부가 집권 2년이 지나도록 구조개혁이든 모수개혁이든 자신의 연금개혁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기초연금을 월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고, 지난 5월9일 기자회견에서도 임기 내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계속 기초연금을 지급할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국민연금법은 5년마다 재정계산을 통해 정부가 연금개혁안을 마련하도록 했지만, 5차 재정계산 결과가 나온 뒤인 지난해 10월 말 윤석열 정부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얼마로 할지, 기초연금을 누구에게 얼마나 줄지 개혁안에 명시하지 않았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5월26일 기자간담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 단일안이 언제 나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제22대 국회에서)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하면 거기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의 연금개혁 승부수를 두고 허를 찔렀다는 평이 나왔다. 4월29일 영수회담에서 이 대표가 연금개혁 처리를 꺼내고 윤 대통령이 “22대 국회로 넘기자”라고 할 때부터 정부·여당은 수세에 몰렸다. 〈조선일보〉 사설은 “어느 쪽이 여당인지 혼란스럽다”라고 썼다. 이재명 대표가 정국의 주도권을 쥐었다며 ‘여의도 대통령’이란 별명까지 거론됐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점진적으로 낮추되 보험료율(9%)은 그대로 두고 기초연금을 도입하는 연금개혁을 했다. 소득대체율은 엄밀히는 올해 42%이고 2028년부터 40%가 되는데, 양대 노총과 참여연대 등 진보 진영은 이 추세를 되돌려 소득대체율을 45%나 50%로 올리자고 주장해왔다. 민주당도 이런 입장이었다. 이 시각에서 보면 통 큰 양보로 표현된 44% 역시 (재원에 대한 해법이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소득대체율 40%를 저지한다는 상징성이 있다. 재정 안정을 중시해온 국민의힘이 소득대체율 43~44%를 제시한 건 공론화 결과에 대한 존중도 있겠지만, 민주당이 정말로 받을 줄은 몰랐을 거라는 해석도 있다.
어떤 정치공학적 목적이나 계산이 있었든 간에, 연금개혁 사상 첫 공론조사 뒤에도 흐지부지될 뻔했던 개혁의 불씨를 제1야당 대표가 살려냈다. 급기야 여당 지도부가 ‘22대 첫 정기국회 내에 연금개혁을 처리하자’고 말하게 만들었다. 그간 정부 입장에서 가장 부담스러웠던,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공감대를 여야가 이룬 것이다. ‘구조개혁까지 제대로 해야 한다’며 민주당 제안을 거절하고 제22대 국회로 넘긴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계속 자신의 연금개혁안을 내지 않는다면, 개혁 의지가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을 올리기보다 가입 기간 확대를 지원하자’라거나 ‘기초연금을 더 어려운 노인들에게 많이 주자’고 설득한다면, 민주당은 대응 논리와 재원 마련 방안을 내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007년 이후 17년간 멈춰 있던 ‘연금 정치’가 어쩌면 제22대 국회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