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을 피하는 방법 [편집국장의 편지]

변진경 편집국장 2024. 6. 11.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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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조직에서 어쭙잖게 편집국장 직책을 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종종 '리더의 유혹'에 흔들리게 됩니다.

"예전 국장이 잘못 판단한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을 뿐이야"라는 못난 말이 입안에서 뱅뱅 돕니다(문정우 남문희 김은남 이숙이 고제규 이종태 차형석 전 편집국장 선배, 죄송해요). '잘되면 내 덕, 못되면 네 탓'이라는 남사스러운 마음이 축축한 손에 붙은 비닐봉지처럼 잘 떨어지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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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시사IN〉 제작을 진두지휘하는 편집국장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리 시대를 정직하게 기록하려는 편집국장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조그마한 조직에서 어쭙잖게 편집국장 직책을 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종종 ‘리더의 유혹’에 흔들리게 됩니다.

첫째, 조직에 좋은 일이 생기면 자꾸 나서서 구성원들에게 자랑하고 싶습니다. 제가 잘 해서 얻은 성과가 아닌데도요. 기자가 특종거리를 물어오거나, 우리 보도가 어디에서 상을 받거나, 독자들이 기사에 좋은 평가를 보내올 때마다 제가 그 성과를 ‘브리핑’하고 싶은 유혹을 참기가 힘듭니다.

반면 실패와 과오는 인정하기가 참 어렵습디다. ‘내가 저렇게 하자고 한 적 없는데?’라는 유치한 억울함이 마음속에서 울컥 올라옵니다. 이른바 ‘전 정권(국장) 탓’입니다. “예전 국장이 잘못 판단한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을 뿐이야”라는 못난 말이 입안에서 뱅뱅 돕니다(문정우 남문희 김은남 이숙이 고제규 이종태 차형석 전 편집국장 선배, 죄송해요). ‘잘되면 내 덕, 못되면 네 탓’이라는 남사스러운 마음이 축축한 손에 붙은 비닐봉지처럼 잘 떨어지질 않습니다.

또 하나 스스로에게 놀란 것이, 싫은 소리 할 것 같은 동료와 선후배와는 별로 만나고 싶지가 않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저를 격려하고 지지하고 응원해주는(물론 ‘겉으로만’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에게만 둘러싸여 있고 싶습니다. 저의 능력 부족을 간파한 것 같은 이들은 눈치 보며 피해 갑니다. 어쩌다 마주치면 괜히 피곤하고 성난 표정을 지으며 바쁜 척하고요. ‘우쭈쭈’ 해주는 이들 앞에서는 기분도 좋아지고 목소리와 몸짓도 커지고 술도 한잔씩 돌리게 됩니다.

ⓒ시사IN 신선영

하루는 〈시사IN〉 후배들 몇몇이 저를 불러 무언가를 제안하며, 예전에 제가 했던 ‘발언’을 언급하더군요. 화들짝 놀랐습니다. 편집국장 후보 시절 청문회에서 내놓은 공약이라는데, “녹취 파일 있어?”라고 물어버렸습니다. 그땐 분명 진심이었던 기억이 나는 듯도 하지만, 당장은 회피하고 싶어졌습니다. 장밋빛 약속으로 뱉은 말들에 이제는 꼼짝 없이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편집국원 직선제로 선출된 〈시사IN〉 편집국장은 임기가 2년입니다. 임기 1년이 지나면 ‘중간평가’라는 것도 합니다. 편집국장이 실책을 거듭해서 편집국 재적 인원 3분의 2 이상이 불신임하면 조기 임기 종료를 맞습니다. 탄핵을 피할 방법은 하나, ‘리더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길이겠죠. 성과에 설레발치지 않고, 과오를 인정하고, 쓴소리를 경청하며, 했던 말에 책임을 져서 임기를 무사히 마치겠노라고 독자님들 앞에서 다짐해봅니다.

저 말고도 다른 더 크고 중요한 직책을 맡은 리더들도 모두 ‘리더의 유혹’에서 벗어나 임기를 꽉 채우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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