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당국자·이스라엘 대사·전문가 3인에게 듣는 가자 전쟁 해법

노지원 기자 2024. 6. 1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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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 정치국 관료 “이스라엘, 어떻게 끝내야할지 몰라”
주한 이스라엘 대사 “하마스 군사·정치적 역량 없애겠다”
9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 중부 누사이라트 남민 캠프에서 한 여성과 어린이가 이스라엘 공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로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군사, 정치적 역량을 없애겠다.”(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

“이스라엘은 목표 달성에 실패했고 앞으로도 못 할 것이다.”(하마스 정치국 관료 바셈 나임)

“이스라엘 내에서 (가자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재건하고 싶어 하는 강력한 세력이 확실히 있다.”(도브 왁스먼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교수)

지난해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가자전쟁이 8개월을 넘었다. 개전 이후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 대규모 포격과 지상군 공격을 계속해, 가자지구 민간인 희생도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지구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9일까지 가자지구에서 3만7084명이 숨지고, 8만4494명이 다쳤다. 최근 이스라엘에서는 전쟁이 적어도 연말까지 이어질 거란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박멸”이라는 전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그리고 전후 가자지구의 미래는 어떨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묵은 해법인 ‘두 국가 해법’은 아직 유효한지에 대해 당사자와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한겨레는 지난 3~5일 하마스 정치국 소속 고위 관료인 바셈 나임 전 가자지구 보건부 장관(2006~2012),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 그리고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나자리안 이스라엘연구센터를 이끄는 도브 왁스먼 교수를 화상 및 대면으로 인터뷰했다.

하마스 정치국 소속 고위 관료인 바셈 나임 전 가자지구 보건부 장관. 본인 제공

전쟁 어떻게 끝날까…가자지구의 미래는?

“불행히도 그들은 어떻게 전쟁을 끝내야 할지 모른다.”

나임 전 장관은 카타르 도하 사무실에서 이스라엘이 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으로 예상하는지 묻자 “그들은 내부 분열을 겪고 있다. 일부는 가자지구를 재점령하고 유대인을 데려오자고 하고, 누군가는 공격을 끝내고 가자지구에서 철수하고 자결권을 주자고 한다. 어떤 이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가자지구로 데려오자고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3일 화상으로 만난 그는 이스라엘이 “저항 운동을 파괴하고 인질을 구하려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고, 앞으로도 못 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에서는 전쟁 종식 뒤 가자지구 미래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이스라엘 사상 가장 극우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베냐민 네타냐후 연립정부 내에서도 대표적인 극우 인사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 베잘렐 스모트리치 재무장관 등은 ‘가자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재건설하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5일 만난 토르 대사는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재점령하지도, 정착촌을 다시 짓지도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일부 극우 장관의 주장을 이스라엘 정부의 시각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목표는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군사적·정치적 역량을 없애고 인질을 구출하는 것”이라며 “아직 달성하지 못한 상태다. 하마스의 군은 여전히 건재하고, 가자지구 지도자 야흐야 신와르는 가자 어디엔가 있는데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을 통해 가자지구 주민을 이집트 시나이반도 등 국경 너머로 몰아낼 의도라는 의혹도 있다. 그러나 지난 5일 화상으로 만난 왁스먼 교수는 가자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이 재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가자지구 ‘밖’으로의 추방 위험은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이집트가 이를 자국 주권,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가자지구가 “정말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남을지다. 그는 현재 이스라엘군의 대피 명령으로 가자 ‘내부’에서 피란민의 “강제 이주”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향후 군이 국경 등 특정 지역을 “완충 지대”로 삼아 “사람이 살지 못하게 할 위험”은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두 국가 해법’ 불씨 살아 있나?

“하마스도,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아닌 ‘제3의 대안’이라는 건 환상이다.”

왁스먼 교수는 이스라엘의 전후 계획에 대해 “이스라엘과 협력할 팔레스타인인을 찾더라도 암살당할 가능성이 높다. 하마스가 존재하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제3자가 권력을 갖는 걸 막을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전쟁 8개월이 넘도록 구체적인 전후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하마스와는 절대 공존할 수 없고, 대중적 인기를 상실한 파타흐 중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믿을 수 없기에 이들에게 통제권을 주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토르 대사는 “극단화하지 않고 하마스 지배를 받지 않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가능성에 회의적”이라며 당장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두개의 국가로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을 이-팔 분쟁의 궁극적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네타냐후 정부는 회의적이다.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토르 대사는 “궁극적으로 가자지구의 미래는 팔레스타인인에게 맡겨야 한다”면서도 국가 지위 대신 “자치권”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국가가 건설돼 극단화하고, 이란과 군사적 동맹을 결성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며 국가 지위를 당장 부여할 순 없다고 했다. 그는 일단 ‘아랍 국가’가 임시 연합체를 구성해 팔레스타인이 자치권을 가지기 전까지 가자지구를 관리하고 향후 하마스와 같은 극단적인 단체의 공격이 완전히 사라지면 그 뒤에 국가 인정 여부를 고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주장한다. 나임 전 장관은 “국제법에 따라 우리는 독립된 주권 국가와 모든 피란민의 귀환을 원한다”며 “팔레스타인이 스스로 지도부를 정할 수 있게”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전후 통치 계획으로 “가자지구, 서안지구, 예루살렘을 통치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통합 정부”를 제시했다.

“하마스 박멸”, 가능할까?

“핵심은 이스라엘을 해칠 수 있는 하마스의 군 지도부와 군사 능력을 파괴할 수 있느냐다.”

토르 대사는 “이데올로기로서의 하마스는 박멸할 수 없다”고 인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 제거와 인질 구출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앞세워 전쟁을 계속해왔다. “박멸”이라는 수사를 앞세우지만,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하는 정치·사회적 운동으로서의 하마스를 지워내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스라엘도 알고 있다.

전문가들은 하마스의 군 역량을 약화할 수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면서도 완전한 파괴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왁스먼 교수는 하마스 군 조직의 날개를 꺾더라도 “하마스 사상에 이끌린 무장대원이 없으리란 법은 없고, 되레 (이들 ‘저항 세력’을 향한) 정치적 지지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마스는 군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네트워크 등으로 점철된 “다면적 조직”이라는 말도 보탰다. 그는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는 가자지구나 요르단강 서안지구뿐 아니라 카타르, 튀르키예 등 다른 나라에도 있으며, 전세계에 지지 세력과 자금 모금 네트워크가 있다고 했다. 그는 “하마스가 지난해 10월7일 같은 일을 (당장) 또 저지를 순 없더라도, 주민 동의에 따라 하마스를 대체할 팔레스타인 정부를 세우지 않는 한 이들이 여전히 이스라엘인을 향한 폭력·테러 행위를 할 순 있다”며 이스라엘군이 초토화한 뒤 철수했던 가자지구 북부에서 하마스가 복귀해 이스라엘군이 재공격에 들어갔던 최근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왁스먼 교수는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대중에게 인기를 얻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며 “그들이 이스라엘에 대항해 무장 투쟁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브 왁스먼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 본인 제공

나임 전 장관 역시 “오늘날에는 ‘하마스’이지만 30년 전에는 파타흐였고, 10년 전에는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이었다”며 “이스라엘은 그들과 맞서려는 새로운 세대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교착’ 휴전 협상…바이든 제안으로 물꼬 트일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하마스와 이스라엘에 ‘3단계 휴전안’을 제안했다. ① 6주간 휴전, 이스라엘군 “모든 밀집 지역”에서 철수, 인질 100명과 수감자 수백명 맞교환, ② 남은 생존 인질·수감자 석방,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철수, 영구적 휴전 시작, ③ 가자지구 재건 및 사망 인질 주검 귀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2단계가 시작하기 전까지 협의가 길어져도 ‘일시 휴전’을 계속한다는 내용 외에는 대부분이 5월 초 결렬됐던 협상안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고 전해진다.

하마스는 이 제안에 “긍정적”이다. 나임 전 장관도 “타결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 제거”라는 원칙을 재차 강조한다. 토르 대사는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권력을 유지하고 군사 능력을 재건하길 원한다”며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야흐야 신와르가 하마스 깃발을 들어 올리며 승리를 선언하는 걸 볼 수 없다”고 했다.

왁스먼 교수는 이번 휴전 협상을 둘러싼 양쪽의 정치적 목표가 “양립이 어려운 제로섬”이면서 이스라엘군 가자 철수와 영구 휴전은 “하마스의 승리를 의미하지만 이스라엘에는 패배를 의미”한다고 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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