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獨·伊 휩쓴 극우… EU 정치지형 ‘우향우’ 속도 빨라질 듯 [심층기획-2024 슈퍼선거의 해]
10대 유럽의회 출구조사 결과
중도우파 EPP 1당 유지 유력
리뉴유럽 등 중도 의석 빈자리
강경우파 정치그룹들이 채워
佛 국민연합 득표율 32% 전망
사상 첫 단일정당 30%대 득표
마크롱 “국민에 발언권 주겠다”
의회 해산·조기 총선 전격 발표
EU 내 극우 입지 더 굳건해져
기후변화 등 정책 변경 불가피
친러 정당 득세로 안보도 영향
우크라戰 공조 불확실성 고조
유럽의회가 10일 오전 11시38분 발표한 잠정 예측 결과에 따르면 현재 제1당 격인 중도우파 성향 유럽국민당(EPP)이 전체 720석 중 185석을 얻어 유럽의회 내 제1당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총 705석 중 176석을 점유했던 9대 때와 비슷한 성과다. 제2당인 중도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D)이 9대 때보다 2석 줄어든 137석으로 예측됐다. 반면 제3당인 중도성향 ‘리뉴 유럽’이 기존 102석에서 79석, 녹색당·유럽자유동맹이 72석에서 20석 줄어든 52석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두 정당이 내준 의회 내 비중은 강경우파 성향 정치그룹들이 채웠다. 극우 정치그룹 ‘정체성과 민주주의(ID)’가 기존 49석에서 58석으로, ‘유럽보수와 개혁(ECR)’이 69석에서 73석으로 의석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프랑스, 독일 뒤흔든 극우의 선전
27개국 중 프랑스가 선거 결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 출구조사에 따르면 극우 성향 ID에 소속된 국민연합(RN)이 약 32%의 득표율로 압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출구조사 결과대로라면 RN은 유럽의회 선거 역사상 프랑스 단일 정당으로는 처음으로 30% 이상 득표율을 기록하게 된다. RN은 2년 전 프랑스 대통령선거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결선투표까지 치르며 치열하게 싸운 극우정치인 마린 르펜이 이끄는 정당으로 마크롱 대통령의 친정인 르네상스당의 예상 득표율인 15.2%를 두 배 이상 넘는 지지를 받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선거의 예측 결과가 발표된 지 약 한 시간 만에 국민들에게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국수주의자와 선동가의 부상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그리고 유럽과 세계 내 프랑스의 입지에 대한 위험”이라고 선거 결과에 대해 유감을 표한 뒤 “오늘의 결과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넘길 수는 없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발언권을 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회를 해산하고 이달 30일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독일도 비상이 걸렸다. 독일 출구조사에서 29.5%의 득표율을 얻은 보수 성향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에 이어 극우 성향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16.5%의 득표율로 2위에 올랐다. 올라프 숄츠 총리의 친정인 사회민주당(SPD)이 AfD에 밀려 3위에 그쳤다.
AfD가 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논란을 만들어왔기에 이번 선전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AfD 소속 막시밀리안 크라 의원은 지난달 이탈리아 언론과 인터뷰에서 “친위대 제복을 입었다고 모두 범죄자는 아니다”라며 나치 준군사조직인 친위대(SS)를 두둔하는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유럽의회에서 가장 극우적 정치그룹인 ID조차 이를 문제시해 AfD를 퇴출시키기에 이르렀다. AfD는 독일 내부에서 소속 정치인들이 각종 뇌물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AfD가 독일 국민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자 독일 정계는 당황하는 분위기다. 야당들은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조기 총선 실시를 숄츠 내각에 촉구했다고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전하기도 했다.
반면, 이탈리아의 경우 극우 성향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이끄는 집권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이탈리아의 26~30%의 득표율로 제1당 자리를 굳힐 것으로 관측돼 정부가 정치적 동력을 한층 더 확보하게 됐다.
극우 정치 세력이 압승을 거둔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가 EU를 사실상 주도하는 국가들이기에 향후 EU 내에서 극우의 입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자연스럽게 유럽 27개국의 정치·경제 연합체인 EU의 주요 정책에도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뜨거운 감자’인 이민 문제에서부터 환경,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방 정책은 물론 경제문제에 이르기까지 주요 정책 전반에 극우 진영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2010년대 중반 이후 유럽 극우의 성장 배경이 된 이민자 문제는 향후 5년 동안 EU 의제의 최우선 순위가 될 것이라고 미국 CNN은 평가했다.
유럽이 오랫동안 선도해온 기후변화 대응 등 환경과 노동 인권 관련 정책 등도 이번 선거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이들 정책은 오랜 불황과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물가 급등으로 유럽 내에서 유권자들에게 조금씩 지지세를 잃는 중이었다. 올해 들어 수개월간 유럽 곳곳을 휩쓴 ‘트랙터 시위’에 놀란 EU가 이미 농가에 대한 환경규제 대폭 완화를 약속하기도 했다. 유럽의회의 보수 성향이 강화된 만큼 후퇴의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
안보 측면에서는 친러시아 성향인 극우정당의 득세로 러시아 침공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 차원의 공동 지원 기조가 불투명해질 여지가 커졌다. 미국 등의 지원을 벗어난 ‘자강론’이 더 힘을 얻을 가능성도 있다. 부테카 교수는 “사실 국방 관련 이슈는 일반인들보다 정치인들이 먼저 들고 나온 측면이 있는데, 대중들의 호응이 늘어났고 이번 선거를 통해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에 약진한 ID와 ECR이 대러시아 입장 등 여러 분야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ID와 ECR이 유럽의회 내 안보 논의에서 협력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면서도, 이민 정책부터 기후 정책에 이르기까지 여타 의제에서는 EU의 전반적인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브뤼셀=글·사진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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