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의 대명사’ 일본차가 어쩌다...세계 최대 車 도요타의 추락
효율성 중시 경영책, 안전 인증 체계 경시하는 풍조 만들어
현지 언론, “일본차 신뢰도에 치명타”
품질의 대명사로 불리던 일본차의 명성이 크게 실추됐다.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회사이자 일본 완성차업계를 대표하는 도요타자동차가 국가 안전 인증을 받는 과정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올해 초부터 계열사의 인증 부정으로 논란이 있었는데 본사 차원의 조작까지 드러난 것이다.
일본 현지 언론들은 사상 최대 규모의 리콜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도요타 뿐만이 아니다. 도요타 자동차 외에도, 마쓰다, 야마다, 혼다 등 일본 완성차 제조사 다섯 곳의 부정행위도 함께 드러났다. 완성차 업계에서 일본차는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명성을 쌓아왔는데, 이번 사태로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현지 매체들은 “도요타 사태가 일본차 신뢰에 치명적인 상처를 줬다” “품질을 무기로 세계를 이끈 일본차가 흔들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10일(현지 시각) CNBC에 따르면 도요타의 시가총액은 인증 부정행위가 드러나면서 1주일만에 약 2조4500억엔(약 156억2200만 달러) 규모가 증발했다. 도요타의 시총은 지난달 31일 53조7186억엔(약 472조원)에서 지난 7일 마감 기준 50조8440억엔으로 2조8746억엔(약 25조원) 감소했다. 이날 도쿄증시에서 도요타의 주가는 3272엔으로 마감했다. 도요타의 인증 비리가 밝혀지기 직전 거래일인 5월 31일(3401엔) 대비 3.8%가량 하락한 가격이다.
도요타를 400조원이 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동력이 될 수 있었던 핵심은 기술 지상주의 및 품질 제일이라는 원칙에 있었다. 도요타는 섬유회사 일본방적으로 시작했다.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에 불과했던 창업자 도요타 사카치는 물레에서 실이 자동으로 끊어지는 기계를 발명하면서 당시 혁신적이었던 자동방적기를 만들어냈고 자본을 축적했다. 이때문에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미국에 에디슨이 있다면 일본에는 사카치가 있다’라는 말도 있다.
방적회사 수익을 기반으로 1933년 도요타는 자동차사업을 시작했다 1936년 일본의 최초의 자동차 도요타AA가 탄생했고, 태평양 전쟁때는 물자를 수송하는 트럭을 판매하면서 자동차 회사로서 기반을 닦아나갔다. 도요타의 성장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군수차량의 수요의 급감으로 1950년 6월 파산신청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지역은행들이 도요타의 채무상환 유예를 거절하고 협력업체들은 대금지불 유예도 거절했다. 당시 심각한 경영위기로 창업자까지 사망하면서 도요타의 미래는 없는 듯했다.
하지만 도요타는 한국 전쟁으로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은 군수용으로 도요타 트럭을 대량 주문했고, 이에 도요타는 중형트럭 도요타 BM을 판매하며 겨우 회생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도요타는 미국 시장에 나섰는데, 1970년대 전세계적인 석유 파동을 겪은 뒤 일본차의 뛰어난 연비와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때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내구성 좋은 차량을 생산한다는 이미지가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각인돼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이번 사태는 최근 추락한 일본 자동차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일본 정부로부터 촉발됐다. 지난해 도요타의 자회사가 국가 인증 절차를 부정한 방법으로 통과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올해 초 일본 내 자동차 제조 관련 기업들 85개사를 대상으로 정부가 과거 10년간의 품질 인증 자료를 전수조사한 것이 계기였다. 일본차의 신뢰를 다시 보여주고자 한 조사가 모순적이게도 신뢰를 완전히 깨뜨리는 결과를 만든 것이다.
부정행위로 인한 생산·출하 정지로 도요타의 협력체 및 지역 경제의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품질인증 관련 부정행위가 있었던 도요타의 코롤라 등 3개 모델에 대해 출하를 정지시켰고 이에 따라 도요타는 이달 말까지 해당 차종들을 생산하는 두 공장이 생산을 멈춘다. 이 공장들의 연간 차량 생산 규모는 연간 약 13만대에 이르는데다 1차 협력업체만 약 200곳, 2차 이상 협력업체를 포함하면 1000개 사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 사태의 원인은 도요타가 추구해온 효율 경영책, ‘적시 공급(JIT·Just In Time)’과 ‘도요타 생산 방식(TPS)’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량 부품 재고 없이 그때그때 필요한만큼 자재를 조달하고, 고객의 주문량 만큼 생산하는 원칙인데, 이를 지키며 도요타는 비용을 줄이고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JIT는 1980년대 일본 제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극단적 효율만 중시하다 보니 불량품·자동화 오류 등 허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전에도 2009년 자동차 매트가 가속페달에 끼어 급발진을 유발하는 ‘페달 게이트’로 대형 리콜을 진행한 바 있다.
효율 경영에 초점을 맞춘 도요타는 2000년 이후 미국의 완성차업체 GM도 꺾고 최근까지 4년 연속 글로벌 판매 1위,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로 명성을 쌓아왔지만 내부에서는 안전 인증보다 생산을 중시하는 문화, 납기를 맞추기 위한 부정행위 등이 눈사태처럼 커져 있던 것이다. 이같은 닛케이는 “효율성을 중시하던 도요타의 자정능력이 낮은 수준이라는 게 부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사태가 도요타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생산이 중단된 3개 차종의 생산량인 13만 대는 연 전체 생산량의 1% 수준이다. 국토교통성은 해당 차종에 대한 안전성 테스트를 이달 완료할 방침인데, 결과에 따라 내달부터 다시 생산될 가능성도 있다. UBS증권은 “1개월 판매 중단으로 영업이익은 최대 150억엔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는데,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4조3000억엔)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적보다 중요한 부분은 일본 자동차 업계에 대한 신뢰 문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주총에서 도요타가 설득력 있는 재발 방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며 “도요타 회장의 발언은 기업의 모멘텀을 좌우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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