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의 이정재는 '서양인 흉내' 내지 않는다...그게 조회수 세계 1위 비결?
제다이 정신 뿌리 '동양 스승' 파격
서양 배우 재현 당사자성 한계 부숴
"무게 중심 잡아줘"
드라마 공개 후 인종차별 반응 줄어
미국, 캐나다서 1위로 출발
'이정재 효과'...디즈니플러스 최다 재생
디즈니 투자 '무빙' 등 K콘텐츠와 대조
"가족 브랜드 관리 엄격" 美선 따로 유통
#장면: 눈을 지그시 감고 가부좌를 튼 10여 명의 아이들. "무엇이 떠오르는지 말해보거라"라고 스승이 주문한다.
불가의 참선 수행 풍경이 아니다. 지난 7일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된 '스타워즈' 시리즈 '애콜라이트' 1화의 한 장면이다. '아이들'은 우주 평화를 지키는 기사인 제다이들. 배우 이정재가 그들의 스승 마스터 제다이 솔로 등장한다.
47년 전통의 할리우드 '스타워즈' 시리즈에 아시아 배우가 제다이 마스터로 온 건 처음. 드라마는 이정재를 통해 동양식 제자 수련 장면을 1분 넘게 그린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핵심이자 제다이 힘의 근원인 '포스'는 동양 사상의 기(氣)에서 유래했다. 이정재는 그 포스를 직접 사용하며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동양적 세계관을 부각한다. 성상민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정재가 제다이를 훈육하는 장면은 그간 '스타워즈' 시리즈가 서양 배우들을 통해 재현한 제다이 마스터의 오리엔탈리즘과 당사자성의 한계를 부수는 시도"라고 봤다.
한국 스승, 미국 SF 시리즈에서 '90도 인사' 받다
솔은 자애로운 인품에 지혜를 겸비한 '참어른'으로 추앙받는다. 솔을 만나면 제자인 요드(찰리 바넷)는 경례하는 대신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한다. '애콜라이트'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가장 앞선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1999)보다 100년 앞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미국의 건국 신화에 비견되는 '스타워즈' 시리즈 속 제다이 리더십의 뿌리가 동양인 스승에게 있다는 설정은 파격이다. 그간 할리우드 자본으로 만들어진 드라마와 영화에서 아시아 배우는 주로 '착한 이민자' 등 주변인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동양적 색채는 목재로 창살을 짠 세트 등 곳곳에서 진하게 묻어난다. 2화에서 3분여 동안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격투 장면에서 이정재가 상대와 광선검 날을 맞대는 대신 멈춘 듯 움직이는 정중동(靜中動)의 동양적 무술로 적을 제압하는 게 대표적이다.
"'와호장룡' 주윤발 보는 것 같아"
이정재는 1화 중반부터 등장하지만 그 뒤 이야기를 이끌며 드라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엔딩 크레디트에도 그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온다. 이정재는 중저음의 중후한 목소리로 영어 대사를 비교적 차분하게 소화했다. 1, 2화가 공개된 뒤 드라마에 대한 평은 극과 극으로 갈리지만, 이정재의 마스터 제다이 연기에 대한 국·내외 시청자 반응은 일단 호의적이다. 미국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인 레딧엔 "이정재가 (드라마의) 무게중심을 잡아줬다" "그의 차분한 연기가 인상적이다" "영화 '와호장룡' 속 무사 리무바이(주윤발)가 '스타워즈'에 왔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드라마 공개 전 유색인종이 '스타워즈' 시리즈 주요 배역을 맡은 것에 대한 인종차별적 반응을 고려하면 확 달라진 양상이다.
"디즈니가 이정재로 아시아, 젊은 구독자 공략"
'애콜라이트'는 '이정재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6일(현지시간) 공개 직후 미국과 캐나다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부문 정상에 오른 뒤 9일까지 나흘 연속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미국 대중문화전문지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애콜라이트' 1, 2화는 공개 당일 480만 건의 재생수를 기록했다. 디즈니플러스가 올해 공개한 콘텐츠 중 가장 높은 수치로 '스타워즈' 시리즈 최근작인 '아소카'(2023) 평균 조회수보다 1.7배 많다.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애콜라이트'는 '스타워즈' 골수팬들의 입장에선 아쉬울 수 있지만, 초심자에겐 이 시리즈에 대한 장벽 없이 볼 수 있는 게 특징"이라며 "디즈니가 이정재를 기용해 점점 올드해지고 덕후화되는 시리즈의 대중적 변화를 꾀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애콜라이트'의 이런 성과는 디즈니플러스가 400억 원의 제작비를 투자해 만든 것으로 알려진 '무빙'(2023)과 '삼식이 삼촌'(2024) 등 K드라마가 미국 현지 차트에서 외면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K드라마 콘텐츠를 미국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디즈니의 자회사인 또 다른 OTT 훌루에서만 디즈니가 투자한 K드라마를 볼 수 있다. 미국 디즈니플러스와 한국 등 일부 해외 국가 디즈니플러스의 K콘텐츠 유통 방식이 달라서다. 디즈니플러스의 세계 유료 구독자수는 올 1분기 기준 1억1,760만 명으로, 훌루(5,020만 명)와 비교해 2배 이상이다.
디즈니플러스가 투자한 K드라마가 미국 OTT 시장에선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국내 업계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글로벌 OTT 동향에 정통한 콘텐츠 시장 관계자는 "디즈니는 가족 브랜드 이미지 관리에 엄격하다"며 "방탄소년단(BTS) 관련 콘텐츠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디즈니플러스에서도 볼 수 있는 데, K드라마는 서비스하지 않는 게 그 맥락"이라고 말했다. '애콜라이트'의 시청 등급은 국내 기준 12세 이상 관람가이고, '무빙'은 18세 이하 청소년 관람 불가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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