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초 詩 전문 계간지 ‘시와사상’…30년 버텨낸 위대함

조봉권 기자 2024. 6. 1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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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문단 중심주의 강고했던 때 그것도 어려운 모더니즘 시 주제

- 지역 문단 가시밭길에 발 내디뎌
- 1년도 못 버틸거라던 예상 깨고
- 치열하게 생존, 대표 문학지로

지난 7일 저녁 부산 서면 한 음식점에서 시 전문 계간지 ‘시와사상’ 김경수 발행인, 박강우 주간, 김혜영 편집위원, 김예강 부주간, 강혜성 편집장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시인이다. 1994년 5월 15일 여름호로 창간한 시와사상 30주년을 맞이해 마련된 이야기 자리였다.

‘시와사상’ 편집·운영진이 부산 서면 도서출판 세리윤 회의실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박강우 주간, 김경수 발행인, 김예강 부주간, 이효림·안규봉 편집운영위원, 김혜영 편집위원, 강혜성 편집장, 서유·임헤라 편집운영위원. 시와사상 제공


부산 최초 시 전문 계간지 시와사상이 걸어 온 30년 역사 속에 놀랍도록 다채로운 시 문학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 자체가 지역 문학예술의 현실을 보여주고 가능성을 증명하는 명장면 모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시와사상은 창간 30주년 기념 심포지엄 ‘포스트휴머니즘과 신유물론의 시학’을 오는 22일 오후 3시 부산일보사 10층 소강당에서 연다. 창간 30주년 기념 여름호도 곧 나올 예정이다.

▮깃발


유명한 의사이기도 한 김경수 발행인은 30년 전 첫걸음 순간부터 함께했다. 역시 의사 시인인 박강우 주간과 함께 창간 주역이다. 김 발행인이 회고했다. “김영삼 문민정부가 1993년 출범하면서 문화예술 영역에서도 민주화와 자유 분위기가 한결 강해졌습니다. 동시에 문학 매체가 거의 모두 서울에 집중돼 있던 탓에 ‘중앙 문단’ 중심주의는 강고했죠.” 부산 시인들도 모여 기존 무크지(부정기간행물) 형태 문학 활동을 넘는 새로운 모색을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이미 대구에서 전국 첫 지역 단위 시 전문 계간지 ‘시와반시’가 1992년 가을호로 창간돼 나오고 있던 때였다. 드디어 정영태(1949~2005) 시인이 일을 매조졌다. 의사 시인으로, 부산 문학계에서 신망이 두텁고 치열하게 시를 썼던 정영태 시인이 앞장섰다. 정영태 김경수 박강우 송유미(작고) 이근대 시인이 1994년 초 발기인으로 참여해 ‘모더니즘’을 기치로 걸고 그해 5월 시와사상을 창간했다. 부산 첫 시 전문 계간지였고, 전국 차원에서는 대구에 이어 두 번째였다.

▮버티고 꽃피우다

시와사상은 모더니즘 시를 택했다. 그때 부산에서 우세했던 리얼리즘 서정시와 비교하면, 강도 높은 새로움과 거침없는 전복·해체를 주저하지 않는 모더니즘 시는 어렵다. 30년이 지난 지금, 시와사상은 한국 시단 전체에서 지명도·신뢰도가 높은 시 계간지로 자리 잡았다는 평을 받는다. 만약 시와사상이 그때 일찌감치 출발해 지금 같은 모더니즘 시의 근거지·기지를 구축해 놓지 않았다면 부산 시단 풍경은 어떻게 됐을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시와사상 궤적을 통해 ‘잡지의 힘’을 되새겨볼 수 있다.

그런데 초창기부터 함께한 이들이 떠올리는 기억은 결이 다른 듯했다. “생존! 저는 생존만 생각했어요. 살아남자! 어떻게 다음 호를 만들지!” 김 발행인의 말이다. 시와사상은 지난 30년 대형 후원자에게 기대지 않고 편집진·운영진의 자체 노력을 중심에 놨다. 시 전문 계간지가 시장에서 먹힐 상품과는 거리가 있다 보니 재정난은 일상이었다. 지평·빛남·소명·동남기획·세종출판사 등 지역 출판계 도움도 받고 갖은 노력을 기울이며 여기까지 왔는데 결호는 한 번도 없다.

“문학계 모든 사람이 1년을 못 버틸 거라고 했죠.”(박강우 주간) 시와사상은 현재 시와사상문학상(최휘웅 시인의 큰 도움에 힘입었다)·시와사상 신인상을 운영한다. 시와사상출판사를 통해 시와사상 시인선을 왕성히 펴내 왔다. 2006~2018년 의학박사 김상겸 선생의 후원으로 솔뫼창작지원금을 운용했다. “한국 시단에서 비중이 높은 ‘스타 시인’도 꽤 배출했지요. 무엇보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신뢰받는 문학 잡지로 성장했음을 피부로 느낍니다.”(김 발행인)

▮시인 정영태(1949~2005)

이야기를 듣고 취재하고, 자료를 살피면서 ‘정영태’라는 이름이 여전히 우뚝함을 느꼈다. 2005년 56세 아까운 나이에 타계한 의사 시인 정영태는 부산 문단의 ‘불꽃’이었다. 시의 계열이나 장르가 다른 문학인·예술인이 모두 ‘그들 각자의 정영태’를 간직한 경우가 부산에는 여전히 많다. 이들 부산 예술가는 여전히 각자 경험과 시선에서 고인을 그리워하고 높이 평가한다.

정영태 시인의 치열한 문학 인생은 시와사상 30년 역사에서도 확인됐다. 그가 부산대 의대 시 문학 동아리 ‘회귀선’ 선후배를 만나 깃발을 든 것이 시와사상 창간으로 이어졌다. 부산문화재단이 진행했던 지역예술인 아카이빙 사업 등에서 고 정영태 시인을 다룰 필요가 있다.

▮지원정책의 효용

김 발행인은 이런 이야기도 들려줬다. “싼값에 인쇄해 줄 출판사를 찾는 일도 벽에 부딪히고 발행비가 바닥나 ‘아! 이제 접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럴 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제도가 생기거나 부산문화재단의 지원 프로그램을 만나며 기사회생하곤 했다.” 이 대목에서 예술을 단순히 시장 논리로 재단하지 않는, 눈 밝고 속 깊고 꾸준한 예술지원정책의 효용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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