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04> 금동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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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5일 불기(佛紀; 석가모니가 열반한 기원전 544년을 기준으로 삼는 연대 표시) 2568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불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사찰을 찾았다고 한다.
부산박물관도 다양한 불상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국보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 금동보살입상(사진)이다.
곧게 선 자세의 청동 보살상을 도금한 것으로, 현존하는 통일신라 금동보살입상 중 크기가 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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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5일 불기(佛紀; 석가모니가 열반한 기원전 544년을 기준으로 삼는 연대 표시) 2568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불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사찰을 찾았다고 한다. 저마다 염원을 적은 연등을 올리고 불상 앞에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던 불상은 일반적으로 부처의 존상만을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살상과 천왕상 명왕상 나한상 등 불교의 모든 예배 대상을 포함하기도 한다.
부산박물관도 다양한 불상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국보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 금동보살입상(사진)이다. 곧게 선 자세의 청동 보살상을 도금한 것으로, 현존하는 통일신라 금동보살입상 중 크기가 큰 편이다. 머리에 남아있는 3개의 구멍, 허리 뒤쪽과 발바닥의 돌출된 고정용 촉으로 보아 본래 별도의 보관(寶冠)과 광배(光背)를 부착하였고, 대좌도 갖췄을 것으로 추정된다.
엄숙하면서도 자비로운 얼굴에 당당하게 편 가슴과 잘록한 허리, 정병을 들고 있었던 듯한 우아한 손끝, 팔찌뿐인 간소한 장식, 어깨에 걸친 천의(天衣)와 허리에 두른 군의(裙衣; 치마)의 자연스러운 옷주름이 특징인 이 유물은 통일신라시대 금동보살입상을 대표하는 유물로 인정받아 1979년 4월 30일 국보 제200호로 지정되었다.
호남 방면 지리산 골짜기 어느 사찰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며 해방 전 일본인 골동품상이 해외로 반출하려던 것을 오재균 씨가 입수·소장하다가 1971년 문화재 지정을 신청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부산시는 1978년 7월 11일 시립박물관을 건립·개관하였으나, 전시할 유물이 너무나 부족했다. 당시 박물관 건립을 주도한 부산시 김부환 문화공보실장과 박경원 박물관장은 박물관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부산의 원로 기업인 김지태 회장을 위원장으로 추대해 이 위기를 타개하고자 했다.
김지태 회장은 김화섭 기획관리실장과 가진 면담에서 박물관 운영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뜻을 보여왔고, 박물관을 대표할 상징적 유물로 이 금동보살입상을 떠올린 김부환 실장은 김화섭 실장과 함께 유물 소장자 설득에 나섰다. 당시 시가로 2억5000만 원에 달하는 유물이었으나 지역사회를 위해 도와달라는 간곡한 설득 끝에 구입가를 낮추었고, 김지태 회장이 1억 원에 가까운 거금을 쾌척해 유물을 구입한 후 부산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러한 경위를 거쳐 부산박물관의 대표 유물이 된 금동보살입상은 같은 시기 중국 당나라 금동보살입상의 과장된 동세나 표정과 달리 당당하면서도 고요한 분위기를 가져 통일신라 불교미술이 지닌 정중동(靜中動)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낸 수작(秀作)이다. 부산박물관 기증전시실에서 엷은 미소를 머금고 명상에 잠긴 듯한 보살 모습을 감상하면서 단비 같은 휴식을 취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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