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30여년 ‘핵 군축’서 증강으로 선회… “北中러 위협에 대응”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2024. 6.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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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번 “동맹과 핵확장 논의할 것”
바디 NSC보좌관 이어 또 거론
美의회-바이든-트럼프도 “핵 증강”
대선후 핵확장 논의 본격화 전망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핵무기를 빠르게 증강하고 있는 북한, 중국, 러시아 등에 대응하기 위해 탈(脫)냉전 이후 30여 년간 고수했던 ‘핵 군축’ 정책을 ‘핵 확장’ 정책으로 바꾸겠다는 뜻을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과의 패권 경쟁, 북핵 위협 증가, 북-중-러시아-이란 밀착 등에 대처하려면 핵무기가 필요하다는 현실론에 따른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11월 대선에서 겨루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집권 1기 당시 핵무력 증강을 지지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를 감안할 때 미 대선이 끝나면 미국 내에서 핵무기 확장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 설리번 “동맹과 ‘핵 확장’ 논의”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9일 미 CBS방송 등과의 인터뷰에서 ‘미국도 핵무기를 늘려야 할 수 있다’는 프라나이 바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군비통제·군축·비확산 선임보좌관의 최근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핵무기 확대) 가능성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라는 전문가 및 초당적인 요구를 경청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결정이 빠르면 수개월 안에 내려질 수 있다고 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또 ‘북한, 중국, 러시아, 이란이 핵기술을 공유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들 국가의 핵무기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핵 억제력을 보장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에 대해 동맹 및 파트너 국가와 협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 때 핵무기 의존도 감축을 공약했다. 집권 후에도 핵 공격을 당하지 않는 한 먼저 핵을 쓰지 않는다는 ‘핵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원칙 등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집권 민주당 지지층이 주로 핵 군축을 선호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중국의 군사적 위협,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 중국, 러시아의 불법적인 군사 협력 등으로 미국의 안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난해 러시아는 2011년 미국과 체결한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이 협정은 2026년 2월 종료된다. 최근 러시아는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르마트’의 실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 서방의 계속된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발하며 위성 타격용 핵무기 시험 위성도 발사했다. 현재 약 500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은 빠르면 2030년경 1000기의 핵탄두를 보유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이란도 핵무기를 빠른 속도로 늘려가고 있다.

● 美 대선 후 핵무기 확장 분수령

미 의회는 핵 증강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의회 산하 전략태세위원회는 “실전 배치 핵탄두 수를 늘리고 전략핵무기 생산을 늘리라”고 권고했다. 로저 위커 상원 군사위원회 공화당 간사 또한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핵 군비 경쟁에 나서라”고 국방부에 주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 1월 뉴햄프셔주 유세에서 “대통령에게 (핵무기 관련) 면책특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를 지시한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의 결정이 전쟁을 종식시켰다고도 했다. 그는 앞서 2016년 대선 때부터 “왜 미국은 핵무기를 쌓아놓고도 쓰지 못하는 거냐”며 핵무장을 주장해 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후보로 거론되는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전략·전력개발 부차관보 또한 최근 “주한미군을 중국 견제에 활용하는 대신,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바이든, 트럼프 양측 모두 방법의 차이는 있어도 미국의 핵무기 확장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는 만큼 관련 정책이 대선 직후인 올해 말 어떤 식으로든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연방법 제10조에 따르면 미 행정부는 올 연말까지 의회에 핵무기 증강, 핵전력 재편성 등에 관한 ‘핵무기 운용 지침’을 보고해야 한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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