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골프 브랜드 이야기] 지치지 않았던 국산 샤프트의 도전
2012년 여름, 2명의 사업가를 만났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골프용품 시장 곳곳을 누빈 박건율 회장과 사업 파트너 정두나 대표였다. 두 사람은 ‘한국산’으로 세계 샤프트 시장을 장악하겠노라며 의기투합했다. 회사(두미나)를 설립하고 브랜드(오토파워)도 만들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자 함안에 샤프트 공장을 만들고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외주 제작사에 OEM(주문자 상표 부착방식)으로 맡기다가 자체 생산 체제로 변경한 것. 그 결과물을 보여주겠다는 두 사람을 따라 함안으로 갔다.
그의 말에는 ‘듣는 이의 납득’이라는 목표가 있었다. 당연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3위 규모의 골프용품 시장임에도 내로라할 국산 브랜드가 없었다. 미국, 일본 브랜드가 판을 치는데 부품 시장은 특히 그랬다. 그중에서 샤프트는 미국, 일본 브랜드의 각축 속에서 우리나라 브랜드가 감히 낄 생각을 못 했다. 그런데 신생 회사가 ‘태극기’를 달고 뛰어들었으니 주변에서 말이 많았다. “한국 브랜드인 걸 숨겨야 산다”라는 말도 심심찮은 조언이었다.
박 회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해외 유명 브랜드가 브랜드 명성에 기대어 판매고를 올리지만 제품력이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값싼 소재’ 사용을 이유로 꼽았다. 오토파워의 경쟁력이 그들보다 좋은 소재에서 출발한다는 의미였다. 납득을 위한 그의 설명은 오랜 시간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특이했다. 훌륭한 골프용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있는데 대표할 브랜드가 없었다. 미국, 일본 브랜드 선호도가 워낙 높았다. 나아가 한국 브랜드를 깔보는 인식이 있었다. 아쉽지만 현실이었다. 그 높은 현실의 벽을 알기에, 두 사업가의 당찬 도전에 그저 ‘지치지 마시라’라는 응원의 말을 건넸다.
“아담 스콧이 오토플렉스를 사용한다.” 2021년 1월 미국에서 들려온 소식에 우리나라 골프계가 술렁였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톱 플레이어 아담 스콧이 오토플렉스 샤프트를 꽂은 드라이버와 페어웨이 우드를 사용한다는 소식이었다. 오토플렉스는 두미나가 오토파워에 이어 출시한 제품이다.
오토플렉스의 PGA 투어 데뷔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미국, 일본 샤프트 브랜드가 주름잡는 무대에 우리나라 브랜드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은 놀라움 자체였다. 게다가 일반적인 샤프트 강성, 탄성 이론에 반하는 오토플렉스의 활약은 상상 밖 일이었다.
정두나 대표가 “아담 스콧이, 그것도 PGA 투어에서 오토플렉스를 사용하다니 감격스럽다”라는 글을 SNS에 올리자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놀랍다”, “축하한다”, “아담 스콧이라니 믿을 수 없다”와 같은 답글이었다. 꿈에 그리던 한국 샤프트의 세계 시장 개척이 눈앞에 펼쳐졌다.
창립 10주년, 세계에 우뚝 선 두미나
오토플렉스의 글로벌 히트로 두미나의 위상은 달라졌다. 세계 곳곳에서 오토플렉스를 구매하겠다는 문의가 빗발쳤다. 당시 박 회장은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라고 싱글벙글했다. 정 대표는 “80%가 해외 판매”라고 글로벌 브랜드 도약을 자랑했다.
“그동안 국산 샤프트를 만들면서 서러워서 (정두나 대표와) 둘이 많이 울었어요. 그 시간을 보내고 우리 사옥, 우리 공장에서 여러분을 모시게 돼 감회가 새롭습니다.” 창립 10주년 기념사를 하던 박건율 회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10년 전 “좋은 샤프트를 만들면 사람들이 알아줄 거다”라고 힘차게 말하던 것과 달랐다. 그때는 ‘두려움’을 숨기려 목소리를 키웠다.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알아채는 떨림이 있었다. 그런데 “많이 힘들었다”라는 그의 떨림 가득한 목소리에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박 회장, 정 대표와 다시 마주 앉았다. 옛 생각이 새록새록했다. 서울과 함안을 오가던 일을 추억하며 그날의 분위기를 되새기자 몸에 전율이 흘렀다. 직선으로 내뿜는 자동차 불빛에 의지해 달리던 함안의 밤길은 유난히 굴곡졌었다. 휘어진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마치 불확실한 미래를 향하는 두 사람의 앞길 같았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렀다. 긴 어둠을 뚫고 햇빛 찬란한 날이 펼쳐졌다. 그 빛 아래 환하게 웃는 두 사람의 얼굴이 눈앞에 있다. 절로 감사가 쏟아졌다. “지치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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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환 마니아타임즈-골프이슈 기자 / soonsoo879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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