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나·조’ 후계자 수업 끝났다
이번에도 롤랑가로스(프랑스오픈 테니스 경기장)엔 스페인 국가 ‘마르차 레알(Marcha Real·국왕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우승자를 위해 연주하는 국가. 2005년 이후 지난해까지 14번 그 곡을 들었던 주인공은 라파엘 나달(38). 이날은 카를로스 알카라스(21)였다.
알카라스가 10일 열린 프랑스오픈 남자단식 결승에서 알렉산더 츠베레프(27·독일)를 만나 4시간 19분 걸린 긴 승부 끝에 세트 점수 3대2<6-3, 2-6, 5-7, 6-1, 6-2>로 이기고 대회 첫 정상에 올랐다. 이제 21세인 그는 메이저 대회 하드 코트(US오픈)와 잔디 코트(윔블던), 클레이 코트(프랑스오픈)에서 모두 우승을 맛본 선수 대열에 올랐다. 3개 메이저 대회 우승 달성 나이는 ‘빅 3′로 불리는 로저 페더러(43·스위스·은퇴), 나달, 노바크 조코비치(37·세르비아)보다 어리다.
그는 일찌감치 ‘빅 3′ 후계자로 지목됐다. 19세였던 2022년 우승컵만 5개 들어 올렸다. 그중에는 메이저 대회 US오픈도 있었다. 미래는 창창해 보였다. 그러던 2023년 6월 조코비치와 프랑스오픈 4강전에서 다리 경련이 찾아왔다. 참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과는 1대3 패배. 한 달 뒤 윔블던에서 조코비치를 꺾고 왕좌에 오르며 설욕에 성공했지만 그 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몸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진단했다. 정신적인 문제였다.
알카라스는 “라켓을 100% 힘으로 휘두르는 게 두려웠다. 아직도 마음속에 그때 경련의 느낌이 생생했다”며 “그래서 계속 집중력을 잃었고 표류했다. 연습할 때는 거의 웃지 못했다. 테니스에 대한 즐거움을 잃어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부진이 거듭됐다. 윔블던 이후 대회 우승은 지난 3월 인디언웰스가 유일했다.
이번 프랑스오픈에서 화려한 재기를 노렸지만 이 대회는 악몽이 시작된 곳. 잠잠했던 경련이 얀니크 신네르(23·이탈리아)와 준결승에서 다시 찾아왔다. 알카라스는 ‘잘 만났다. 너를 뛰어넘겠다’ 다짐했다. 4시간 9분 끝에 3대2로 이기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스스로 다독였다. 정말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다리 경련을 극복한 기분이었다.
결승에서도 압박이 왔다. 그는 코트를 줄기차게 뛰어다니는 체력을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선수. 왼쪽 허벅지 근육 경련으로 메디컬 타임아웃을 부르고 의료진 점검을 받으면서 “괜찮아… 아플 수밖에 없는 거야” 되뇌었다. 고통을 넘어서려는 주문이었다. 경기 막판 경련을 딛고 허벅지에 많은 부담이 가는 드롭샷을 연거푸 성공하기도 했다.
이제 그는 ‘빅 3′가 아닌 선수로서 2015년 스탄 바브링카(39·스위스) 이후 9년 만에 프랑스오픈 챔피언이 됐다. 알카라스는 “지금은 그들(빅 3)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기 어렵다”면서도 “지금은 세 번째 (메이저) 우승을 즐기고 싶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두고 보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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