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가 승전 걸림돌”… 온건파 간츠, 전시내각 탈퇴
온건파 정치인이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정적(政敵)인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가 전시 내각을 탈퇴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가자 전쟁이 길어지고 네타냐후 정권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자, 이스라엘 지도부 사이에서도 ‘전후(戰後) 계획’을 둘러싼 의견이 갈리면서 내부 분열 속도도 빨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가통합당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안타깝게도 네타냐후 총리는 우리가 진정한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다”며 “이런 이유로 전시 내각을 무거운 마음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육군 장성 출신인 간츠 대표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중도 온건파 정치인으로, 보수 강경파인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라이벌로 꼽힌다. 그는 네타냐후 정권과 번번이 대립각을 세워왔지만,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이후엔 “국민 통합이 우선”이라며 연정(聯政) 참여를 선언하고 전시 내각의 각료로 활동해왔다. 그는 네타냐후 총리,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과 함께 전시 내각 의결권을 가진 세 명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간츠 대표는 2012년과 2014년 두차례 하마스 소탕 작전을 지휘한 ‘전쟁 영웅’ 출신인 데다, 70대인 네타냐후 총리보다 10살이나 어리고 합리적인 중도를 표방한다는 점에서도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다. 풍부한 전투 경험에 강직하고 올곧은 이미지까지 갖춰, 가자 전쟁에 대한 간츠의 입장은 국민 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평가다. 뉴욕타임스는 “(간츠 대표는) 향후 선거에서 네타냐후에게 맞서는 인물로 추대될 것”이라고 했다. CNN도 “각종 여론조사를 살펴볼 때 지금 당장 선거를 치르면 간츠가 승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전쟁이 반년 넘게 지속되면서, 최근 이스라엘 지도부는 ‘전쟁 이후의 가자지구 재건’ 방식을 놓고 충돌해왔다. 간츠 대표는 “네타냐후 총리가 명확한 전쟁 계획과 목표 없이 소모전을 지속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특히 지난달에는 “6월 8일까지 가자지구 전후 계획을 수립하지 않을 경우 전시 내각을 탈퇴하겠다”며 “나라를 나락으로 끌어들이는 광신도의 길을 택한다면 정부를 떠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간츠 대표는 그간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독단적으로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방안에 반대하며 “미국·유럽·아랍·팔레스타인 등이 함께 행정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네타냐후 총리와 그의 연정 파트너인 극우 유대민족주의 정당들은 가자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세워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당국이 어떤 형태로든 가자지구의 운영에 관여해야 한다는 미국의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신들은 간츠 대표의 전시 내각 탈퇴로 이스라엘 지도부의 분열이 빨라지게 됐다고 보고 있다. BBC도 “(이번 사태로) 네타냐후 총리는 더욱 고립될 것이고, 그의 전쟁 운영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도 커질 것”이라고 했다.
간츠 대표의 탈퇴가 장기적으로 네타냐후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간츠 총리가 “하마스와의 전쟁 1년째가 되는 올해 가을에 조기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현재 정치 지형이 새 국면을 맞게 될 가능성도 커졌다.
간츠의 내각 이탈로 인해 향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이스라엘 지도부 간 의사소통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AP는 “전시 내각에서 간츠의 존재는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의 신뢰도를 높여왔다”며 “그는 미국 관리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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