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수천명 경쟁 뚫고… 팀 쿡 만나 앱 시연한 韓대학생
지난 9일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의 인피니티 루프 4 빌딩.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본사로 쓰던 건물이다. 경북 포항 한동대에 재학 중인 이신원(22·4학년)씨가 애플의 맥북 앞에 서서 허공에 대고 피아노를 치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움직임에 따라 PC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반짝반짝 작은 별’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연주가 끝나자 지켜보던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활짝 웃으며 “제품이 참 인상적이다. 앞으로 당신이 보여줄 새로운 아이디어들도 기대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씨는 올해 애플의 청년 개발자 육성 대회인 ‘스위프트 스튜던트 챌린지(SSC)’에서 자신이 개발한 앱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전 세계 수천 명의 지원자가 제출한 작품 중 우수상이 수여된 것은 단 50건. 그중에서도 쿡 CEO 앞에서 직접 시연할 기회를 거머쥔 참가자는 14명에 불과하다. 이씨는 최종 선발된 14인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이씨는 “특별한 재능도 없지만,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이런 결과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미국에 와서 팀 쿡을 직접 보니, 꿈만 같다”고 했다.
이씨는 엄지로 다른 손가락을 터치하는 동작을 카메라가 인식하고, 이를 8개의 음계로 바꿔주는 앱 ‘멜로디’를 개발했다. 왼손 엄지가 새끼손가락과 맞닿으면 컴퓨터가 ‘도’를, 약지와 닿으면 ‘레’를 연주하는 식이다.
시상식 후 만난 이씨에게 ‘어릴 때부터 코딩에 관심이 많았나 보다’라고 물으니 “절대 아니다”며 수줍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고등학교까지 문과생이었고, 대학에 와서 들은 C언어(프로그래밍 언어) 수업이 재밌어서 컴퓨터 공학으로 전공을 정했다”며 “하지만 학년이 높아질수록 코딩이 어려워 좌절한 적도 수없이 많다”고 했다. 이씨가 재학 중인 한동대는 입학 첫해엔 전공이 없고, 학생들은 전공 탐색을 위해 모든 과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그는 “인공지능(AI)이 코딩의 대부분을 해주는 시대가 됐는데,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어 대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 프로젝트가 자신의 마지막 코딩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전공을 살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이씨는 “내 학교는 좋은 학교지만, 솔직히 한국 사회에서 유명한 대학은 아니지 않나”라며 “조바심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나에게 없는 길을 직접 만들어 가라는 도전 정신을 심어준 것 같다”며 “지레 겁먹고 대회 신청을 포기했다면 내 잠재력의 크기도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코딩 프로젝트일 수 있다는 생각에 절박하게 매달렸다. 과거 이 대회에서 수상했던 작품의 특징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애플이 좋아하는 주제와 내가 흥미롭게 만들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한 달 동안 깊게 고민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애플의 ‘손가락 동작 인식 코드’였다. 이씨는 “일주일을 꼬박 밤새우고, 언니의 결혼식장에서까지 코딩을 하며 겨우 완성해 마감일 전날에 ‘멜로디’를 제출했다”고 했다.
2020년 시작된 애플 SSC는 학생이 애플의 개발언어인 ‘스위프트’를 활용해 혼자 개발을 완료한 앱 중 아이디어가 기발하거나 사회적으로 임팩트가 있을 만한 작품을 골라 시상해왔다. 이씨의 멜로디 앱은 당장 악보를 쉽게 익히는 데 그치지만, 앞으로 손가락 소근육을 활용하는 운동을 통해 노인·환자들의 재활에도 이 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애플 측의 좋은 평가를 이끌어 낸 것으로 분석된다.
SSC 우수상 수상자들은 10일 시작하는 애플의 연례 개발자 행사 ‘세계개발자회의(WWDC)’ 기간 매일 애플 현직 직원들이 제공하는 개발자 수업들을 듣고, 글로벌 곳곳에서 모여든 성인 개발자들과의 교류 기회도 갖게 된다. “이제는 전공을 포기하겠단 생각은 없어요. 하면 된다는 걸 봤잖아요. 비전 기술이나 증강현실(AR), 이런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요.” 환하게 웃는 이씨의 뒤 벽에는 스티브 잡스 어록 “당신이 어떤 일을 했는데 결과가 꽤 좋았다면, 그 일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말고 곧바로 다른 멋진 일을 해야 합니다. 다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세요”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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