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 팔고 ‘미국’ 사는 개미들, 모든 개혁 실종 국가의 한 단면

조선일보 2024. 6. 11.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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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은 11조원 이상 순매도한 반면 미국 주식은 60억달러나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증시가 횡보세를 이어가면서 투자금의 미 증시 탈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 2차 세미나 장면. /연합뉴스

올해 들어 개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서 11조원어치를 순매도한 반면 미국 주식은 61억달러(약 8조원)나 사들였다. 그 결과 개인의 미국 주식 보유 금액이 무려 800억달러를 넘어서 5년 새 10배로 불어났다. 직접투자뿐 아니라 상장지수펀드(ETF) 같은 주식형 펀드 상품도 미국 투자 쏠림이 심해지고 있다. 올해 들어 5월 말까지 주식형 ETF의 개인 순매수 톱10은 모두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였고, 국내 ETF는 하나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은 두 나라 증시의 실적 차이 때문이다. 미국 증시는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 중이지만 한국 증시는 박스권에 갇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미국 S&P500 지수는 올 들어 12% 상승했지만 한국 코스피는 1%대에 그쳤다. 미국뿐 아니라 일본, 대만, 유럽 주요국 증시도 연일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우는데 한국 증시만 지지부진하다. 경제 규모가 한국의 절반도 안 되는 대만 증시의 시가총액이 한국 증시보다 600조원이상 많아졌다. 2~3년 전만 해도 대만과 한국 증시 시총은 비슷했으나, 세계 1위 파운드리 TSMC의 약진과 삼성전자의 부진이 맞물리며 시총 격차가 벌어졌다.

연초 정부가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을 발표하자 배당 확대 등을 기대한 외국인 투자금이 몰리며 한때 반짝 상승장이 펼쳐졌다. 그러나 밸류업 참여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 등 후속 대책이 늦어지면서 외국인 투자 열기도 시들해졌다. 그 와중에 국민연금마저 앞으로 국내 주식 투자 비율을 계속 줄이기로 결정해 투자 심리에 찬물을 끼얹었다.

주식시장은 가계의 여유 자금을 기업 투자 재원으로 공급해 경제 전반의 생산 능력을 확충하고 국부(國富)를 늘리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개인 투자자들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국내에서 외국 증시로 투자금을 이전하는 것은 개인으로선 합리적 선택일 수 있지만, 국민 경제 관점에선 손실이다. 약점으로 지적되는 기업 지배 구조 개선, 주주 환원 확대, 소액주주 보호 강화, 장기 투자자에 대한 인센티브 세제 등 한국 증시의 매력도를 높이는 종합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지지부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더 속도를 내야 한다.

우리는 지금 개혁 정체가 아니라 개혁 실종 상태에 처해 있다. 경제만이 아니라 각종 사회 개혁도 기득권 집단의 저항과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략 탓에 물거품이 되고 있다. 일반 주식 투자자들이 ‘한국’을 팔고 ‘미국’을 사는 것은 이런 나라의 미래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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