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23] 겪어야만 하는 일
[교사 김혜인] 약국에서 처방전을 제출하고 약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가방에 자잘한 짐을 넣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넌 왜 옷을 잡니?”라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차!’ 싶어서 달려갔더니 어떤 아이 옷 등 쪽에 구겨진 흔적이 있고 그 곁에 내 아이가 있었다. 아이가 종종 다른 사람의 옷을 세게 잡는 일이 있어서 늘 가까이에서 지켜보는데, 이렇게 어쩌다가 놓치는 때가 있다.
“저희 아이가 옷을 잡았나 보네요.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다. 하지만 상대 아이의 엄마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어떤 대답도 없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그 아이와 엄마를 또 마주쳤다. 내 아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마음대로 누르려 해서 제지하고 있었다. 그 엄마는 이런 모습을 보고는 자기 아이를 몸으로 가리며 등을 돌렸다. 조금 전 일이 다시 다시 떠오르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이 일로 마음이 언짢았다. 옷 좀 잡았다고 아이에게 그렇게 차가운 태도로 말하다니. 내 사과에 어쩌면 형식적인 인사조차 하지 않는가. 무슨 전염병에라도 걸린 사람을 쳐다보듯이 자기 아이를 몸으로 감싸는 건 또 뭐란 말인가.
무안했던 감정이 가라앉고 난 뒤 내가 너무 안일했다는 반성을 했다. 언젠가부터 아이가 다른 아이의 머리채를 잡는 탓에 외출할 때면 언제나 아이 옆에 바짝 붙어 돌발 행동을 막아 왔다. 아이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개의치 않고 훈육하며 다른 행동으로 표현하도록 가르쳤다. 그러자 최근 아이가 머리채 대신 옷을 잡았다가, 이마저도 점차 드물어져서 내가 잠시 한눈을 팔고 말았다.
솔직히 아이가 머리채가 아니라 옷을 잡아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다행이라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옷을 잡는 행동도 상대 이해를 바랄 수 없는 문제이다. 반드시 고쳐야 한다. 지금은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옷을 세게 잡아도 어떤 이들을 귀엽게 봐주고 어떤 이는 괜찮다고 말하며 이해해 준다.
그러나 언제까지 아이라는 이유로, 발달 지연이라는 이유로 이해를 받을 수는 없다. 아이는 계속 나이가 들고 몸이 자란다. 만일 웬 성인 남자가 갑자기 내 옷을 잡는다면 어떨까?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무섭고 피하고 싶어질 테다.
아이는 벌써 제법 아기 티를 벗고 어린이다운 얼굴이 되었다. 두 돌이 넘어가자 아이가 사람을 대할 때 보이는 문제 행동에 대해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확연히 많아졌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이에게 더 잘 가르치자고 다짐했다. 상대에게 관심이 생길 때 다가가는 방법과 불편함을 느낄 때 대처하는 법, 좋거나 싫은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야 한다. 훈련을 시킨다는 게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마음이 아팠다. 아이가 앞으로 겪을 거절과 실패를 짐작하게 된 까닭이다. 다가갔지만 거절당하고 사과했지만 용서받지 못하고 노력했지만 실패할 수 있다. 그건 특별하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겪고야 마는 삶의 일부분이다. 나 역시 많은 거절과 실패의 상흔을 가졌지만, 그것은 내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었고 그런 내 삶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아이를 훈육하면서 마음이 아려 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제는 다 아물었던 그 상흔에 다시 생채기가 나는 듯하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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