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29] 고백과 ‘10분의 3′
비교적 이른 나이부터 대학에서 문학이론과 문예창착을 강의했더랬다. 나는 내가 신념이 꼬장꼬장한 문학 교수로서 ‘일부러’ 대중은 이해하기 힘든 작품들을 쓰면서 늙어가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작가로서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작가가 되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것 또한 나의 꿈이었다. 하지만 삶은 늘 다소간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인지라, 지금 나는 강단이 아니라 작업실과 거리에서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고, 제자들과 함께가 아니라 홀로 지내고 있다.
나를 이렇게 만든 ‘변수’에는 다가온 우연과 내 의지(선택)가 뒤섞여 있는데, 누군가 그걸 운명이라고 부른들 불만이 없다. 그러나 가끔은, 만약 내게 저 변수가 없었다면, 현재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상념에 잠기곤 한다. 나는 더 행복했을까? 오히려 정반대였을까? 이런 질문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정답이 없는 인생에 대한 궁금함에 가깝다. 아무튼, 내가 아직 선생이었던 그 시절, 학생들에게 창작을 가르치면서 우선 강조하던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고백’이다. 모든 글쓰기는 어떤 외양으로 둔갑돼 있건 간에 고백의 본질을 지닌다. 저마다 몸이 달라도 모두 피가 흐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과 세상에 대해 고백하는 능력과 용기가 없는 이는 죽은 나무에 물을 주는 일을 죽을 때까지 반복할 뿐이다. 둘째, 설계해 놓은 대로 완성된 작품은 좋은 작품이 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설계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설계도대로 작품을 만들기 위해 10분의 ‘11′의 준비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다 쓰고 난 뒤에 보니, 그 소설이 설계도와 일치하게 나왔다면, 설계도가 아무리 괜찮았다고 한들, 그 소설은 실패작이다. 요컨대, 10분의 7 정도는 설계도대로 나와야 하지만, 10분의 3 정도는 작가 자신조차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튀어나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비율은 상대적으로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이러한 이치는 지켜져야 한다. 예상한 그대로 완성된 작품은 창조적 측면에서는 불량품이고, 타인을 감동시킬 수 없다. 설계와 변수가 회오리 돼 화학반응을 일으킨 저 ‘10분의 3′이 그 작품의 영롱한 눈동자다.
이는 우리의 삶과도 같고, 그래서 훌륭한 작법책이 있다면 그건 훌륭한 인생 지침서가 되기도 할 터이다. 삶은 수시로 어둠이 끼어들어 낯선 곳에 우리를 부려 놓고는 아무런 설명도 해주질 않는다. 하지만 그 어둠이 ‘10분의 3′을 촉발(trigger)해준다. 인간은 지나치게 밝은 빛 때문에 시력을 잃는다. 어둠이 눈을 밝게 한다. 어둠이 있어야 밝은 것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무늬가 생긴다.
35년을 직업 작가로서 살아온 소회로는, 그 누구에게도 작가라는 직업을 권하고 싶지 않다. 다만, 우리는 자기 인생에 대해 스스로 작가이다. 나의 저 ‘창작의 두 가지 원칙’은 고요하되 ‘폭풍’이다. 폭풍이 가슴에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은 흉하다. 제 삶의 엉터리 작가이면서도 자신은 완전하다고, 세상은 완전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괴물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악인은 무섭지 않다. 철없는 사람이 무섭다. 그들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지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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