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기의시대정신] 밥 한 끼의 가격
무료급식 위해 길 위에 선 노인들
이만큼 나라를 일구고 지킨 이들
밥 한끼의 값어치는 과연 얼마일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밥 한 끼는 얼마일까. 공식기록은 아니지만 2022년 약 246억원에 낙찰된 ‘버핏과의 점심식사’를 떠올릴 수 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해마다 열어온 점심식사 경매가 마지막임을 알리며 최고가를 경신했던 것. 경매 수익은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 지원단체에 전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밥 한 끼는 한 끼의 식사가 절박한 수많은 이들의 생명이자 희망으로 돌아왔다.
이들이 국민 세금으로 삼시세끼를 해결하는 동안 어떤 이들은 밥 한 끼 때문에 시위에 나섰다. 대학의 청소노동자들이다. 지난달 8일에는 숙명여대 정문 앞, 22일에는 연세대 백양관 앞에서 ‘밥 한 끼의 권리’를 위해 피켓을 들었다. 새벽 첫차로 출근하는 이들은 하루 두 끼를 일터에서 해결해야 하지만 한 달 식대는 12만원에 불과하다. 한 끼 2700원. 5년째 동결된 이 금액을 3100원으로 올리기 위한 지난한 싸움이다.
정치권에선 기내식 가격이 논란이다. 2018년 김정숙 여사 일행의 인도 방문 당시 기내식 비용이 6292만원으로 알려졌다. 왕복 18시간 비행 동안 네 번의 기내식 비용이다. 수행 인원을 고려하면 1인당 한 끼에 40만원 안팎이다. 한쪽에선 과도한 식비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한편에선 치졸한 정치공세를 그만두라고 항변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직접 부인의 식비를 변호하는 글을 올리는 등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에게 밥은 그저 밥이 아니다. “밥 먹었니?”로 안부를 묻는다. “다음에 밥 한번 먹자”며 헤어진다. ‘찬밥신세’라 푸념하고 ‘밥심으로 산다’며 일어서는 한국인에게 밥은 보약이고 하늘이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신줏단지 속에 쌀을 담아 모셨다. 밥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봄철 작고 하얀 꽃 무더기를 보며 쌀밥(이밥)과 조밥을 떠올려 이팝나무, 조팝나무라 이름 붙였을까. 어느덧 1인당 국민총소득이 일본을 넘어선 부자나라가 되었지만,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누군가에게 밥은 여전히 그저 밥이 아니다.
지난주, 현충일을 며칠 앞두고 서울국제노인영화제를 보기 위해 종로에 갔다. 초청작으로 상영된 ‘소풍’과 대상 수상작인 단편 ‘우리를 둘러싼 공기’에는 고독에 내몰린 노인의 삶이 서늘하게 담겨 있었다. 하지만 더 시린 현실은 영화관 밖 거리에 있었다. 탑골공원 담벼락부터 이어지는 족히 1km는 되어 보이는 길 위에 선 노인들. 무료 점심을 배식받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늘어선 줄이 끝이 보이지 않게 길었다.
뙤약볕이 쏟아지는 구간에는 낡은 배낭과 모자, 지팡이와 정체 모를 까만 비닐봉지가 대신 줄을 섰다. 물건의 주인들은 땡볕을 피해 비좁은 건물 그늘에 그림자처럼 서 있다. 딱히 놓을 물건이 없어 신발을 던져놓고 맨발로 지루한 시간을 견디는 노인도 보였다. 이토록 고단한 한 끼 앞에 수천이니 수백이니 하는 기내식 싸움이 무색하다.
길 위에 선 한 어르신의 가슴에 참전용사 배지가 반짝인다. 지난해 6월, 생활고에 시달리던 80대 참전용사가 마트에서 반찬거리를 훔치다 붙잡힌 사건이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지만 잊힌 지 오래다. 6·25참전 명예수당은 월 42만원. 논란이 된 기내식 한 끼 금액과 비슷하다.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이 있다. 하루 동안 직접 밟은 땅을 모두 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농부가 더 많은 땅을 갖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뛰다가 끝내 지쳐 숨을 거뒀다는 이야기다. 결국 그에게 필요했던 땅은 그가 묻힐 반 평 크기의 무덤에 불과했다.
우리에겐 얼마의 밥 한 끼가 필요한 걸까. 누군가는 수백억원 한 끼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수천만원 밥값으로 다투고 있다. 누군가는 한 끼 3100원을 위해 투쟁한다. 그리고 이 나라를 이만큼 세운 많은 분들이 밥 한 끼를 위해 반나절을 길바닥에서 견디고 있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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