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섭 칼럼]갈수록 정치 양극화, 성공한 대통령 나올 수 없다
미국보다도 적대적 양극화 1.25배 더 심각
어느 당이 집권해도 대통령 성공 못할 구조
필자는 국내 유력 민간 싱크탱크인 동아시아연구원(EAI)이 대선 때마다 매번 발간하는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이라는 책의 집필에 2012년 대선부터 참여해 왔다. 이 책의 발간 목적은 그동안 한국에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인정할 만한 전직 대통령이 없었다는 공감대 위에서 학자들이 새 정부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해 제언하는 것이다.
‘성공한 대통령’의 기준은 뭘까. 가장 기본적인 요건으로 최소한 과반수 국민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정도는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전직 대통령들을 보면 아무도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한국갤럽이 제공하는 역대 대통령 분기별 지지율을 살펴보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파로 한때 70∼80%대 지지율을 기록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임기 마지막 분기 지지율은 40% 정도에 머물렀다. 김영삼(6%), 김대중(24%), 노무현(27%), 이명박(24%), 박근혜(12%) 대통령의 마지막 분기 지지율은 참담한 수준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전직 대통령이 본인 또는 친인척의 비리 혐의로 사법 처리 대상이 됐다. 현재 게임업체 출신 문 대통령 전 사위를 둘러싼 의혹도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문제는 앞으로 성공한 대통령의 최소 기준을 충족시키는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더 낮아 보인다는 점이다. 필자는 한국갤럽에서 2012년 이후 매주 실시해 오고 있는 데일리 오피니언 설문조사의 대통령 지지율을 양 거대 정당 지지자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 결과를 보면 지난 12년간 양 진영 간 대통령 긍정 평가의 격차가 크게 증가했다. 마지막 6개월 정도의 데이터만 포함되긴 했으나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새누리당과 민주당 지지자들 간의 지지율 차이가 34%포인트였던 데 반해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논의가 본격화되었던 시기를 제외하더라도 차이가 59%포인트로 약 25%포인트 커졌다.
가장 최근의 두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진영 간 차이가 더 극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균 무려 72%포인트,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5월 5주 차까지 평균 69%포인트였다. 모두 박근혜 정부보다 10∼13%포인트 정도 양극화가 심해진 것이다. 심지어 가장 최근인 5월 마지막 주 조사에서는 국민의힘 지지자의 92%,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는 3%만이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긍정 평가하여 진영 간 차이가 무려 89%포인트에 달했다. 문 대통령 때도 최대 84%포인트(2020년 3월 4주 차·국힘 지지자 11%, 민주당 지지자 95%) 차이가 났던 적이 있었다.
민주주의에서 이런 현상이 자연스러운 것일까. 전혀 아니다. 올 2월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미국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의 진영 간 차이는 약 56%포인트(민주당 지지층 61%, 공화당 지지층 6%) 정도로 한국보다는 15%포인트 정도 작았다. 총기를 든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에 집단 난입할 정도로 극도로 양극화된 미국 사회보다 약 1.25배 더 심한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누가 이런 현상을 초래했을까. 국회와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임기가 막 끝난 21대 국회에서 처리된 3000여 건의 법안에 대한 표결을 포함, 17대 국회 이후 모든 법안에 대한 표결에 기반하여 국회의원들의 표결 성향을 W-NOMINATE라는 통계적 방법론으로 추정해 본 바 있다. 국회별로 변화의 추이를 살펴보면 17대에서 0.55에 불과했던 두 거대 정당 간 경향 차이가 18대에는 0.79, 19대·20대에는 0.89로 커졌고 21대에는 1.1로 더 커졌다. 양 거대 정당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유권자들을 양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친명, 친윤 성향의 강성 의원들이 대거 살아남은 22대에서 이 추세가 바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야당은 이달 3일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를 “현 정부가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하며 자초한 안보 위기”로 규정했다. 현 여당도 지난 정부에서 세계적 모범 사례로 꼽힐 만한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대응을 ‘과잉 조치’라 비난하며 한 번도 제대로 평가한 적이 없었다. 안보나 공중 보건 등 대표적 국가 위기 상황에서도 진영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보다는 그나마 진영 간 ‘화합’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미국에서조차 올 5월 중순 마리스트대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 가까운 47%가 “내 생전에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 예상했다. MZ세대에선 이 비율이 무려 58%였다. 미국을 압도하는 양극화 수준을 보이는 한국에서 ‘분리주의’ 지지 여부를 묻는 설문이 언론지상에 등장할 날이 오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이제 어느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성공한 대통령은 나올 수 없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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