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ILO 총회서 노정 대립…"노조탄압" vs "노동약자 보호"(종합)
한국노총 위원장 "정부, 노동계와 진정한 소통 나서야"
고용장관 "노조 밖 근로자, 노동약자 많아…보호 나설 것"
양대노총, ILO 사무총장만나 "목소리 내달라" 요청하기도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현 정부 들어 계속해서 대립각을 세워왔던 정부와 노동계가 올해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도 공방을 벌였다.
노동계는 "한국 정부의 노동탄압이 심각하다"며 ILO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한 반면, 정부는 "노조 밖에 있는 노동약자들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위원장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12차 ILO 총회 본회의에 우리나라 노사 대표로 참석해 차례로 기조연설을 했다.
김 위원장은 연설 초반부터 정부 정책을 '친기업 반노동정책'으로 규정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지속된 농성노동자 유혈 과잉진압과 노조 회계공시에 대한 강제, 노조에 대한 지원 축소, 노동시간 유연화를 가장한 장시간 노동 정책 시도, 각종 정부위원회에서의 양대 노총 배제 등은 반노동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지난 4월 국회의원 총선거가 정부여당의 역대급 참패로 끝난 것은 지난 2년 간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을 초토화시킨 데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와 여당은 노사문제를 계층 간 대립 구도로 보는 낡은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구체적으로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최저임금 업종별 차별 적용 시도 중단 ▲노동조합법 2·3조 개정 ▲교원·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개혁, 노사법치주의 확립이라는 슬로건 뒤에 숨어 노동의 가치를 무시하는 편향적인 태도를 버리고, 노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 도출을 위해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와의 진정한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 장관은 우리 정부가 노동권을 강화해왔다며 '노조 밖'에 있는 노동약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연설했다.
이 장관은 "한국 정부는 2021년 ILO 핵심 협약인 제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와 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협약을 비준하는 등 노동권을 지속적으로 신장해왔지만, 노조 밖에 수많은 근로자들이 있다"며 "이러한 노동약자들이 일터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실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정책과제들을 발굴하고, 정부의 보호·지원 역할을 한층 더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어 "근로자 생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임금체불과 같은 불법행위 근절을 위해 근로감독을 강화하는 한편, 기존 노사분쟁 해결시스템인 노동위원회에 더해 노동법원 설치 논의도 추진하고 있다"며 "근로자의 최우선 권리보장을 위한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산업재해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업종별 맞춤형 예방체계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현 정부 출범 이후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플랫폼종사자와 같이 여러 개 사업에 종사해 보수를 받고, 이직이 빈번한 새로운 고용형태 종사자들에 특화해 고용·산재보험 제도를 개선해 보호를 두텁게 했다"며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는 종사자 범위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의 노동개혁 방향은 일하는 사람 모두가 존중 받는 일터, 건강하게 일하고 공정하게 보상받는 일터, '상생과 연대'의 가치가 보호되는 일터로 명확하다"며 "앞으로도 한국 정부는 ILO의 책임있는 회원국으로서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구축하고,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실현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했다.
다만 양측 모두 '사회적 대화'는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노총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회적 대화 채널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개혁, 노사법치주의 확립이라는 슬로건 뒤에 숨어 노동의 가치를 무시하는 편향적인 태도를 버리고, 노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 도출을 위해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와의 진정한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도 "질베르 웅보(Gilberg Houngbo) 사무총장도 말씀하셨듯 괜찮은 일자리를 확대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사정 삼자주의'에 기반한 사회적 대화가 중요하다"며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노동시장을 구축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화와 타협이 아닌 힘의 논리, 폭력·협박 등 불법적 수단을 사용한 문제해결 방식에는 공감할 수 없다"며 "노사정은 국내법을 준수하면서 불법행위를 배격하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 결사의 자유 원칙을 실현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민주노총은 이 장관의 기조연설이 끝난 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기만을 멈추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는 노조를 악마화하며 건설노동자들과 화물노동자들을 폭력배로 몰아가고, 근로시간 면제제도를 감독하며 노조 활동을 방해했고, 노조의 회계장부를 뒤져가며 부정한 집단으로 매도했다"며 "이 정부 노동정책 어디에서도 노조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노동약자 지원과 관련해서도 "노동약자를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최저임금을 차별적으로 적용해 가뜩이나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더 깎고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로기준법 적용도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양대노총은 현지시각 9일 질베르 웅보 ILO 사무총장과 면담을 갖고 결사의 자유 협약 이행을 위한 노동조합법 개정과 최저임금 차등적용 도입 시도 등 현안에 ILO 역할 강화를 요청했다.
이에 질베르 웅보 사무총장은 "ILO가 모든 사안에 대해 매번 입장을 낼 수는 없지만, 2022년 싱가포르, 2023년 제네바에서 한국 노동자 대표단을 면담한 이후 한국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한국은 사회적 대화의 한 축을 담당할 노조를 억압하는 나라여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ILO 총회는 회원국들의 협약 이행 현황을 확인하고 세계적인 노동 이슈를 논의하기 위해 매해 총회를 열고 있다. 올해는 지난 3일부터 14일까지 일정으로 진행 중이다.
정부 대표로는 이 장관이, 노동계 대표로는 김 위원장이 참석했으며 경영계 대표로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이 참석해 기조연설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adelant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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