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과 의대, 전문의 중심 의료서비스 전환 등 대비해야 [알아야 보이는 법(法)]
최근 정부는 수련병원과 전공의를 상대로 한 각종 명령을 철회했다. 먼저 전공의가 사직을 원하면 수련병원이 사직서를 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전공의가 전공 수련을 포기하고 일반의로 근무하거나 타 전공으로 수련할 수 있도록 한 조치이다. 사직서 제출 전의 상황으로 복귀를 원하는 전공의와 실제로 사직을 원하는 전공의가 본인 의사에 따라 진로를 결정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취지로 보인다.
앞으로 사직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알 수 없으나, 전공의 대다수가 병원을 떠난 지 4개월이 다 되어가는 점을 고려하면 ‘전공의 없는 진료환경’은 이미 일상이 됐다. 앞으로도 전공의가 없더라도 적정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병원과 정부가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부는 특히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를 중심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법률 제∙개정을 통해 특별회계와 기금까지 마련하고 교수 증원 및 시설 투자 등을 지원하려는 의지도 보인다. 병원의 재원 마련이나 인력 충원 등에 더해 그와 같은 제도를 통한 장기적인 예산 마련 내지 건강보험 수가 조정 등의 조치가 실제로 시행된다면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전문의가 계속 양성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은 분명하므로 향후 전문의가 되어야 할 전공의를 어느 병원에서 어떤 방식으로 수련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현재 의과대학에서는 학생 대다수가 휴학계를 제출하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전공의와 마찬가지로 4개월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본과는 주당 수업시간이 많기도 하고, 실습에도 상당한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고등교육법에 따른 의대의 인증을 담당하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인증 기준에 의하면 의대생이 병원에서 받는 임상실습은 주당 36시간을 기준으로 52주 이상이어야 한다.
이러한 임상실습은 주로 본과 3·4학년에 걸쳐 하게 된다. 본과 4학년은 아울러 해마다 9월쯤부터 시작되는 국가고시 실기시험에 응시해야 하고, 졸업하는 해 1월 시행되는 필기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8월 중 모든 과정을 끝내기도 한다. 임상실습 대부분이 이뤄지는 본과 3학년 1년간은 거의 수업과 임상실습의 반복이고, 방학은 1~2개월에 그치기 일쑤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본과 3·4학년은 올해 예정됐던 수업과정을 이수하기는 이미 어렵게 된 것으로 보인다.
본과 1·2학년 대부분 병원 임상실습은 없지만, 매주 고교 시절 정도로 빡빡하게 짜인 시간표에 따라 30주보다 더 긴 기간 수강해야 한다. 남은 기간 중 그러한 학습량을 소화할 수업시간을 확보하기는 곤란할 수 있다. 또한 의대 본과에서는 시험을 짧게는 1주일에 1번 정도 빈도로 자주 보는 편인데, 학생이 응시하지 않는 이상 출석만으로 성적을 부여할 수도 없다. 결국 학생 참여 없이는 본과 수업의 진행 및 이수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의대 예과에선 학점 이수에 필요한 수업시간은 더 적을 수 있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학생의 출석, 과제 제출이나 시험 응시 등의 수업 참여 없이 학점을 부여하기 어려우므로 본과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약 예과 1학년이 모두 유급되거나 휴학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정원 증원이 전혀 되지 않은 대학이라도 내년 이후에는 평소의 2배 인원이 한 학년으로 6년간 같은 수업을 들어야 한다. 정원이 2~3배 증가한 대학은 평소의 3~4배 인원이 한 학년으로 묶이게 될 터다. 더구나 2026학년도 이후에도 의대 증원은 계속될 예정이다.
비단 의대가 대비해야 하는 상황은 의대생의 유급이나 휴학 및 그 여파에 따른 시설 증축뿐만은 아니다.
고등교육법에 따른 인증을 받지 못한 의대 졸업생은 의료법상 의사 국가고시 응시자격이 없다. 인증받은 의대 졸업생에 한해 의사면허를 부여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외국에서도 국내 및 해외 의대를 대상으로 평가해 인증을 받지 못한 대학의 졸업생은 면허 부여를 위한 절차를 밟지 못하게 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 의사면허 및 의대 인증 등을 담당하는 국가의료평의회(GMC)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현재 운영 중인 우리나라 의대 중 1곳을 인증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해당 의대 출신은 영국 의사면허를 취득할 수 없다.
고등교육법상 의대 인증은 기간이 정해져 있어 기한이 만료되면 정기 평가를 통해 새로 부여받아야 한다. 인증 기간 중에도 중간 평가로 인증 여부가 바뀔 수 있고, 정원이 10% 이상 증원되면 주요 변화 평가 기준 충족 여부도 확인하게 되어 있다. 2024학년도 말인 2025년 2월까지만 해도 정기 평가를 통해 인증을 새로 받아야 하는 의대는 8곳이 있고, 중간 평가 대상은 15곳이다.
이번에 정원 증원이 10% 이상 된 의대는 30곳이다. 특히 내년 2월에 인증이 만료되는 의대는 이를 새로 받지 못하면 신규 입학생을 받지 못하게 되거나 이미 합격한 학생들의 입학을 취소해야 할 수도 있다.
참고로 간호대도 의대와 마찬가지로 고등교육법상 인증을 받은 학교 출신만이 국가고시에 응시할 수 있다. 실제로 작년에 한 간호대는 불인증이 확정돼 입시절차 진행 중단은 물론이고 이미 수시 모집에 합격한 학생까지 타 대학에 지원하도록 한 사례도 있었다.
인증 기한이 이번 학년도 말에 만료되는 대학이 이를 새로 받지 못한다면 법리상 인증을 거부한 처분에 대해선 본안 판결 선고 전까지 잠정적으로 인증을 받은 것과 같은 효력을 부여하는 형태의 결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증 거부 처분을 취소하는 소송을 제기해 본안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그 판결에 따라 실제로 인증한 때에만 비로소 인증을 받은 것이 되므로 법률상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긴다.
지난 1월 의평원이 2024학년도 의대의 인증 결과를 발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계획은 최대한 빨리 수립해야 한다. 만약 이번에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내년 1월쯤 결과가 발표되고 그 시점에 불인증이 확정되면 이미 수시 입시 결과 발표 및 정시 지원까지 종료된 시점일 가능성이 커 혼란이 매우 커질 수 있다.
의대 증원에 따른 여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지금으로선 병원과 의대가 더욱 악화된 상황까지 대비하는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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