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던진 돌 중 하나 [1인칭 책읽기: 차도하 시인]

이민우 기자 2024. 6. 10. 21: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민우 랩장의 1인칭 책읽기
차도하 시인 유고시집 「미래의 손」
차도하 시인은 왜 시인이 됐나
쓰여지지 못한 서문
차도하 시인의 미공개 사진.[사진=더스쿠프 Lab. 리터러시] 

돌 던지기

나는 돌을 던질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게 초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건 명백히 초능력이다.

오늘도 나는 강에 돌을 던지고 왔다. 햇수로 34년째 매일매일 던지고 있다(내 나이는 2022년 기준 한국 나이로 스물넷이다). 산수를 잘하는 사람은(산수를 잘하는 건 초능력이 아니다) 내가 돌을 몇 개 던졌는지 셈할 수도 있겠다.
강이 돌로 메워진다면 그만둘 생각이다.
모든 것을.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불리는 것을. 마주칠 때 인사만 하는 사이까지 포함한 인간관계를. 만족을 위해서 생존을 위해서 밥 먹는 것을. 손톱을 지나치게 자주 깎는 습관을 포함하여 나를 깨끗하게 하는 것을. 설득과 유희와 별 의미 없는 대화 혹은 혼잣말을.

그 밖에 내가 잘 모르는 세상을.

그렇지만 돌 던지기는 계속될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내가 죽고 나서도 나는 돌을 던질 것이다.
얼핏 다짐처럼 들리지만 다짐은 아니며
내가 던진 돌을 뒤집어봐도
아무것도 안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 특이한 모양처럼 보이거나 보관하고 싶다면 누군가가 가져가도 괜찮다.
엉뚱하거나 피상적인 격언을 새기더라도.

차도하 시인의 시집이 나왔다. 「미래의 손」이다. 시인의 첫 시집이자 스물다섯살에 시간이 멈춰 버린 시인의 유고 시집이다. 에세이 집 한권이 있었지만 시를 모은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나는 이것을 시인의 '돌 던지기'라고 생각한다.

1999년 경상북도에서 태어난 차도하 시인은 2017년 제25회 대산청소년문학상 고등부 시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문학에 두각을 보였다. 이후 202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서사창작전공 재학 중 스무살의 나이로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공식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당선작인 '침착하게 사랑하기'는 "기성 시인 누구도 쉽게 떠올릴 수 없게 한 개성의 충만함" "쉬이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용기" 등의 호평을 받았다.

데뷔 후 시인은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와 얽힌 출판사의 신춘문예 당선 시집에 작품 수록을 거부하고, '가시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문단 내 부조리에 저항해 왔다. 대신 자체 메일링 서비스 '목소리'를 운영하고 여러 독립 출판물에 글을 실으며 독자들과 교류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 왔다.

그러다 시인의 첫 책인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에서 시인은 서두에서 스물셋에 죽고자 했으나 책을 내게 돼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두번째 책이 나오기 한해 전인 2023년 10월 강을 돌로 모두 메워버렸다. 그래서 모든 것이 멈췄다.

시인은 서문을 쓰지 않았기에 에세이 책에 남긴 글이 시집의 서문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시집의 서문이 따로 있다. 시인은 뉴스페이퍼아카데미학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강의 전 자신이 왜 시인이 됐고 시를 쓰는지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차도하만의 '씀'이다.

차도하 시인 유고시집 「미래의 손」 표지.[사진=봄날의책 제공]

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말하기를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었어요. 제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하며 살았어요. 어렸을 때 저는 소도시에 살았는데요. 한두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다보니, 저를 둘러싼 소문이 도는 게, 사람들이 제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게 싫었어요.

그럼에도 나를 드러내고 싶다는 욕망은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 얘기를 너무 안 했기 때문에 감정들이 속에서 고여서 썩기 직전이었던 건지도 몰라. 처음에는 그걸 분출하고 싶어서 글을 썼습니다. 다양한 글쓰기 장르 중 왜 하필 시로 뻗어 나갔냐 하면 숨기면서도 말 할 수 있는 장르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하기 싫지만 말하고 싶은 저에게 딱이었지요.

어디에도 이것을 남기지 않으면 기억하는 이들이 없을 것 같아 두려웠던 시간이 있었다. 시인과 함께한 기록들이 하드디스크에 가득하지만 나는 그것으로 시인을 안다고 말할 순 없기에 나는 글을 이만 줄이고자 한다. 이제 시인의 시집이 나왔다. 그리고 차도하 시인이 남긴 글귀가 있다. 얼핏 다짐처럼 들리지만 다짐은 아니다.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