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혜택 못 받는 100세 자이니치 1세 돌보는 ‘3세’…“젊은층 동족 의식 옅어져 걱정”[순회특파원,일본을 가다]
재일동포 노인 60명 도와
“고국서도 잊지 않았으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지난 4일 오전 11시. 일본 오사카 재일동포 요양시설 ‘산보람’의 체조 시간. 숫자 구령이 나오자 구순이 넘은 어르신 6명이 체조를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넘어와 평생 일본말을 써왔지만 지금은 한국말 숫자에 더 반응이 빠르다. 갈수록 기억은 옅어지는데 고향말은 전보다 또렷하다.
고경일 산보람 이사장은 “치매 어르신 중에는 그간 써왔던 일본어는 다 잊고 한국어만 기억하는 경우도 있다”며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 들었던 노래, 쓰던 말을 본능적으로 찾는다”고 말했다.
산보람이 돌보는 어르신은 모두 60명. 100세를 바라보는 자이니치(재일동포) 1세대로 대부분 제주도 출신 여성들이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은 산보람 직원이 직접 집으로 방문해 식사나 목욕을 돌본다. 대신 장을 보고 생필품을 챙기는 것도 주요 ‘홈 서비스’이다.
움직임이 수월한 어르신은 오전 9시30분까지 요양시설로 모셔와 오후 4시까지 보살핀다. 식사와 목욕 서비스를 시작으로 레크리에이션과 체조로 건강을 관리해준다. 식단은 주로 한식으로 짠다. 김치 역시 빠지지 않는다.
산보람이 돌보는 어르신 중 9명은 요양시설에 거주하면서 24시간 보살핌을 받는다. 지난 4월15일 100세 생일을 맞은 김춘생 할머니도 산보람에 산다.
김 할머니는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일본 ‘국민연금’ 제도가 도입된 1961년 당시 일본 정부는 자이니치를 연금 가입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부분의 자이니치 1세는 김 할머니처럼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한다. 받는다 해도 금액이 적다. 자이니치 1세가 생활고를 겪는 이유이다. 김 할머니는 생활보호대상자로 매달 생계 수급비를 받아 요양비로 쓴다.
자이니치 1세는 자이니치 3세가 돌본다. 산보람 직원 총 25명 가운데 19명이 재일동포다. 고 이사장 역시 재일동포 3세다. 요양시설에서 의도적으로 한국 핏줄 직원만을 채용하는 것은 아니다. 채용공고를 내면 주로 재일동포가 지원한다.
고 이사장은 “재일동포는 기본적으로 ‘내 민족은 내가 돌보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있다”며 “다만 갈수록 그런 동족 의식이 옅어지고 있어서 앞으로는 재일동포를 돌보는 시설도, 사람도 사라질지 모른다”고 했다.
산보람은 정부 지원 없이 운영하기 때문에 재정이 넉넉하지 않다. 주오사카 한국 영사관과 할머니의 ‘고향’ 제주도에서 종종 생필품을 지원하고 있지만, 여전히 도움이 필요하다. 고 이사장은 “이제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한국이 이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사카 | 반기웅 일본 순회특파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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