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복지·민주주의 발전 기여할 포퓰리즘 정치는 필요”[2024 경향포럼]

이창준·김희진 기자 2024. 6. 1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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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양극화시대, 좋은 포퓰리즘이란
에밀리아 팔로넨 핀란드 헬싱키대 정치학과 교수
에밀리아 팔로넨 핀란드 헬싱키대 정치학과 교수가 지난달 3일 헬싱키 마우눌라 하우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헬싱키|이창준 기자
시민의 정치 참여 과정인 포퓰리즘은 다양한 견해·관점 수용하기에 ‘긍정적’

인종·종교로 특정 집단 배제 등 반민주적으로 발현될 우려도 높아

‘마우눌라 하우스’처럼 숙의 민주주의 실현할 공간 만들어 지역 정치 활성화해야

포퓰리즘은 흔히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으로 여긴다. 정책을 제안하고 결정하는 정치인이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공익과 무관하거나 오히려 공익을 해치는 정책을 남발하는 행위를 포퓰리즘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중의 혐오나 분노를 이용해 반민주적인 정책을 펼치는 정치 지도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포퓰리즘 정치는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위협하는 뇌관으로 지목되기까지 한다.

유럽 포퓰리즘 연구의 권위자인 에밀리아 팔로넨 핀란드 헬싱키대 정치학과 교수(47)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유럽 지역의 다양한 포퓰리즘을 연구해 발간한 저서 <느슨한 포퓰리즘(Populism on the Loose)>에서 팔로넨 교수는 포퓰리즘을 ‘텅 빈 기호 표현(Empty Signifier)’이라고 정의했다. 원래 포퓰리즘은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가치중립적인 정치행위라는 것이다.

포퓰리즘 자체에는 어떤 정책적 내용도 담겨 있지 않다. 다만 정치인들이 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간혹 반민주적인 형태로 발현되기도 한다는 게 팔로넨 교수의 설명이다. 본질적 의미의 포퓰리즘이라면 정치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정책 결정에 대중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시민이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도 포퓰리즘이 필요하다. 팔로넨 교수는 “사람들은 포퓰리즘에 인종차별적 성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종차별은 인종차별일 뿐 포퓰리즘이 아니다”라며 “시민을 정치에 참여시키는 과정인 포퓰리즘은 얼마든지 다양한 견해와 관점을 수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팔로넨 교수는 일상에서 포퓰리즘 정치를 적극 실천하고 있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 마우눌라 지역의 문화센터 ‘마우눌라 하우스’ 건축 과정에 주민 대표로 참여했다. 마우눌라 하우스는 지역의 숙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주민들은 마우눌라 하우스가 문을 연 2017년부터 그곳에서 자신들의 지역 관련 정책을 스스로 제안하고 투표를 통해 최종 결정한다. 매년 선출되는 주민 대표는 마우눌라 하우스가 실시하는 다양한 행사나 공공서비스의 구체적인 내용을 지역 공무원들과 함께 논의해 결정한다.

팔로넨 교수는 오는 26일 <2024 경향포럼>에서 핀란드 민주주의의 발전 방향에 대해 강연한다. 지난달 3일 헬싱키 마우눌라 하우스에서 팔로넨 교수를 만났다.

- 포퓰리즘이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했는데, 한마디로 정의해달라.

“포퓰리즘은 그 자체로 특정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집단이나 정치 요구를 하나로 묶기 위해 사용되는 논리다. 여러 요구 중 하나가 나머지 전체를 대표하게 되는데, (포퓰리즘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정치 요구 중 부정적인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 부정적인 요구라면.

“가령 극우 포퓰리스트들은 이민자 수용 정책에 반대한다. 이러면 사람들은 포퓰리즘이 인종차별적 성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종차별은 인종차별이고, 이민자 반대 정책은 이민자 반대 정책이라고 정확히 얘기해야 한다. 이들은 포퓰리즘과는 구별되는 정의다.”

- 포퓰리즘 자체에는 부정적 의미가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 대중은 그 자체로는 정의되지 않은 집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은 서로 다른 정치적 요구를 대표하는 집단이 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진보 또는 보수 세력이 대중을 대표할 수 있다. 특정 정치 지도자 위주로 포퓰리즘이 발생하기도 한다. 다만 포퓰리즘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때는 반민주적으로 발현될 우려가 있다.”

- 포퓰리즘은 원래 시민이 원하는 의제를 정치에 반영하는 수단인가.

“당연히 그렇다. 포퓰리즘은 다양한 견해와 관점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 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정치의 영역에 끌어올 수 있다. 즉 시민을 정치에 참여시키는 과정이다. 포퓰리즘은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 알고 있지 않은 상태다. 정치집단에 직접 참여한 대중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의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은 포용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특정 정치집단 안에 다양한 생각을 가진 그룹을 포괄할 수 있다.”

- 좋은 포퓰리즘과 나쁜 포퓰리즘을 구분한다면.

“좋은 포퓰리즘은 민주적 형태이다. 다른 정치집단을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고 먼저 정의하지 않는 것이다. 인종이나 종교 등 요소로 집단에 누구를 포함하고 배제할지 미리 정해선 안 된다. 포퓰리즘 정치가 만들어가는 정책 중에 시민 복지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여지가 있으면 포함하고, 아니면 빼면 된다. 나쁜 포퓰리즘은 반자유주의적 포퓰리즘이다. 반자유주의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 하나의 종교 등이다. 이런 포퓰리즘은 파시즘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 나쁜 포퓰리즘의 예를 든다면.

“(인종을 주요 요소로 보는) 나치주의와 신나치주의는 나쁜 포퓰리즘이라고 볼 수 있다. 극우 포퓰리즘 역시 내 집단을 구성하는 요소를 미리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극우 포퓰리즘은 국가를 매우 중요시한다. 핀란드에서 세를 떨치는 ‘핀란드인당’이 그 예다. 이들은 핀란드인만을 위한 정당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며, 외국인이 핀란드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모든 외국인을 거부한다.”

- 민주주의 선진국인 핀란드가 최근 극우 정당에 의해 민주주의를 위협받고 있다는데.

“상당히 우려스럽다. 반이민 의제를 앞세운 민족주의 정당인 핀란드인당이 핀란드 의회에서 두 번째로 큰 정당이 됐다. 그들은 행정부에서도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신나치주의와 연관되는 등 의심스러운 과거를 가졌다. 핀란드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위협받는다고 보기까진 어렵지만, 내부에서 자유 민주주의에 반하는 모습들이 포착되고 있다.”

- 핀란드는 반부패 투명성지수 1위 국가로도 유명하다. 깨끗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요인이라면.

“민주주의를 비교적 일찍 시작했다. 러시아로부터 독립하기 전인 1906년부터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그래서 노동자 계급이나 농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핀란드인당의 전신인 핀란드농촌당은 시골 농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부패 수준이 낮더라도 실제 비공식 연줄은 여기저기 존재한다. 나라가 작다 보니 오히려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최근 핀란드에서 정치인이 되겠다는 사람이 적어지고 있어 반부패가 유지되는 점도 있는 것 같다.”

- 핀란드에서 정치 참여가 줄어드는 이유는.

“권력이 지역이 아닌 중앙 정당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중앙 의회 대표들의 권력은 여전히 엄청나지만 지역 정당에서 활동하는 정치인의 목소리는 중앙 의회에 잘 전달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핀란드의 지역 정당 조직이 매우 강력했고 중앙 정당과 상·하향식 토론도 활발했다. 오히려 이런 점이 핀란드 민주주의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일 수 있다.”

- 지역 민주주의를 다시 활성화할 방안이 있나.

“일단 시민의 다양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게 먼저다. 핀란드엔 같은 인종이나 문화권 등으로 구성된 다양한 그룹이 있다. 축구협회처럼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인 협회도 많다. 이들이 나서서 각자의 의견을 공론화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 헬싱키 마우눌라 지역의 민주주의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마우눌라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새로운 문화·청소년 센터와 도서관을 원했다. 헬싱키시에서도 새 건물을 짓기로 결정하고 주민 아이디어를 모았다. 주민들은 단순한 문화센터를 넘어선 ‘민주주의 공간을 원한다’고 말했다. 시민 대표로서 나는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고 주민의 의견을 취합했다. 그 결과 마우눌라 지역의 도서관, 청소년 센터, 성인 교육센터 역할을 겸하면서 민주주의 공간 역할을 하는 마우눌라 하우스가 탄생했다.”

- 민주주의 공간의 의미는.

“이 지역에 필요한 정책 아이디어를 주민들이 직접 내고, 투표를 통해 필요한 정책을 직접 결정한다. 그 과정이 마우눌라 하우스에서 진행된다. 공공도서관이자 문화센터인 마우눌라 하우스를 어떻게 운영하고 어떤 문화 프로그램을 개최할지 역시 주민들이 직접 정한다. 주민 대표를 뽑고, 매년 두 차례 포럼을 열어 마우눌라 하우스의 공무원들과 이를 논의한다. 마우눌라 주민 약 7000명이 직접 참여하고 체험하는 숙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간이다.”

헬싱키 | 이창준·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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