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교습소로 돈 벌고 과외생에 최고점...음대 교수들의 입시 비리
서울대·한양대·경희대·숙명여대 등 서울 유명 대학 성악과 입시에서 금품 비리가 있었던 것으로 10일 나타났다.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이날 성악과 입시 준비생들에게 불법 레슨을 하거나 입시 실기 심사위원으로 참여, 자신들의 불법 과외생들에게 최고점 등을 부여한 교수(교수 겸 브로커 포함) 15명, 이 교수들에게 금품을 건넨 학부모 2명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합격 대가로 뇌물을 수수한 현직 안양대 성악과 교수 추모씨는 구속됐다. 대학가 안팎에선 “실기 위주로 이뤄지는 예체능계 입시 비리의 빙산 일각이 드러났다”는 반응이 나왔다.
서울청이 이날 검찰에 넘긴 성악과 교수들은 학원법 위반, 업무방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다. 현행 학원법상 대학에 소속된 교수·강사의 사설 과외 행위는 불법이다. 그럼에도 국민대 성악과 교수 윤모씨는 2021년 1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이른바 ‘마스터 클래스’라는 명목으로 서울 강남구·서초구 일대에 불법 사설 교습소를 운영하며 현직 성악과 교수들과 학생들을 연결했다. 경찰에 포착된 불법 과외 횟수는 679회였다.
윤씨는 학생들에게 과외 전 목을 풀도록 돕는 ‘발성비’ 명목으로 1인당 7만~12만원을 받았다. 교수들은 30~60분가량 과외를 하고 20만~30만원을 현금으로 받았다. 연습실 대관료도 모두 학생 측이 부담해야 했기 때문에 1회 교습 비용은 최대 70만원이었다. 성악과 교수들과 인맥이 있는 유력 인사 자제나 레슨비를 부담 없이 지불할 수 있는 부유층만 접근 가능한 불법 과외 네트워크였다고 경찰은 밝혔다. 교수들은 총 244회에 걸쳐 1억3000만원의 불법 레슨비를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성악과 입시는 해당 대학 교수와 외부 심사위원단이 공동으로 실기 채점을 하는 구조다. 불법 과외를 맡은 교수들은 대학의 내·외부 심사위원직을 맡은 뒤 자신들이 가르친 수험생을 찾아내 최고점 등을 주는 수법을 썼다. 윤씨는 입시 시즌 때마다 교수들에게 수험생이 어느 대학에 지원하는지, 실기고사 조 배정 순번은 몇 번인지 등을 알려주며 노골적으로 청탁했다.
음대 교수들은 실기 평가 공정성을 기하고자 내·외부 심사위원들에게 서약서를 받는다. ‘수험생 중 가족 등 특수관계자가 없다’ ‘과외 교습을 한 사실이 없다’ 등의 조항이 명시된 서약서에 교수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서명하고 불법 과외생들에게 100점 만점에 90점 등 최고점을 부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 비리 교수의 평가지를 보니 다른 수험생들에겐 60점대 등 낮은 점수를 주면서 자신의 불법 과외생들에겐 90점을 줘서 합격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경찰 관계자는 “평균 75점 정도의 평범한 학생이 불법 과외 덕에 거의 최우수로 합격했을 가능성을 조사 중”이라고 했다.
비리 교수들은 자신이 과외한 학생들의 발성 특색과 특유의 음색, 실기 곡명 등을 기억해 이들에게 최고점을 준 것으로도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공정성을 위해서 가림막을 치고 입시를 진행하지만, 성악가들 사이에서 지원자의 발성과 음색 자체가 ‘지문’과 같아서 과외한 학생을 식별할 수 있게 된다”며 “그 외에도 지원자 명단 등을 건네받거나 입시 직전까지 교습해서 자신이 가르친 학생을 콕 집어 최고점을 줬다”고 했다. 이와 관련, 한양대는 “타 대학 소속 교수가 비리 사실을 숨기고 외부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면서 “대상 학생은 1단계 심사에서 탈락했다”고 했다.
불법 레슨을 받은 학생 2명은 비리 평가를 통해 서울대 성악과에 합격했다. 이들의 학부모는 서울대 성악과 교수 박모씨(전직 학과장)에게 ‘제자 선발 오디션’을 해달라며 100만원을 건넸다. 또 서울대 성악과 실기 외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자기 자녀들에게 고점을 준 안양대 성악과 추씨(구속)에겐 금품 및 명품 가방을 뇌물로 바쳤다. 서울대 관계자는 “제자 선발 오디션 등 명목으로 금품을 건네는 건 대학에서 교수가 뇌물을 수수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했다.
대학가에선 이번 성악과 비리 사태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음대 교수들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음대 출신 과외교사인 ‘새끼 선생’과 입시 브로커를 통해 입시생들을 대상으로 레슨을 진행하고 있다”며 “입시 브로커나 교수들은 학생이 합격할 경우 1억~5억원의 대가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사정 당국의 수사를 성악과뿐 아니라 음대 전체와 미대·체대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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