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어느 군 통수권자의 경험담
6월6일은 한국에서는 현충일이지만, 미국과 유럽의 경우 1944년 6월6일 개시되어 제2차 세계대전의 분수령이 된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른바 디-데이(D-Day) 기념일로 지킨다. 올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80주년을 맞아 지난 6일 대규모 기념식이 현지에서 열렸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서방 25개국 정상이 참석하여 유럽을 억압에서 해방한 희생을 기억하고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속하는 러시아에 대항하여 결속을 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날인 7일 별도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격전지 ‘푸앙트 뒤 오크’를 방문하여 연설하며 “우리 시대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나라 안팎의 침략에 맞설 것”이라 강조했다. 나치 독일의 대서양 방어선으로 조성된 푸앙트 뒤 오크 절벽을 미군 특전사 장병들이 기어서 올라가 점령에 성공한 작전은 미군의 대표적 영웅담으로 남았다.
국가 지도자가 이런 행사에 참석하여 승전을 기념하고 희생한 군인들을 추모하며 향후 예상되는 위협에 대한 대응을 다짐하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이 전승 기념식에 참석하고 강한 표현으로 단호한 입장을 천명하는 방식으로만 군을 지휘하고 국민을 이끄는 것은 아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재임 당시는 미군이 아직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을 때였다. 오바마는 종종 비공개 일정으로 워싱턴 인근의 군 병원을 방문하여 부상당해 입원 중인 군인들을 격려하고 가족들을 위로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부상 장병을 만나고 다니면 명료하고 전략적이어야 할 통수권자로서의 판단력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있었다.
오바마는 이런 지적에 대해 회고록에서 이례적일 정도로 강하게 반박했다. 그런 언급을 했던 사람에게 연락해서 ‘군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서만큼 통수권자로서의 판단력이 명료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해주고 싶다는 표현까지 했다. 전쟁의 대가를 실제로 누가 치르는지에 대해, 대통령이라는 지위 때문에 자신의 결정을 대의명분으로 정당화할 수는 있다 해도 스러지거나 산화한 목숨들에 대해 어쨌든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 군 병원을 방문하고 올 때처럼 명료했던 순간은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군은 전투와 무관한 상황에서 장병을 여럿 잃었다. 2023년 7월19일 폭우 피해 지역인 경상북도 예천군 보문교 일대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 중 해병대 1사단 소속 채모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2024년 5월23일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는 훈련병 1명이 완전군장으로 소위 ‘얼차려’를 받던 중 쓰러져 이틀 뒤인 5월25일 사망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는 시간이 꽤 지났지만, 얼마 전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변희수 하사가 순직한 사건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이런 사건들이 한 점의 의혹 없이 합당하게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바마는 국가안보 영역에서의 리더십은 합리적 정책을 실행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관습과 의례, 상징과 절차, 심지어 대통령이 공개 행사에서 완벽한 자세로 경례하는 모습마저 중요하다고 회고한다. 앞에서 언급한 사건들이 공식적인 절차, 철저한 수사 및 재판을 거쳐 처리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것만으로 온전히 해결될 수 없고 우리 정부와 사회가 더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이다.
대통령, 국방부 장관을 비롯하여 군을 지휘하는 공직자, 앞으로 그런 자리에 오르려는 정치인은, 작전 수행이나 기타 사유로 부상을 당한 군인, 희생된 군인의 유족을 진솔한 마음으로 만나보기 바란다. 본인 입맛에 맞는 얘기를 들려주거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부합하여 전임 정부를 함께 비난할 사람만 찾지 말고, 누구든 구별 없이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기 바란다. 육군훈련소 앞에 가서, 군에 입대하는 청년,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부모의 눈을 들여다보고 대화하는 것도 좋겠다.
세계 최강의 군대인 미군의 통수권자를 지낸 사람의 경험담에 따르면, 백악관에 앉아 일일 극비 브리핑을 받을 때보다 오히려 그런 순간에 국가안보에 관한 판단이 명확해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 계기를 통해 국가에서 징병을 하고 군대를 유지하는 이유를 인식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기 바란다. 멀쩡한 남의 자식을 데려다 제대로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 복무하도록 한 다음 집에 돌려보내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대체 무슨 수로 적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나라를 지킨다는 것인가.
유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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