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안전운임제 살려 노동자 살려야
대통령이 포항 영일만에 대량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석유 탐사 시추를 승인했다. 탐사 시추에는 5번 뚫는 데 약 50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관측됐다.
포항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2021년 9월3일 화물연대 포항지역본부 소속 화물노동자 권씨는 아내와 통화하면서 주말에 등산을 가자고 약속했다. 아내는 등산복 대신 수의를 입은 남편을 만나야 했다. 지게차가 하역작업을 하면서 권씨의 화물차에 쌓여 있던 목재 더미를 들어 올리는 순간 옆에 있던 다른 목재 더미가 쏟아져 권씨를 덮쳤기 때문이다. 지게차는 목재만을 바라볼 뿐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해 7월 인천의 목재공장, 8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똑같은 사고로 화물노동자가 숨졌다. 그럼에도 작업은 중단되지 않았다.
사람이 죽어도 작업이 멈추지 않자 화물연대가 물류를 멈췄다. 화물노동자들은 안전과 생명을 저울질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화물 안전운임제를 보장해달라며 총파업을 벌였다. 절박한 노동자의 외침에 윤석열 정부는 무자비한 탄압으로 답했다. 포항에서만 화물노동자 5명이 구속되고, 4명이 집행유예를 받았다. 윤석열 정부는 석유를 발견한 것처럼 들떠서 화물연대에 구멍을 내고 노조혐오를 채굴했다. 이를 동력 삼아 정권 지지율이 반짝 올랐지만 국민의 삶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윤석열 정부가 없앤 건 노동자의 안전이었다.
안전운임제가 사라지자 화물노동자의 월소득은 189만원 삭감됐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화물노동자들은 수면시간을 2.6시간 줄였다. 안전운임제 도입 이전 71.8%의 화물노동자가 졸음운전을 하던 시대로의 회귀였다.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줄어든 과적·과속은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2023년에만 847명의 화물노동자가 도로 위에서 죽었다.
무리한 과업과 빠른 일처리로 고통받는 건 화물노동자만이 아니다. 화물노동자의 과적·과속은 투잡, 스리잡을 뛰는 대리노동자의 모습으로,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배달노동자의 모습으로, 졸린 눈을 비비는 물류센터 노동자의 모습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도로였다면 ‘빵’ 하고 경적이라도 울릴 텐데 누구 하나 말릴 틈이 없다. 안전운임제는 모든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이정표다.
“특정 사업주가 없다는 것뿐이지 노동자임은 틀림없다.” 5월14일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거들었다. “플랫폼종사자, 프리랜서 등이 일한 만큼 공정하게 보상받고 부당한 일을 겪지 않도록 하겠다.” 대통령과 장관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안전운임제 부활은 물론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적정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최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안전운임제 방식의 최저임금 보장 방안 역시 대안이 될 수 있다.
6월15일 화물노동자들이 안전운임제 재도입과 적용 품목 확대 촉구를 위해 여의도에 모인다. 비용은 이미 지불했다. 화물노동자의 수많은 죽음과 투쟁이 있었다. 아스팔트는 석유를 증류하고 난 잔류물이라고 한다. 아스팔트 위에서 먹고 자고 일하는 화물노동자들의 삶만큼은 물류산업의 잔류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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